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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은 왜 파생상품을 금융 대량살상무기라고 말했나
워렌 버핏은 왜 파생상품을 금융 대량살상무기라고 말했나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12.07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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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거래소 통한 파생상품들은 필요한 증거금 납부해야
장외파생상품은 1:1로 체결하는 파생상품으로 증거금 없어
장외파생상품은 1:1 계약이므로 거래상대방 위험 있어
금융기관은 레버리지를 키우기 위해 장외파생상품 이용
리만 브라더스 사태, FTX 파산 역시 높은 레버리지가 문제

[이코노미21 양영빈] 워렌 버핏은 2002년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파생상품을 “금융 대량살상무기(Financia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FWMD)”라고 표현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생상품은 선물이나 옵션이 있다. 파생상품의 특징 중 하나는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물 한 계약의 기초자산 가치가 1억원이고 증거금이 10%라면 1000만원만 있더라도 한 계약을 거래할 수 있다. 따라서 기초자산이 10% 상승한다면 선물 한 계약 매수를 하면 이론적으로 100% 수익이 가능하다. 물론 매도시에는 100% 손실도 가능하다.

선물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파생상품들(선물, 옵션 등)은 거래소가 청산과 결제 기능을 하므로 필요한 증거금을 납부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파생상품은 거래 상대방이 계약 불이행을 할 수 있는 위험인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파생상품들에 대한 위험 관리와 통제는 거래소에 의해서 이루어 지고 있으므로 웬만한 금융 충격이 오더라도 비교적 관리가 용이하다.

문제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장외(Over-The-Counter)파생상품은 거래소와 같은 공적인 기구를 통한 계약이 아니라 은행과 회사, 은행과 은행 등 서로 1:1로 만나 체결하는 파생상품이다. 장외파생상품이 필요한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파생상품의 규격이 정확히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수요자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환선물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 A는 외환선물을 이용해 환차손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외환선물은 만기(CME에서는 매달 3번째 수요일), 1포인트 가치 등이 정해져 있어 기업이 자신의 수출입 거래 상황과 무관하게 거래소의 규정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수출입 거래는 반드시 3번째 수요일에 맞춰서 일어나지 않으므로 수출기업 A는 수입 상대방과 1:1 외환 거래를 할 요인이 생긴다. 이런 계약은 정규적인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선물(Futures)과 구별하여 선도(Forward)계약이라고 한다. 장외거래의 가장 큰 특징은 거래소 같은 공적 기구에 의한 규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1 계약이므로 계약 당사자들만의 비밀스러운 거래이며 항상 거래상대방 위험을 수반한다.

장외파생상품은 실물거래 참여자의 필요에 의해 시작됐지만 금융기관이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워렌 버핏이 경고한 금융 대량살상무기가 되기도 한다. 금융기관은 실물거래를 바탕으로 장외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레버리지를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장외파생상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1998년 월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헤지펀드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의 파산은 장외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레버리지를 극도로 높인 투자행태의 위험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리만 브라더스 역시 높은 레버리지가 문제였고 2021년 빌 황의 아케고스 펀드도 높은 레버리지의 희생자였다. 최근의 FTX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외파생상품이 가지는 레버리지와 연관성은 레포 구조를 통해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환매조건부채권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알려진 레포는 금융 대량살상무기를 제조법의 핵심이다.

전통적으로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레버리지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인출에 대비하기 위해 규제기관과 은행 자체가 레버리지 관리를 철저히 한다. 그러나 오랜 저금리와 낮은 변동성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자기자본이익률(ROE: Return On Equity)를 제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레버리지를 높이려는 유혹을 피하기가 어렵다.

리만 브라더스 같은 투자은행이 레포를 이용해 레버리지를 올리는 방법으로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레포를 이용한 레버리지 확대

대차대조표 ①은 은행의 초기 상태이다. 은행이 보유한 MBS를 담보로 현금 100을 빌려 이 자금으로 MBS를 100만큼 더 매입한 것이 ②의 상황이다. 처음 상태에서 은행의 레버리지는 자산/자기자본으로 계산하며 대략 5배 정도이다. 두번째 상태에서 은행의 레버리지는 205/20으로 대략 10배 정도가 된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한 후의 조사를 통해서 알려진 바로는 리만 브라더스가 보유 채권 가치 105에 대해 레포로 빌린 현금이 100이었고 이것이 이후에 리만 ‘레포 105(Repo 105)’라고 알려졌다.

②의 상황에서 새로 매입한 MBS 100을 담보로 삼아 추가로 레포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초기 자산의 대략 20배까지 레버리지를 키울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레버리지 확대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부 투자자들이 보기에 레버리지가 너무 높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레버리지가 순기능을 할 때는 높은 이익률을 걷을 수 있지만 역기능을 할 때는 작은 충격에도 자본 잠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 리만 브라더스는 실질적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유지하되 외부에서 보기에는 낮은 레버리지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게 할 유인이 생겼다. 리만 브라더스가 차용한 기발한 방법은 영국에 자회사를 세우고 레포 거래를 영국 자회사에 집중시키는 방법이었다. 미국에서는 담보로 제공한 MBS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레포를 사용하면 대차대조표가 확대되어 레버리지가 높아지게 된다. 당시 영국은 상법은 미국과 달리 레포 거래에서 MBS를 담보로 했을 때 담보를 ‘명백한 매각(outright sale)’으로 볼 수 있는 법적인 허점이 있었다.

명백한 매각(outright sale)으로 본 레포 거래

이러한 대차대조표상 조작은 레포 거래가 만기에는 담보로 맡긴 MBS같은 채권을 되사야(환매) 한다는 조건을 누락시킨 분명한 분식회계이다. 레포의 첫 단계만 주목한 분식회계인 것이다. 리만 브라더스는 특히 정기 감사가 있는 분기 말에 이러한 조작을 감행했으며 결과적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주택 가격 하락으로 MBS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높은 레버리지라는 모래성 위에 쌓은 허상은 금방 무너졌다.

대부분 금융거래는 적당한 자산을 담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레포 거래는 현대 금융시장의 핵심 기제다. 부동산 PF는 미래에 완공될 부동산을 담보로 진행하는 장기 레포이다. 전세계약은 집을 담보로 집주인이 전세세입자에게 현금을 빌리는 만기 2년짜리 레포 계약이다. 세입자는 현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 대신 거주권을 받는다. 민간 기업 사이의 외환 스와프 역시 중앙은행의 통화 스와프와 마찬가지로 담보물이 한 국가의 통화인 레포이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는 한층 강화됐지만 비금융 기업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비금융 기업들 간의 1:1 장외파생상품 거래는 현재로서는 규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부동산 PF, 빌 황 같은 개인사업자의 레버리지, FTX 사태 같은 일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준의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은 그 동안 암암리에 거래된 장외파생상품 시장의 약한 고리를 타격하는 뇌관이 될 개연성이 높다. 레포 거래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핵심 필요조건은 시장의 낮은 변동성이다. 10여년의 대안정(Great Moderation)을 뒤로 하고 대변동(Great Volatility)의 시기로 진입한 지금 상황에서 레버리지 축소가 매우 필요하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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