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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바둑학회 창립에 즈음하여
[기고] 국제바둑학회 창립에 즈음하여
  •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 승인 2023.02.2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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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남치형]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2003년, <한국바둑학회>가 창립되었다. 명지대 임성빈 교수(퇴임)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하고 곧바로 국제바둑학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Baduk, ICOB)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하였으며, 이듬해인 2004년부터는 매해 1회 이상의 국제학술대회와 2권의 학회지를 발간하여 왔다. 1997년 바둑학과의 설립이 바둑이 하나의 학문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면, <한국바둑학회>는 국내외의 연구자들에게 바둑을 주제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을 마련하여 준 것이다.

하지만 이후 현재까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이외엔 바둑학을 연구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주로 바둑학과 출신의 연구자만으로는 학회를 운영해나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2016년에 학술대회가 먼저 중단되고 2018년에 마지막 학회지를 출간한 이후 <한국바둑학회>의 모든 활동이 정지된다. 또한 2020년부터는 팬데믹으로 인해 학회의 재건사업 가능성마저도 희박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명지대학교가 바둑학과의 폐과를 포함한 명지전문대와의 통합안을 내놓았다. 학교가 폐과의 이유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것을 따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대외적으로 바둑학은 큰 이미지 타격을 입었고, 교육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나든 이대로라면 바둑학이 위축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들었다.

바둑학과의 폐지를 포함한 통합안이 최초로 나온 것이 지난 12월 초이고 이제 겨우 2월말이니 객관적으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나, 개인적으로는 반성과 자책으로 점철된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열다섯에 입단을 해서 20대 말에 명지대에 들어갔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바둑을 사랑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실제 현실이 어떤지,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의 바둑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안일함, 무관심, 나만의 소박하고 평온한 삶에 매몰되어 세상을 보지 못한 잘못이 학과를 이런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과 반성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 자책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바둑이 세계를 제패하고 인터넷 바둑과 바둑TV 등이 등장하던 무렵 그런 바둑의 상승세를 타고 생겨난 바둑학과, 나에게는 꼭 한 세대 위의 선배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를 내 세대에 와서 무너뜨리는 그런 참담한 일인 것이다. 선배들께 죄송하고, 그동안 바둑학과를 거쳐 간 많은 학생들에게 미안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바둑학과에서 공부하여 바둑계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미래세대에도 부끄러웠다.

바둑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충분히 많은 데다, 알파고 이후 세계적으로도 바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프로바둑계도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아시안게임 종목 선정을 넘어 올림픽 종목을 노리고 있다. 이런 면들만 보고 지내면서 바둑은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이나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시 여겼던 것도 사라질 수 있다. 심지어 바둑학과가 있는 명지대 내에서도 바둑은 홍보되어야 했던 거였다.

그런 바둑의 홍보, 바둑의 역할을 알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론적 근거를 갖추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바둑계의 얼굴이 되어줄 스타의 존재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왜 바둑을 즐기는지, 바둑을 배우면 무엇이 좋은지, 바둑에 어떤 의미와 기능과 역할과 재미가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은 바둑의 이론적 연구다. 이미 바둑이 두뇌발달이나 인성 및 사회성 계발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미디어는 바둑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바둑문화는 어떠한지,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의 바둑교육과 문화는 어떠한지 등 많은 주제로 연구가 이루어졌고, 알파고의 등장 이후 AI 분야에서도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이런 연구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연구 동기를 부여하고,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이 반드시 필요하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학회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난 5년 남짓 동안 전혀 활동이 없었던 <한국바둑학회>를 재건하는 것도 고민해 보았으나, 이번 바둑학과의 폐과 위기를 통해 세계 바둑인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으면서 바둑학이 한국이나 바둑학과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한국바둑학회>의 많은 것을 계승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서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의 참여가 가능한 <국제바둑학회>로 출범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바둑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현 상황에 있어 바둑이 인류에 어떤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 왜 우리 동아시아의 선조들이 수천 년간 이 놀이를 지속시키고 발전시켜 왔는지, 그런 것들에 관한 연구들이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국제”라는 명칭에 걸맞게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연대하는 다학제연구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한국바둑학회> 때와는 달리 임원진을 다국적으로 꾸린 것은 그분들의 도움으로 명실상부한 국제적 학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부회장직은 바둑학 연구자이자 프로기사인 중국의 쑨위엔 3단과 일본의 오오하시 히로후미 7단이 수행한다. 수십 년간 바둑과 관련 게임들의 역사를 연구해온 오사카 상업대학의 다니오카 이치로 이사장, 태국 바둑의 아버지라 불리는 CP그룹의 코작 회장, 바둑을 올림픽에 넣고자 노력하고 있는 IMSA(International Mind-Sports Association)의 토마스 시앙 부회장, 국제바둑연맹(IGF)의 박정채 전회장 등 여러 분들이 고문직을 맡았다. 또한 이사진에 독일, 호주, 중국, 대만, 캐나다, 크로아티아 등 여러 나라의 바둑 관계자들과 학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국제바둑학회 창립대회
국제바둑학회 창립기념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국제적 교류들이 중단되었고, 아직 대부분의 국제기전들이 온라인으로 치러지고 있다. 학술교류 역시 이전과 같은 활기를 띠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팬데믹에 대처하는 동안 인터넷을 통한 화상회의 기술은 크게 발전하였고,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 또한 절실히 느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올해 안에 첫 번째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학회지 제2호를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술대회와 학회지의 주제는 모두 “인공지능과 바둑의 미래”가 될 예정이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번에 반성한 것들을 되풀이해서 잘못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바둑계와 바둑학연구가 발전할 수 있도록 계속 지켜봐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코노미21]

 

* 학회 회원이 되시면 년 2회 논문집을 받아보실 수 있고, 국제학술대회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일반회원: 연5만원

- 평생회원: 50만원

 

문의: 김채림 사무국장 badukstudies@gmail.com

후원 및 회비납부 계좌: 하나은행 392-910248-65107 예금주) 김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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