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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학과는 폐과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알짜학과입니다!
바둑학과는 폐과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알짜학과입니다!
  •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 승인 2022.12.1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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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남치형] 명지대학교는 2022년 12월 1일 내부 공청회를 열어 명지전문대와의 2차 통합안을 발표한 후, 12월 5일 제4차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검토 중이던 일부 학과는 구제하고 바둑학과와 철학과만 폐과하기로 결정했다. 대학 측은 12월 9일 제5차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이러한 안을 최종 확정하였고 교무위원회, 평의회, 이사회를 거치는 절차만 남아 있다.

최종적으로 나온 통합학사구조를 보면 자연대가 없어지면서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등이 사라졌고 인문대에서는 철학과가 사라졌다. 기초학문들 대신 인문대에는 ‘베트남어학과’, ‘글로벌한국어학과’,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등이 신설되었고, 디지털디자인대학에는 ‘메타버스/게임콘텐츠전공’, ‘글로벌뷰티디자인학과’, 그리고 스포츠예술대학에 ‘스포츠건강재활학전공’과 ‘글로벌K-POP학과’ 등이 신설되었다.(이 중 ‘글로벌’이 붙어있는 것은 외국인 전형으로 ‘정원외’다.)

바둑학과는 당초 미래융합대학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30세 이상 재직자 전형은 바둑학과 입학생의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동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2차 통합안에서는 완전히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바둑학과는 현재 예술체육대학 소속인데, 이번 통합안에서 예술체육대학 내 디자인학부는 인문캠퍼스로 이동하여 <디지털디자인대학>이 되고, 스포츠학부, 음악학부, 공연예술학부는 <스포츠예술대학> 소속으로 자연캠퍼스에 남는다. 그동안 소속 학부 없이 학과로 존재했던 바둑학과만이 폐과로 결정된 것이다.

바둑학과는 1차 발전계획서에서 학과를 인문캠퍼스로 옮기고, <마인드스포츠학부(혹은 학과)>로 변경을 요청하였으나, 미래융합대학 내로 들어가는 안을 거부함으로써 무산되었고, 2차 발전계획에서는 자연캠퍼스 내 <스포츠예술대학> 중 ‘스포츠학부’ 소속 ‘바둑학 전공’으로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듭 거부되어 폐과에 이르렀다. 현 통합학사구조를 보면 ‘스포츠학부’ 내에는 새롭게 ‘스포츠건강재활학전공’이 포함되어 있으며, ‘스포츠학부’의 정원은 현재 49명에서 95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남치형 명지대 교수
남치형 명지대 교수

바둑학과를 폐과하게 된 이유로 학교 측이 제시한 것은 첫째, 바둑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과 둘째, ‘한국바둑고등학교의 입학률이 높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논리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으므로 여기서 다시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금 더 포괄적인 이유로 학교 측이 제시한 “이번 학사구조는 대학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4년제 대학에서 바둑학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함”’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첫째, 전 세계 마인드스포츠 분야의 성장에 역행하며 둘째, 한국에서 바둑이 체육으로 인정받는데 바둑학과가 기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향후 바둑이 올림픽에 입성하는 데 있어서도 바둑학과의 존재는 필수적이고 셋째, 바둑학과를 허브로 하여 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관련 분야를 연구할 수 있었으며 넷째,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등 바둑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들을 교육할 선생님이 없는 많은 곳에서 활약할 인재들을 배출할 필요성 등을 들어 여러 곳에서 바둑학과가 반드시 4년제 일반대학에 존치되어야 함을 강조해주었다.

‘4년제 대학에 바둑학과가 필요 없다’는 말은 그 자체로 엄청난 모순을 안고 있다. 비슷한 학과로 통합이 된다고는 하지만 4년제 대학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기초학문을 없애고 실용으로 나가는 것이 구조조정의 방향이고, 전술한 실용 분야가 새롭게 신설되는 상황에서 이미 충분히 ‘실용’이자 ‘특성화’된 바둑학과에만 거꾸로 ‘4년제 일반대’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대한체육회 정단체), 대학바둑연맹과 소속 대학바둑부들, 한국여성바둑연맹 등의 많은 단체들이 바둑학과 폐지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고, 많은 사람들이 폐지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바둑학과 동문의 70% 이상, 프로기사의 80% 이상, 그리고 일반인 수 천 명이 이미 서명하였고, 중국에서도 별도로 서명을 받아 2017년 알파고와 대결을 벌였던 커제 등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바둑학과가 그동안 국내외 바둑계 발전에 기여한 여러 측면, 즉 바둑을 비롯한 게임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기틀을 세우고 토론과 연구의 장이 되어준 면, 바둑교육과 여러 바둑제도 운영의 체계화 등과 현재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마인드스포츠 분야가 확장성이 있는 분야임 등을 폐지 반대의 이유로 꼽았다.

1차와 2차 통합안 모두 내부 공청회를 통해 공개되었고 두 번의 공청회 공히 폐과, 혹은 사실상 폐과와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던 여러 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은 한결같이 그런 결정을 내린 정량적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하였지만 학교는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심지어 “바둑학과는 지표만으로 볼 때 많은 결과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어떤 지표를 사용했는지, 그것이 유지 혹은 확대되는 학과들의 지표와 어떻게 다른지 등은 일절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새로 신설되는 학과는 앞으로 어떤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비전제시가 없으며, 폐지되는 학과와 신설될 학과 간의 비교평가 등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바둑학과의 폐과 결정이 이처럼 아무런 정량지표의 제시 없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둑학과가 그동안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오해를 사게 된다는 것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해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는 학과를 남기고 그렇지 않은 학과들은 통폐합해 온 것이 그동안 많은 대학들의 구조조정 방향이었고, 잘 운영되고 있는 학과를 학교가 일부러 없앨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바둑학과는 1997년 개설된 이래 줄곧 3:1 정도의 경쟁률을 유지해왔으며 이는 한국바둑고의 존재유무와도, 바둑 인구의 감소와도 아무런 상관없이 요지부동이다. 당연히 충원률, 즉 정원을 못 채우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바둑학과 이외의 다른 학교에는 지원을 하지 않는 지원자가 대부분이어서 거의 매년 1차 합격자 이외에는 입학하지 못하는 정도이다. 또한 대학 정원이 계속 감축되는 가운데 정원 외 유학생을 지금까지 90명 가까이 유치함으로써 학교의 재정에 도움이 되어 왔다.

학과 졸업생들의 바둑분야에서의 활약 또한 다른 어떠한 종목의 어떠한 단일 학과보다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약간 변동이 생겼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프로입단은 만18세 이전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대학교에 입학한 후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따라서 바둑학과에서 입단을 지망하는 선수를 양성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바둑학과 출신 학생들 중 프로기사가 없거나 학생들의 바둑실력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현재까지 바둑학과를 거쳐 간 프로기사의 수는 한국기원 프로가 67명, 중국과 대만의 기사까지 더하면 80명쯤 된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국내외 기전 우승, 한국바둑리그 우승, 여자바둑리그 우승 등 대회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한국기원 사무총장, 기사회장, 한국바둑리그감독, 국가대표팀 코치 등 리더십을 필요로 한 분야와 한국바둑고등학교 교사, 해외보급활동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필요한 분야 등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동문 중 프로에 근접한 실력을 가진 아마선수가 많고, 다수가 국내외대회에서 현역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 체육학과가 동문의 전국체전 등의 성적이나 프로구단 입단 등을 현수막으로 홍보하는 상황에서 바둑학과는 국내 프로대회는 물론 세계대회, 전국체전, 기타 무수한 대회들에서 입상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하여 전국체전의 단체전과 개인전 우승은 흔하고,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즈(WMSG)에는 김혜민, 박지연, 온소진, 이용희 등이 함께 출전하여 금메달, 은메달 등을 받았으며, 현재 내셔널리그와 한국바둑리그, 한국여자바둑리그 등의 선수로 뛰고 있는 동문도 수십 명이다. 단일 학과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단일체육종목에서 이만큼 성적을 내는 곳이 바둑학과 이외에 또 있을까?

이번 폐과 결정이 알려지자 외국인과 해외바둑협회 관계자들도 우려를 표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는 학과가 지난 25년간 꾸준히 국제교류를 해왔고, 100명에 가까운 유학생들을 유치했으며, 또한 학과의 졸업생들이 학과에서 배우고 교환학생 경험 등으로 익힌 바둑영어, 바둑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학생들의 해외보급활동은 여러 대륙을 넘나든다. 사진에 보이는 윤영선은 독일에서,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윤영은 캐나다에서, 황인성-이세미 부부는 프랑스에서, 다니엘 챤한씨옹과 신디 림, 지앙 웨이진 등은 싱가포르에서, 라폰 지라소핀은 태국에서, 현지용은 대만에서, 그리고 위의 리스트에는 없지만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 현지에서 바둑교육과 보급의 최전선에 있다. 한국기원에서 입단한 디아나 코세기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외국인 바둑학생을 받아 지난 10년간 250명 가까운 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호주, 러시아, 몽골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 졸업생들의 활동을 원하고 있으며, 아래 표에서 보듯 학과의 국제교류 실적도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

바둑학과 출신들은 한국 바둑계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 등 바둑행정 부분, 바둑TV와 K바둑 등 기타 바둑미디어 부분, 그리고 바둑학원과 방과후학습 등의 바둑교육 부분은 물론 <미생>의 주인공처럼 일반 회사에 취업하여 바둑을 통해 기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시 리스트가 너무 길어 여기에 게시하지는 못하지만, 한국기원 12명, 대한바둑협회 사무처장을 포함하여 4명 등 바둑행정의 가장 상위기관에 바둑학과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사이버오로, 타이젬, 한게임, 네오위즈, 넷마블 등 바둑 관련 사이트 등에도 각각 여러 명씩 근무하고 있고 바둑TV 11명, K바둑 4명 등과 다수의 유튜버가 있다.

일반 직장에 들어가 직장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경우도 많다. SG그룹, 한국물가정보, 포스코 등이 그런 케이스이다. 또한 CJ ENM, 한미약품, 호반건설, 월드건설, 종근당, 하나투어 등의 일반회사에 취업하기도 하고, 시험을 통해 회계사 등이 되기도 한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자 프로를 목표로 바둑만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바둑교육시장에서 바둑학과 동문들의 영향력 또한 압도적이다. 현재 전국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동문이 62명, 학교 측이 말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취업률”에 포함되지 않는 방과후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이 32명이다.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지만, 지난 3년간 학원과 방과후 시장이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둑학과 동문들은 이처럼 바둑계의 미래 자산인 아동과 청소년 교육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학과 전임교수들의 연구실적도 명지대학 내의 다른 학과의 실적에 비해 손색이 없다. 2022년 현재 한국연구재단(KRI)의 연구자정보를 보면 2년 전 퇴임한 정수현 명예교수의 경우 논문 37건, 저서 35권, 본인의 경우는 논문 19건, 저서 12건, 김진환 교수는 논문 27건, 저서 3건, 다니엘라 트링스 교수는 논문 1건, 저서 8권 등으로 명지대학 내 타과 교수들의 연구업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학과이고, 따라서 관련 학회나 연구의 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신생 학문 분야로서는 괄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난 2001년에 개설된 석사과정에서 생산된 36개의 논문, 2009년 개설된 박사과정에서 생산된 7개의 학위논문과, 학부와 대학원을 통해 배출된 연구자들이 심리학, 문화학, 아동학, 노년학, 교육학 등 타 학문과 융합하여 연구한 부분을 더하면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생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둑학과의 2023학년도 정원은 21명으로 전체 학교 정원(약 2630명)의 1%에도 못 미치고, 교수의 수는 3명으로 전체 교수 숫자(약 530명)의 0.5%가 간신히 넘는다. 어떤 집단의 이렇게 작은 부분이 그 집단의 홍보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까지 잘 되는 경우가 바둑학과 말고 또 있을까? 바둑학과는 폐과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존치해야 할 ’알짜학과‘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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