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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기사에서 국가대표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는 오정아
현역 기사에서 국가대표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는 오정아
  • 이재식 기자
  • 승인 2023.01.26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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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코치직에 많은 매력 느껴”
얼마 전에 최정 9단과 결승전 치뤄
“최강 그룹에 오르는데 한계에 부딪혀”
오정아 여자바둑국가대표 코치
오정아 여자바둑국가대표 코치

오정아 여자바둑국가대표 코치의 인터뷰는 작년 연말에 이루어졌고, 현재는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이코노미21 이재식] 바둑 TV에서 <이영구ㆍ오정아의 금쪽같은 신 정석>이 방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부부기사로 잘 알려진 이영구 9단(이하 이영구)과 오정아 5단(이하 오정아)이 같이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이전과 다른 방식의 진행이 신선함을 줬다는 평가가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요즘 오정아는 육아에 빠져 정신이 없다. 자녀가 아직 어려 잠시도 자리를 바울 수가 없는데, 내년부터 여자바둑국가대표 코치를 맡게 되어 육아 문제로 고민이 더 크다고 했다.

오정아는 제주도 표선에서도 한참 들어간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제주 출신이라 여자바둑리그 제주팀에도 소속된 적이 있었다. 코치로 근무하면 시합에 나갈 수가 없다. 한 마디로 현역생활이 끝나는 거다.

‘성적이 나쁘지 않은데 현역생활을 포기하는 건가요?’란 질문에 “많은 고민을 했고, 남편과도 진지하게 의논을 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 후회하지 않을 거고, 국가대표 코치직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성적이 최상급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요, 얼마 전에 최정 9단과 결승전도 하고 4강에서 만나기도 했어요”라는 답변을 했다.

이영구 9단과 오정아 5단
이영구 9단과 오정아 5단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인가? 아님 내리막길이 오기 전에 아름다운 은퇴를 하는 것인가? 어떤 경우든 본인의 결정이고, 후회하지 않는다니 오정아의 결정이 좋은 결과를 낳도록 기원한다.

최정과의 결승전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불쑥 곤란한 질문을 던져봤다. ‘최정을 만나면 주눅이 드는 것이 사실인가요? 남편이 아직 현역에서도 강자인데 은근슬쩍 도움을 주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최정은 일단 바둑이 강하고, 당연히 심리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최정을 만나서 주눅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겠죠? 요즘은 인공지능으로 공부하는 시대니까…사실 사람에게 배우는 건 의미가 없을 수 있어요. 인공지능이라는 가장 강한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더 곤란한 질문을 던져 봤다. ‘김은지 치팅 사건의 주인공이 남편인데?’ 아마도 오정아는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을 거다.

“별다른 감정은 없어요. 김은지 만나면 반갑고…다 지난 일인 데다, 본인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인 남편도 김은지와 마주치

면 인사하고 잘 지냅니다. 남편은 그 사건에 별로 개의치 않아요”

모범답안을 준비해 온 것 같아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봤다. ‘바둑이란 것이 실력보다 인성이 먼저 아닐까요? 인성이 안 좋은 사람이 실력이 좋으면 사고가 난다는 게 정설인데?’

오정아는 ‘장수영 도장’ 출신이다. 무협지 식으로 말하면 김은지와 사매지간인데, 더 이상 답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거둬들였다.

오정아의 입문과정을 들었다.

전술했듯이 오정아는 기원이 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인 시골 중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아빠 따라 기원에 다니면서 바둑을 배웠고, 바둑대회가 있으면 가끔 대처로 나갔다. 제대로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거고 그런 환경에서 발굴된 것은 천재에 가까운 기재가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겠다.

바둑대회에서 장수영 9단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고, 장수영은 오정아에게 서울로 와서 공부하기를 권했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가정사정이 어려워서 못 가겠다고 했더니 오정아의 기재를 아깝게 여긴 제주도 재력가가 선뜻 후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오정아를 있게 한 후원자에게는 지금도 고향에 가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와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2001년 19살에 입단을 했다. 기재를 봐서도 많이 늦은 입단이었는데, 오정아는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될 때까지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또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국가대표 코치직을 맡으면 오정아가 최정이나 오유진을 가르칠 수 있나요?’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강하기 때문에 바둑의 기술적인 면을 지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히딩크가 박지성보다 축구를 잘해서 감독을 한 것은 아니잖아요? 내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경기운영이나 공부하는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둘 겁니다”

최정 이외에 가장 껄끄러운 상대를 물었더니 이름은 말하지 않고 기가 센 선수가 부담이 된다고 답변했다. 본인이 유순한 성격이기 때문일까? 실력이 강한 사람보다 성정이 강한 사람이 더 부담스럽다고 한다.

조금 부드러운 이야기로 넘어갔다. ‘유튜브에도 나올 만큼 요가실력이 뛰어난데 언제부터 한 건가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했어요”란 대답에, ‘중고등학교 때라면 도장 시절인데 같은 도장 출신 문도원도 그렇고…장수영 도장에서는 요가도 가르치나 봐요?’라고 말했더니 활짝 웃는다.

다시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현역생활을 접기에는 아까운 성적이기 때문이다.

“제가 최강 그룹에 올라가는 산을 못 넘고 한계에 부딪혀 고민이 컸습니다. 산을 넘으려면 재능과 노력은 필수고 뭔가 깨우침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단해야 할 시점에서 저는 지도자의 길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으로 결심한 거죠”

국가대표 코치직은 임기와 어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되지만, 성적에 따라 언제 운명이 바뀔지 모르는 직업이다. 오정아는 성적이 나빠 코치직에서 내려오더라도 후회는 없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이영구 9단과 오정아 5단
오정아 5단

기자가 참 힘든 직업이다. 또 심장을 긁는 질문을 하게 됐다. ‘중요한 대국을 지고 왔을 때 부부 간에 너무 잘 아니까 오히려 불편하지 않나요?’

“서로의 입장도 너무 잘 알고, 어떻게 하면 풀릴지 아니까 위로를 해 줍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서로 건드리지 않구요, 척 보면 아니까요. 남편 성적이 안 좋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죠. 바둑계 특성이 일찍 전성기를 맞이하고 일찍 져 버리는 것인데…남편의 경우 전성기는 지났고 후배들한테 열심히 치이는 중입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 안 할 수가 없고, 남편도 이제는 방송 등 다양한 방향으로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성격 이야기로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라고 칭찬했더니 그게 승부에 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학교 다닐 때 에피소드가 없냐는 질문에는 학교생활이 거의 없었다고 울상을 짓더니, 중학교 때 한강공원에서 맥주 마신 이야기를 했다. 오정아에게 맥주를 마시자고 유혹했던 친구는 아쉽게도 프로기사가 되지는 못했고 오정아 인생 최고의 일탈은 그것이 전부였다. 술 실력을 물었더니 재능은 있는데 잘 안 마신단다.

곤란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다가 오정아의 장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 정말 착하게 솔직하다는 거다. 꾸밈도 없고 가감도 없이 솔직담백했다. ‘여자 바둑계에 파벌이 있나요? 모이면 다른 기사들 욕도 하고?’란 질문에 듣기 힘든 답변이 술술 나왔다.

“파벌은 약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없겠죠? 친한 기사들끼리 모이면 다른 기사들 당연히 씹습니다. 하하”

‘바둑 지고 운 적이 있는지요?’

“너무 많습니다. 제일 분했을 때라면…역전패인데, 오유진에게 역전패 당했을 때와 여자기성전에서 최정한테 져서는 안 되는 바둑을 졌을 때 같아요”

‘졌을 때 상대가 밉지 않나요?’

“사실 상대가 잘못한 건 없는데 미운 감정이 듭니다. 바둑을 두면 미묘한 심리적 파장이 있는데요, 상대가 긁는 경우가 있어요. 긁히면 당하는 거고…심리전에 센 사람들도 있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무딘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무디지는 못한 스타일입니다. 하하”

오정아를 만난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오정아가 입고 온 패딩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국가대표라서 받은 옷이라는데 잘 어울렸다.

국가대표 코치를 하면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프로생활은 모두가 경쟁상대죠. 동료가 잘 하면 사실 배 아프고, 질투도 나고, 부럽고 그런 감정이 있습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 질투하는 감정이 힘들어요. 코치를 하면 선수들이 잘 하면 너무 좋고 잘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인공지능이 있으니 바둑의 기술을 가르치기 보다는 자료 같은 거 잘 만들어 주는 거…본인이 하기엔 어렵거든요. 상대 선수에 대해 조사해서 알려 주거나, 어린 아이들은 심리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진 바둑에 대해서는 좋은 변화도를 정리해서 주기도 하구요, 포석에 대해서 찍어 보고 줄 수도 있어요. 승부를 하면서 느낀 점, 약점 파고드는 것, 본인이 느끼는 거랑 상대가 느끼는 거가 다르니 말해 주기도 합니다”

이미 잔인한 질문을 마구 던졌으니 내친 김에 더 잔인한 질문을 해봤다. ‘우승과 준우승은 상금 차이가 큰데요, 지고 나면 돈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나요?’

“바둑이 직업이니까 당연히 화가 나죠. 눈물이 날만큼 열 받을 때가 많아요. 돈이 성적이고 그레이드인데, 인간으로써 감내할 수 없는 느낌, 복권 마지막 번호 틀린 느낌, 차라리 아예 되지를 말든가…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하. 중요한 바둑을 지고 나면 후유증이 일주일 정도는 기본이고, 몇 년 지나도 생각이 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이요…”

오정아를 만난 이후 든 생각, 진짜 소름 돋도록 솔직하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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