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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전령사들의 천국 ‘풍도’
봄 전령사들의 천국 ‘풍도’
  • 장한규 기획위원
  • 승인 2023.03.29 15: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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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 꽃
바람꽃은 추울 때 피고 금방 져
풍도바람꽃은 풍도에서만 자생
청일전쟁의 서막이 시작된 곳
북배에서 해넘이 볼 수 있어

[이코노미21 장한규] 크기는 작지만 봄을 알리는 야생화들이 천지 사방에 피어 있고 한편으로 청일전쟁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 풍도는 면적이 2.04㎢로 여의도보다 약간 작은 섬이라서 전체를 둘러보는데 하루 정도면 충분하고, 60여 가구, 120여 명이 살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속하며 대부도에서 16㎞ 떨어져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당진시의 난지도나 서산시의 대산읍 삼길포가 오히려 가깝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 봄철 야생화 탐방객들은 정기여객선으로 다니려면 1박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삼길포에서 임시여객선이나 낚싯배로 당일치기 여행을 했다고 한다.

아직 나뭇잎과 풀잎들이 싹을 틔우려고 잔뜩 웅크리고 있을 2월 말쯤 풍도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야생화들이 섬 여기저기서 화려하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복수초,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노루귀, 현호색, 꿩의 바람꽃이 이들이다. 풍도가 야생화의 천국이자 순례지로 알려지게 된 데는 이 섬이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풍도의 이름을 딴 고유종이 2종류나 있고, 꽃들이 보물찾기하듯이 드문드문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군락지를 이루어 화려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복수초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아직 풀 한 포기 싹을 틔우지 않은 늦겨울 얼음이나 눈 쌓인 틈바구니로 샛노란 꽃이 고개를 들고 있다면 이것은 복수초다. 얼음 사이에서 피어난다고 해서 얼음새꽃, 눈 속에 피어난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설련화(雪蓮花)라고도 한다. 복수초(福壽草)는 ‘복과 장수를 불러오는 꽃’이라는 뜻이며,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복수초
복수초

또 다른 봄을 알리는 꽃으로 바람꽃을 들 수 있다. 바람꽃은 추울 때 피고 금방 져버려서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바람처럼 피고 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풍도바람꽃은 바람꽃 중에서도 풍도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이기 때문에 2011년에 별도의 종으로 등록되었다. 흰색과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풍도바람꽃 사이로 가끔씩 꿩의 바람꽃도 보인다. 풍도바람꽃은 꽃잎이 5개이고, 꿩의 바람꽃은 더 많은 꽃잎을 갖고 있어 서로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풍도 고유종으로 이름을 등록한 풍도대극도 있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정다운 꽃이다. 대극은 ‘뿌리가 맵고 쓰기 때문에 먹으면 목구멍을 몹시 자극한다’고 해서 대극(大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풍도바람꽃
풍도바람꽃

지천으로 피어난 복수초와 바람꽃 사이로 드문드문 노루귀와 현호색을 볼 수 있다. 노루귀는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나오는데 꽃대를 밀어 올릴 때 꽃받침이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노루귀라고 하며 꽃대를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솜털이 정겹다.

노루귀
노루귀

야생화를 보려면 마을 뒷길 동구재 언덕을 올라서 오른쪽 은행나무 뒤편으로 조금 더 올라가 풍도 비밀정원(야생화 군락지)으로 가면 된다. 이곳에 가면 복수초와 바람꽃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조금 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노루귀와 현호색도 보인다. 다만 풍도대극은 후망산 정상에서 북배로 내려가서 남쪽 해안 산책로로 가면 길 양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풍도는 작은 섬이므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야생화 군락지뿐 아니라 북배에서 남쪽 해안 길을 산책하면서 풍도대극도 보고 마을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현호색
현호색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이 외세인 청나라와 일본을 불러들임으로써 일제의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가 본격화된 청일전쟁. 전쟁의 서막이 바로 이곳 풍도 앞바다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풍도해전이라고 부른다. 130년 전인 1894년 7월 25일 이른 아침,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 군함 3척이 청나라 군함 3척과 1100여명을 실은 군 수송선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하여 1000여 명의 청군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비하여 일본군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고, 풍도해전 이후로 일본은 조선 영토와 만주 지역에서 연전연승함으로써 청일전쟁에 승리하였다.

이 해전에서 사망한 청나라 군사 100여명의 시신이 해안으로 떠내려 왔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정성껏 거두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선착장에 있는 풍도마을지도에 후망산 정상에서 북배 해안 가는 방향으로 청나라 군사 잠든 곳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이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표지판을 찾지 못했다. 북배 해안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옆으로 묘비는 없고 잡초만 무성한 무덤 수십 기가 보였는데 아마도 이곳이 청나라 군사들이 잠든 곳인가 보다. 여기에 전사한 청나라 병사들을 위로하고 풍도 해전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안내판을 세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이 합심해서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여 이국땅에서 잠든 이들을 고향으로 보낸다면 상호 신뢰와 협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풍도는 원래 단풍나무가 많은 섬이라고 해서 풍도(楓島)였는데, 일본이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풍요로운 섬 풍도(豊島)로 개명하였다. 2021년 2월 3일 주민들의 노력으로 단풍나무섬 풍도의 원래 이름을 되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노력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북배
북배

풍도에는 야생화 외에도 몇 가지 볼거리들이 있다. 섬 서쪽 끝자락에 탁 트인 서해바다의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북배가 있다. 북배는 붉은 바위라는 말이 변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하는데, 풍도해전 때 죽어간 청나라 병사들의 핏빛이 어린 듯 선홍빛 색깔이 선명하다. 이곳은 저녁노을 바라보면서 비박할 수 있어 백패킹하는 사람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마을 바로 뒤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는데, 조선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가을에 근처를 지나가는 배들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고 풍도를 지나가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북배 방향으로 가는 해안로에 마을의 사연들을 담아 적어 놓은 경계석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것은 2013년 10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활생공명프로젝트로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사라져가는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목적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의 애정과 자긍심이 느껴진다. 다른 마을에서도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박하게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가꿔나가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코노미21]

사연이 있는 풍도 해안길
사연이 있는 풍도 해안길

 

<풍도 가는 길>

풍도 가는 배 서해누리호는 인천연안부두에서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여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 10시 30분 도착한다. 여기서 풍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짝숫날과 홀숫날에 따라 풍도에 먼저 들르기도 하고 인근 섬인 육도에 먼저 들르기도 한다. 육도에 먼저 들르는 경우 풍도까지는 30분이 더 걸리므로 배 시간을 확인해봐야 한다. 배는 인천에서 하루에 한 번만 왕복하므로 섬을 둘러보려면 불가피하게 1박을 해야 한다. 숙소는 여섯 군데 정도 민박집이 있는데 식당이 마땅찮아서 민박집에 요청하면 가정식으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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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 2023-03-31 15:47:07
바람꽃이 이렇게 생겼군요. 너무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