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미분양에 영향 주지만 근본 원인 아냐
2020년 이후에만 100% 이상 오른 곳 속출
‘04년 이후 서울 30평 아파트값 9.4억원 상승
서울에 집 마련하려면 36년간 급여 모아야
[이코노미21 원성연] 최근 정부는 주택시장의 경착륙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부동산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이제 남은 곳은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뿐이다.
정부는 이번 부동산규제 해제의 근거 중 하나로 급격히 늘어나는 미분양을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나아가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매입해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미분양의 원인이 부동산규제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그럴까?
최근 불패신화라 일컫던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규제해제가 등촌주공 구하기라는 비아냥마저 들은 등촌주공 분양도 30%가 미분양됐다.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미분양이 부동산규제 그 중에서도 중도금 대출 제한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15억 이상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중단,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이 수분양자들에게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수분양자들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금리인상이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은 상단이 8%에 육박했다. 불과 6개월 전과 비교해 두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높아진 금리에 따른 원리금 상환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금리 또한 미분양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이전에 금리가 높았을 때에도 아파트 분양이 활기를 띈 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의 초저금리는 오히려 최근 들어 발생한 것이다. 금리가 낮다면 부담이 줄어 분양에 더 적극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높은 금리는 분양 참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8%대 금리는 큰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가격이 10%만 올라도 금리와 세금쯤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결국 미분양이 급증하는 이유 다시 말해 청약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규제도 금리인상도 아닌 ‘고분양가’ 때문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주택가격 상승세는 지난 2년간 정점을 찍으면서 급등세를 보였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2015년 대비 2~3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2020년 이후에만 100% 이상 오른 곳이 속출했다. 이 시기 분양가도 고공행진을 보였다. 서울 핵심지역이 아니어도 주요 지역에서 분양을 하면 경쟁률이 폭증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분양가는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아파트가격 상승→분양가 상승→아파트가격 상승이 반복되며 아파트 시세는 하루가 다르게 고점을 돌파해 신고점을 경신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30평 기준 9.4억원 상승했다. 2004년 3.4억원이던 서울 아파트값은 4배 가까운 12.8억원이 됐다. 반면 같은 기간 노동자 임금은 1900만원에서 3600만원으로 2배가 됐다. 따라서 현재 서울에 내집을 마련하려면 36년간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지난 5년 동안만 보면 2017년 5월 30평형 서울 아파트값은 6억이었지만 이 기간 6.8억(113%) 올라 12.8억원이 됐다.
지금 무주택자들은 이같이 높은 아파트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비싼 아파트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비싼 아파트가격을 받쳐줄 신규수요는 별로 없다. 속철없이 아파트가격이 폭락하는 이유다.
고분양가가 미분양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장위동에서 분양한 ‘장위자이레디언트’는 1330가구 중 40%에 달하는 537가구가 미계약 됐다. 이후 무순위 청약과 선착순 청약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다 팔지 못했다.
미분양의 이유는 분명했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도 높았기 때문이다. ‘장위자이레디언트’는 청약 당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다. 전용 84㎡ 분양가가 9억3130만~10억2350만원으로 인근 신축 시세보다 1억~2억원정도 비쌌다. 인근 3년차 신축 아파트인 ‘래미안장위포레카운티’의 동일 평형이 지난 1월 16일 7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분양한 강동구 '더샵파크솔레이유', 강북구 '한화 포레나 미아', 강북구 '칸타빌 수유 팰리스' 등도 아직까지 잔여 가구가 남아 선착순 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단지 또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파트값이 하락세임에도 분양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3063만원으로 전월 대비 3.86% 올랐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미분양을 우려하며 부동산규제를 전면해제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강남3구와 용산구도 조만간 해제할 거라는 말이 돌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의 지난해 10월 21일 발언을 들어보자. 원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평균 50% 올랐다가 6%가량 내렸다"며 "50% 오른 가격이 6% 내린 게 폭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2달 만에 모든 규제를 해제했다. 갑자기 생각이 바뀐 것인가.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