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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시신훼손, 비문봉인...베트남 하미마을의 ‘상처’
학살, 시신훼손, 비문봉인...베트남 하미마을의 ‘상처’
  • 김창섭 기자
  • 승인 2023.02.24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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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22일 민간인 135명 학살

[이코노미21 김창섭] 베트남 호이안 하미마을의 웅우엔 티 탄은 최근 큰 기대를 갖게 됐다. 한국으로부터 희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같은 이름을 가진 민간인학살 피해자 퐁니마을의 웅우엔 티 탄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심 선고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원고인 퐁니마을의 웅우엔 티 탄은 1968년 2월12일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민간인 74명을 학살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은 중상을 입었고 가족은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한국군이 가해자이며 웅우엔씨 가족이 피해를 본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원고 측의 ‘적과의 교전 중 발생한 전투행위나 사고로서 정당행위’라는 주장에 대해 “전쟁 중이어도 적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거나 참여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는 상태에서 적대행위를 한 사람과 이를 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는 당시 베트콩이 군복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인 복장을 하고 전투행위에 참여한 경우가 있었다고 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에 따라 하미마을 학살 피해자가 주장해 왔던 진실 규명 및 한국 정부의 사과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하미마을의 진실 규명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퐁니마을의 경우 가장 많은 증거와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특히 미군이 촬영한 학살 현장 사진과 기밀 해제된 미국의 한국군 학살에 대한 기록이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하미마을은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하미마을 응우옌 티 탄이 `학살 당일 참상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증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지난 11일 하미마을 응우옌 티 탄이 `학살 당일 참상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증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다른 마을에 비해 하미 마을의 피해자 수가 많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지역에 주둔한 한국군과 마을 사람들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마을 사람들을 소집할 때 하미 마을 사람들은 “또 먹을 것을 주려나 보다”라고 순순히 응했다는 것이다.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은 “한국은 베트남 하미마을에 세 번의 큰 상처를 줬다”고 말한다. 피해자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1968년 2월 22일 청룡 부대의 3개 소대가 자동소총과 유탄발사로 마을 30가구 135명을 2시간 만에 학살했다. 이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었고 총을 들 만한 나이의 남성은 세 명에 불과했다.

총소리에 겁을 먹고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한 유족들은 학살이 끝난 날 밤 마을에 들어와 시신을 묻었다. 그러나 다음날 한국군이 불도저를 몰고 다시 돌아왔고 생존자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이후 불도저는 무덤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을 밀어버렸다. 유족들은 온전한 시신을 찾을 수 없었고 나중에 사지가 흩어진 시신을 보고 오열했다.

이후 2000년 12월 베트남 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 규명과 피해 마을을 지원했던 한국 평화활동가의 노력과 함께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기부로 하미마을 학살 위령비가 착공됐다. 그러나 완공을 앞둔 2001년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 직원의 문제제기와 함께 전우복지회는 비문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비문은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를 기리다...1968년 이른 봄 음력 1월 26일 청룡병사들이 미친 듯이 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가구 중에 135명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비문은 연꽃 그림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덧씌워졌다. 연꽃으로 봉인된 비문은 하미마을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비문은 연꽃 그림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덧씌워졌다. 사진=이코노미21
비문은 연꽃 그림이 그려진 대리석으로 덧씌워졌다. 사진=이코노미21

권 처장은 “양국의 상처로 남아 있는 비문 문제는 외교적, 법률적인 것 만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한국 시민사회에서 베트남 학살에 대한 진실이 더 많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진상 규명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21]

지난 12일 한국의 한베평화기행단이 하미마을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지난 12일 한국의 한베평화기행단이 하미마을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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