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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냐 실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플레이션이냐 실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12.27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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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실업률 상승 감내하고 인플레 잡겠다
내년 실업률 12월보다 0.9%높은 4.6% 전망
연준의 정책 기조 당분간 바뀔 가능성 낮아

[이코노미21 양영빈] 최근 연준은 경기침체를 불사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중앙은행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트레이드오프(역의 상관관계) 사이에서 고민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에서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현대 거시경제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케인즈는 흔히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유효수요 등을 주장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케인즈가 마주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요청됐던 경제학적 과제와 그 과제를 풀기 위해 케인즈가 주장했던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공황이 발발했을 때 이미 실업률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올랐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인즈의 처방은 유효수요를 일으켜 경제를 다시 되살리는 것이었다.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를 출간했던 1936년의 케인즈는 실업률 해결 또는 경기활성화가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1919년의 케인즈는 달랐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케인즈는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집중했다.

토마스 험프리 연준 경제학자는 1981년 ‘인플레이션에 관한 케인즈(Keynes On Inflation)’의 글에서 케인즈가 인플레이션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의 저작들을 통해서 분석했다.

당시 케인즈는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도자인 레닌을 인용하면서 다음처럼 이야기했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했다.” “레닌은 매우 옳았다. 인플레이션처럼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케인즈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사회를 좀먹는 과정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숨겨진 인플레이션은 배분적 정의를 파괴한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가정한 장기계약을 위협하고 자본주의 근간을 이루는 채무-채권 관계를 훼손한다.

셋째, 인플레이션은 사회적 불만을 일으킨다. 특히 이런 불만은 뜻하지 않는 횡재로 이윤을 확보한 기업들에게 향한다. 이런 기업들의 횡재는 인플레이션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넷째, 인플레이션은 잘못된 처방전을 낳게 되는데 ‘가격 제한’이나 ‘부당이익자 처벌(profiteer-hunting)’ 같은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책은 대체로 인플레이션 그 자체보다 더 나쁘다.

1920년 당시에 전쟁 배상 문제가 얽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케인즈와 레닌의 케미가 잘 맞았던 때였다. 케인즈는 1차대전 패전국인 독일에 막중한 부담을 주는 배상안을 반대했다. 1917년 막 혁명을 완수한 레닌은 혁명 이전 제정러시아정권의 대외부채 상환을 반대했다. 둘의 경제학적 인식이 비슷하게 되는 지점이 여기서 생겼으며 레닌은 케인즈가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제시한 대외부채 해결 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1919년의 케인즈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1차대전 종전(1918년 11월) 이후 유럽의 치솟는 물가였다. 케인즈가 레닌을 인용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 문제를 언급한 것은 당시 상황이 매우 긴급했기 때문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하지 않으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유럽 중심부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케인즈의 염려가 컸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대한 문제인식은 시대 상황에 따라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다. 현재 연준의 강조점은 인플레이션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점의 목표는 1919년의 케인즈와는 자못 다르다. 1919년의 케인즈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존속 여부가 핵심이었다면 2022년 연준의 문제 의식은 1970년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에 있다. 현재 연준에게는 적어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존속 문제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더 안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상 최고의 과제이다.

현재 실업률은 3.7%로 1969년 3.4%, 2020년 1월 3.5% 이후 최저치이다.

미국 실업률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series/UNRATE#)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series/UNRATE#)

연준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어느 정도 확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2월 FOMC에서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Summary of Economic Prospects: SEP)에서 연준의 기준금리로 본 내년 최종금리(또는 최고금리)는 5.1%로 12월의 4.4%보다 0.7% 포인트 올랐다. 내년 실업률 전망은 4.6%로 12월 실업률인 3.7%보다 0.9% 포인트 상승했다. 또한 내년 근원 PCE 인플레이션 전망은 3.5%로 12월의 4.8%보다(현재 4.7%) 1.3% 포인트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이 1.3% 포인트 하락하는 대신에 실업률이 0.9% 포인트 상승하는 전망을 한 것이다.

이러한 연준의 경제전망의 근거로는 고통지수라는 개념이 있다. 전통적으로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더한 값을 고통지수(Misery Index)라고 부른다. 당연히 이 수치가 높으면 한 국민경제가 겪는 고통이 크게 된다. 고통지수를 산정할 때 문제는 실업과 인플레이션 중에서 각각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주는가에 있다. 현재 경제학의 테두리 내에서는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고통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고통지수(인플레이션+실업률)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IenV#)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IenV#)

고통지수는 보통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합으로 측정한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합으로 고통지수를 보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모두 동일한 비중으로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지수는 10.8%로 금융위기 때의 수준과 비슷하다.

어떤 학자들은 설문 조사를 근거로 고통지수를 새로 구성하려고 한다. 설문 문항은 보통 “인플레이션과 실업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인플레이션 효과는 전체적이지만 실업 효과는 개별적이기 때문에 이런 설문 조사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는 응답이 절대 다수를 점할 수밖에 없다.

연구에 의하면 고통지수를 구성할 때 실업에 2배의 가중치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Barry Ritholtz

블로그 참조 https://ritholtz.com/2022/11/which-is-worse-inflation-or-unemployment/).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가중치를 주어 고통지수를 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가중치를 달리한 고통지수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Y8Cc)
출처=연준(https://fred.stlouisfed.org/graph/?g=Y8Cc)

빨간 색은 실업과 인플레이션 가중치가 1:1일 때, 파란색은 실업과 인플레이션 가중치가 2:1인 경우의 고통지수이다.

실업 가중치가 높은 파란색이 빨간색 아래에 있다는 것은 현재의 고통지수를 인플레이션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으로부터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가중치가 1:1인 고통지수가 가중치가 1:2인 고통지수보다 높았던 적은 1978년부터 1980년대와 현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지수만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상황은 폴 볼커 재임 시절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연준이 이 차트를 참조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가중치를 다르게 한 고통지수의 비교를 통해서 보면 현재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준의 정책 기조는 당분간 바뀔 전망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코노미21]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 본부. 사진=위키백과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 본부. 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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