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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파산에 산업회복기금 조성하자는 CZ 바이낸스 CEO
FTX 파산에 산업회복기금 조성하자는 CZ 바이낸스 CEO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11.15 15: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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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하지만 유동성 문제를 겪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지원
1907년 금융위기 때 J.P. Morgan 등 자금 출자해 금융기관 지원
창펑자오의 산업회복기금은 1907년 J.P. Morgan의 데자뷰

[이코노미21 양영빈] 쌤 뱅크먼(Sam Bankman-Fried, SBF)이 설립한 암호화폐 거래소(FTX)의 파산으로 암호화폐 업계 전반적으로 위기가 커지는 양상이다.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의 위기설도 돌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의 CEO 창펑자오(CZ)는 최근 견실하지만 유동성 문제를 겪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산업회복기금(Industry Recovery Funds, IRF)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이전에 쌤 뱅크먼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지원했을 때 암호화폐 시장의 제이피 모간(J.P. Morgan)이라는 호칭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창펑자오의 IRF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이 호칭은 아마 창펑자오가 가져가게 될 것이다.

‘J.P. Morgan’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금융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등장했으며 연준(미국중앙은행)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20세기 초반 까지만 해도 농업국가였던 미국은 계절성 금융위기가 빈번하게 발발했던 금융 후진국이었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수확, 운송, 판매 등의 생산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바로 이 시기에 자금에 대한 수요 역시 폭증했다.

농촌을 중심으로 산재했던 지역 은행은 6000개가 넘었으며 이 은행들은 대도시에 있는 뉴욕은행, 시카고 은행, 세인트 루이스 은행에 준비금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대도시 3대 은행이 지역 농촌 은행의 중앙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런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확철과 비수기의 불균형이었다. 수확철이 되면 자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지역 은행은 대도시 3대 은행에 예치한 준비금을 인출했다. 이는 바로 대도시 3대 은행이 증권시장 투기자들에게 대출한 단기자금(Call Loan)을 다시 회수하는 것으로 연결됐다. 투기자들은 대도시 3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자금을 주식시장 투기에 사용했는데 이 자금이 회수되면 투기자들은 보유한 증권을 헐값에 매각해 주가 하락을 일으켰다. 동시에 급격한 자금수요 증가는 이자율 급등으로 이어져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당시 대도시 3대 은행은 현대 중앙은행처럼 시장의 자금수요에 따른 통화량 증가(Elasticity, 통화를 탄력적으로 공급)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제약은 자금경색기에 금융 시스템 불안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소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준비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었다. 탄력적 운용은 비수기에는 준비금을 줄이고 활황기에는 준비금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보스턴 대학의 페리 멜링(Perry Mehrling) 교수에 의하면 준비금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준비금을 신용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현대 중앙은행이 공개시장조작, QE, QT 등의 정책을 통해서 보여 준 것처럼 준비금이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함을 의미한다.

금융 후진국이었던 미국은 고질적인 계절성 위기를 겪었는데 1907년 발생한 위기가 가장 큰 위기중의 하나였다. 다우존스 주가는 전고점에 비해 50% 넘게 하락했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럽과 같은 중앙은행에 대한 필요성이 진지하게 검토됐다.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다우존스 지수

출처=위키리크스(https://en.wikipedia.org/wiki/Panic_of_1907)
출처=위키리크스(https://en.wikipedia.org/wiki/Panic_of_1907)

1907년 주가 하락뿐만 아니라 대형 신탁은행의 파산까지 이어지면 금융위기가 번지자 당시 J.P. Morgan은 뉴욕의 대형 은행들과 함께 자금을 출자해 내용은 견실하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융기관을 지원해 금융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J.P. Morgan의 영웅적 행동은 1913년 12월 23일 미국 연준(Federal Reserve System)의 창립으로 결실을 보게 됐다. 연준의 창립으로 그동안 분산됐던(Decentralized) 미국 금융시스템은 중앙화(Centralized)의 길로 나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준이 국가권력의 의지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민간은행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현재 크립토 생태계의 모토는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DeFi)이다. 중앙화된 전통적 금융(Traditional Finance, TradiFi)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구호이다.

바이낸스 CEO 창펑자오의 산업회복기금은 1907년 J.P. Morgan의 데자뷰이다. 창펑자오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위험에 처한 크립토 생태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행보의 역설은 DeFi의 깃발을 내 걸고 시작했지만 다시 100여년전 TradiFi의 깃발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크립토 생태계의 중앙은행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크립토 생태계의 이런 행보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최근 10여년간 이어졌던 DeFi와 TradiFi의 대결 일변도의 구도를 이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필요가 생긴 시점이다. [이코노미21]

최근 파산한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사이트
최근 파산한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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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CHULHO 2022-11-16 13:36:38
바이낸스(Binance)의 CEO 창펑자오가 최근 FTX 사태로 유동성 문제를 겪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지원을 위한 산업회복기금(Industry Recovery Funds, IRF) 조성하겠다고 급하게 나선 것은 그동안 샘 뱅크먼 프라이드와 겪은 경쟁 심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업비트의 독과점 구조와 빗썸의 불투명한 경영과 도덕적 심각성로 인한 폐혜도 우려되는 바, 이에 대한 후속 취재도 시급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