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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에 대한 김현아 복지사의 따뜻한 시선
발달장애인에 대한 김현아 복지사의 따뜻한 시선
  • 이재식 기자
  • 승인 2022.12.06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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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은 그냥 같은 사람으로 봐 주는 게 제일 좋아요”
우리나라는 미국만큼 장애인이 밖으로 안 나오고 못 나와
정부의 관심과 집중적 지원 있다면 월등히 좋아질 수 있어

[이코노미21 이재식] 사회복지사 근무 4년차인 김현아 복지사(이하 김현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강동구에서만 살아왔고,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에도 홀트강동복지관에서 계속 근무 중이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공무원의 길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텐데 왜 복지관 근무를 선택했을까? “보통 공무원을 선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공무원이 더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김현아의 말을 들어보자.

“제 주변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니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저는 현장이 더 좋아서 처음부터 복지관을 선택했어요. 외부시선이나 복지혜택 같은 것은 공무원이 좋을 수 있어도, 제가 보는 공무원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공무원의 업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저의 경우 일을 하면서 얻는 에너지와 행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공무원은 소진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는 거 같았어요. 발달장애인들은 복지사를 만나면서 뭔가 나아지는데 도움을 주기 바라지만 아무래도 공무원은 민원업무가 많아서 그러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거든요. 일할 때 느끼는 보람이 크고 중요하잖아요? 인정도 못 받고, 처우도 안 좋아서 현장을 많이 떠나기는 해도 저는 사회복지 현장이 좋습니다.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고, 같은 마음인 직원들을 만나면 기쁩니다. 사회복지사가 행복해야 발달장애인들도 행복하고…행복한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힘들어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 수 있다”며 부모님들이 거의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은 복지사와의 대화에서 힘든 이야기보다는 자녀와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프로그램이 좋았다더라...그런 이야기를 주로 해요. 제가 처음 배치된 부서는 발달장애인 가족과 만나는 가족지원팀이었는데, 가족 나들이를 지원하거나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형제자매들과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는 업무였습니다. 처음에 부모님들을 만났더니 너무 좋고 따듯해서 적지 않게 당황했어요. 어떻게 보면 직업이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지나치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별일도 아닌데 너무 죄송하다고 하거나…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부모님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하늘에서 장애아들을 그 분들께 내려 보낸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은 사회적 차별과 차가운 시선, 압박들을 너무 많이 받아 왔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살아 왔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거 같았어요. 처세술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니까요. ‘본인들이 그런 표현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차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슬프거든요”

일견 감정이 북받쳐 두서없이 말하는 듯해도 이야기를 나눌수록 김현아의 입장은 분명하고 옹골찼다.

복지사와 발달장애인과의 관계를 물어봤다.

“발달장애인들은 의외로 호불호도 분명하고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듯이 당연히 복지사들 중에서도 더 좋아하는 복지사가 있어요. 발달장애인들과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다양한 교육도 하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인풋이 있는데 아웃풋이 나오지 않으니 ‘이걸 계속 하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컨대 인권 교육을 하면 인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 가야 하는데 잘 이해를 못합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다음에 똑같은 행동을 하니까 힘들어하는 복지사들이 많죠.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제 컨디션에 따라서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구요. 제가 피곤할 때 그 분들이 힘들게 하면 더 피곤하구요…그래서 ‘제가 행복해야 이 분들이 행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거예요. 말이 정말 많은 분은 계속 반응을 해줘야 하고 듣는 게 어떤 때는 정말 힘들어요. 제가 기분이 좋으면 그런 말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그래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분들도 저를 좀 더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않는 것을 잘 설득하면 저한테는 말해 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아! 이 맛에 일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발달장애인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과 하기 싫은 말을 구별해요. 집에서 갈등이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분들과 갈등이 있을 수도 있는데 감정조절이 힘든 사람들이거든요. 엄청 화를 낼 때가 가끔 있어서 왜 그런지 원인을 알려고 물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을 해 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다해 부탁하면 다른 분들에게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저한테만 말해 줄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이 분과 내가 신뢰관계가 형성이 됐구나’ 생각이 들고, 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쁩니다”

자신의 일에 확실한 주관이 있는 것 같아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물어봤다.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지적장애인 쌍둥이 친구들이 있었어요. 행동과 말에서 표시도 나고 육체적으로도 약하다보니 괴롭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제가 일종의 그 친구들 보호막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쌍하고 안쓰러워 시작한 일이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그게 자연스럽게 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고. 정의감일 수도 있고…어디 가서 남들한테 체육복이나 교과서를 못 빌려 오거나 놀림 받거나 하면 되게 열이 받았거든요. 당시의 키가 지금의 키라 저는 어떤 친구 앞에서도 겁먹지 않았어요. 체육복이나 교과서를 못 빌리면 무조건 나한테 오라고 말해 줬던 일종의 수호천사였고, 그 친구들도 그런 저를 좋아했어요. 저희 부모님들이 제 교육을 참 제대로 시켰는데, 특히 엄마는 항상 “너가 그런 친구들을 챙겨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그 친구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계시던 여수로 전학을 갔고, 저는 한동안 그 사실을 몰랐어요. 학교에 안 나오기에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더니 다들 모르더라구요. 어느 날 그 친구들의 아빠가 정말 슬픈 목소리로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정민이와 정은이(가명)에게 들어서 저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고 해요.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사회복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은 여러 군데 넣었지만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사회복지학과만 합격했어요.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는데 몸도 약한 친구들이 여수로 가서 어떻게 살까 걱정을 했거든요. 막상 여수에 가서 보니 교회에도 나가고, 살도 많이 찌고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돈을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일을 하는 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며 여수시 장애인종합복지관 프로그램 활동도 하고 있었어요. 교회 선생님들과 잘 지낸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들이 사회복지사들이었습니다. 그 때 나도 정민이와 정은이 주변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처럼 되겠다고 최종 결심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계속 생각하는 것은…제가 정민이와 정은이한테 마음의 빚 같은 게 있는데요, 고등학교 때는 그 친구들이 눈치도 없고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이 확실히 보이기도 하고, 저한테 와서 말도 많이 하고 그러는 게 귀찮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제 교실에 안 왔으면 좋겠고, 다른 친구들 시선도 신경 쓰이고…‘공부 하고 있으니 빨리 가라’ 이런 식으로 냉정하게 대하고 쌀쌀맞게 군 적이 있어서 두고두고 후회했어요. 일이 힘들거나 기운이 빠질 때, 그 친구들이 여수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컸고, 나는 서울에서 또 다른 정민이와 정은이에게 잘 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하게 됩니다”

“항상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일을 할 겁니다”

김현아에게 미래 계획을 물었다,

“대학 초반에는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 되고 싶었지만 그에 따른 노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거였어요.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보고 싶어요. 장애인이 일하는 환경이너무 열악하고 인식이 안 좋으니 그런 것을 개선해 보고 싶기도 해요. 재미있고 행복하게 일을 하는 사업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장애인과 가족들이 다 힘들지만 ‘발달장애인이 좀 더 차별 받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발달장애인의 실정을 대부분 너무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장애인은 표시가 안 나는 사람도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표시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대부분 짠하고 얼마나 힘들까…이런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고, 사회복지사에게 ‘착한 일 한다, 힘들지?’ 이런 말씀들을 하는데 ‘왜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엄청난 시선들을 보내 주시는데 어떠한 시선이든 안 주고 그냥 안 봤으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과 마주치면 자녀를 몸으로 막거나 피하는 것을 자주 보거든요.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발달장애인은 그냥 같은 사람으로 봐 주는 게 제일 좋아요. 저희 부모님들도 저를 기특해하고 안쓰러워 할 때가 있는데 저는 왜 그러냐는 생각이 듭니다. 복지관에 오는 분들은 어느 정도 신변처리도 가능하고 인지능력도 있어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사람들은 “문제가 될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혼잣말이 엄청 심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것은 그 분의 특성이고 하루 종일 혼잣말 하고, 어제 봤던 TV 내용 계속 이야기 하고, 뉴스 앵커가 했던 말들을 따라 하거든요. 복지관에 오는 걸 좋아하지만 버스 타고 오는 한 시간 내내 혼잣말을 하니까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욕을 듣기도 하고, 여기저기 인사를 하면 사람들한테 욕을 듣거나 하는데 다음날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피하고 싫어하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알지만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우리나라가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적 수준이 좀 높아져서 ‘그냥 가만히 봐줄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대학 때 휴학하고 미국여행을 갔었는데 제 친구는 안 보였다지만 제 눈에는 밤의 뉴욕거리에 장애인들이 너무 많이 보였어요. 휠체어 탄 사람들도 많았고, 발달장애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미국은 장애인이 참 많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나라는 미국만큼 장애인이 밖으로 안 나오고 못 나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안해야 된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지만 서른이 넘어도 고치기 힘들어요. 그런 것을 알고 바로 고칠 수 있다면 장애가 아니겠죠? 하지만 교육을 통해 개선되는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키워드는 ‘이해와 배려’인데 화를 낼 일에 ‘제가 오늘 이해할게요’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경우 많은 지지와 칭찬을 해 드립니다. 정부의 관심과 집중적인 지원이 있다면 지금보다 월등히 좋아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다른 장애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비용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부의 지원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처음 복지관에 출근했더니 다들 모여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어떤 사람이 이기찬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게 그렇게 슬펐어요. 그게 왜 그렇게 슬펐는지는 모르겠구요, 지금은 슬프지 않고 그냥 “노래 부르는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뎌진 것이 아니라 깨달은 거죠. 사고를 쳐서 더 이상 복지관에 나올 수 없는 사람을 보며 “우리가 저 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도 많이 울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데 처음에는 저도 그 분들을 뭔가 짠하게 바라봤던 시선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냥 “노래하는구나”. 이게 제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김현아는 낮게 말했다. “언젠가는 저도 현장을 떠날 수 있겠지만, 항상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일을 할 겁니다” 웅변이 아니어도, 행동으로 보여 주지 않아도 때론 어떤 것보다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는 대화가 있다. 김현아와의 대화가 그랬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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