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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바벤] ③ 분자육종기술
[닥터바벤] ③ 분자육종기술
  • 허원(강원대 환경생물공학부)
  • 승인 2000.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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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으로 효소를 진화시킨다
생명체 하면 유전자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세포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효소다.
효소는 유전자 정보대로 만들어진 단백질로, 화학반응의 촉매작용을 한다.
즉 유전자를 복제하거나 유전자 정보를 해석해 단백질로 만드는 것까지 모두 효소가 하는 역할들이다.
하나의 세포 안에는 수천종류의 효소가 만들어져 생명활동 유지를 돕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효소도 많다.
섭취된 음식물을 위나 장에서 소화시키는 것도 효소이며, 소화를 도와주기 위해 소화 효소가 포함된 약을 먹기도 한다.
삶아 빤 것처럼 깨끗하다고 광고하는 세제 역시 단백질분해 효소를 포함하고 있다.
때의 성분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인체 표면에서 발생한 단백질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기름때를 잘 씻기 위해 지방질 분해효소가 포함된 세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유전자 무작위로 섞어 효소 기능 개량…단백질 치료제 등 효과 높여 병원의 임상병리과에서 채혈을 해 핏속의 콜레스테롤 양을 측정할 때도 콜레스테롤 산화효소를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간기능 지표로 알고 있는 GPT나 GOT도 바로 효소의 양을 나타내는 수치다.
유해 산소 제거 기능을 가진 화장품엔 ‘SOD’가 포함돼 있다.
이 역시 슈퍼옥시데디스무타제(Superoxide dismutase)라는 효소의 한가지다.
가공식품 생산이나 의약품 생산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종류의 효소를 이용한다.
자연에서만 효소를 찾지 말라 바이오 기술은 지금까지 자연계에 있는 유용한 효소를 찾아내 이를 활용하는 데 힘을 쏟았다.
더 좋은 효소나 새로운 효소를 얻기 위해 다양한 생물체 표본을 수집하고,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미생물을 채취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95년 스템머라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가 효소를 인공적으로 진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한다.
과거에는 새로운 효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만들어내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 기술은 효소 기능을 바꾸거나 개량하는 것인데, 자연상태에서 일어나는 진화와 과정이 비슷하다.
또한 단백질이라는 분자가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자진화(molecular evolution)라고 주로 불린다.
이 기술의 핵심은 유전자 중합연쇄반응(PCR)을 이용해 비슷한 두종의 유전자 일부를 서로 무작위로 교환해 다양한 유전자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식물을 교배하듯 분자를 서로 뒤섞을 수 있으므로 분자육종(molecular breeding) 혹은 유전자 섞기(gene shuffling)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가진 효소의 유전자를 골라낼 수 있을 때까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진화와 비슷하게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커나 유전자를 서로 무작위로 섞는 방법으로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유전자 진화(directed gene evolution)라고도 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효소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효소의 단점은 수명이 짧고 제한된 조건에서만 촉매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 진화 기술은 효소의 수명을 늘리거나 산도(pH) 및 온도가 바뀌어도 효소가 계속 촉매작용을 하도록 만든다.
효소가 촉매작용을 할 때 반응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다른 원료를 사용해도 촉매작용이 가능하도록 할 수도 있다.
나아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 효소를 새로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이 될 수도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아주 다양하다.
인터페론과 같은 단백질 치료제를 부작용은 적고 효능은 높이도록 진화시킬 수 있다.
백신 역시 주성분은 단백질이므로 적은 양으로 장기간 면역이 가능하도록 개량하는 것이 가능하다.
농업에도 활용된다.
농작물의 특정 효소 기능을 변화시켜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갖는 작물을 개발할 수도 있다.
공업용 효소의 개량은 물론이고, 정밀화학공정에서도 분자 육종기술을 활용해 상압·상온에서도 화학촉매처럼 작용하는 환경친화적 공정을 개발할 수 있다.
분자육종의 선두기업 맥시젠 이 기술을 처음 발명한 스템머는 당시 제약업체인 글락소에서 분사한 어피맥스(Affymax)라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강력한 특허를 등록했고, 이 기술을 기반으로 97년 맥시젠이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맥시젠은 창업 초기부터 전략적 제휴와 연방정부의 연구자금을 지원받아 9400만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뒤 주가가 420달러까지 치솟은 기록도 세웠다.
세계 최대 공업용 효소생산 회사인 노보 놀디스크(Novo Nordisk A/S)와도 전략적 제휴를 맺고 맥시젠의 분자육종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산업용 효소를 개발하기로 했다.
듀폰 계열사인 파이오니어하이브리드에게는 옥수수, 콩 같은 곡물의 저항성을 개선하는 데 이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디에스엠, 아스트라제네카, 애버트, 화이자 및 노바티스 등의 대기업과도 비슷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맥시젠은 이를 통해 대기업에 자본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기술 사용료와 연구개발비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전략적 제휴관계에 있는 제품이 개발에 성공할 경우 받는 성공비용(milestone payment)은 1억4500만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략적 제휴를 몇몇 회사에 한정함으로써 최고의 기술사용료를 확보하겠다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분자육종 기술 자체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PCR을 다루는 실험실에서는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 자체가 맥시젠의 특허에 위배된다.
연구개발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이 기술을 이용해 성능이 개선된 효소나 그 효소가 포함된 생물체를 만들어도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맥시젠의 특허를 피해나가는 방법을 개발한 바이오 벤처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이버사(Diversa)라는 회사는 유전자 조각을 만드는 부분을 달리해 특허를 받았고, 엔키라(Enchira)는 한 방향의 단일나선 무작위 조각과 반대 방향의 단일나선 유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특히 우리나라 아미코젠은 방향성 단일나선 유전자 조각만을 이용해 분자 육종을 구현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후발주자들 무섭게 추격 현재 다이버사는 노바티스 계열회사 및 다우케미컬, 롱프랑, 핀피드 등의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술 가치 극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맥시젠이 이 기술 하나로 1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형성할 수 있었고, 현재 5억달러 이상의 시장 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분자육종기술의 춘추전국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되돌아가야 할까나
유전자 기술이 펼치는 가상미래 김씨는 슈퍼마켓에서 어떤 우유를 살까 고민하고 있다.
새로 나온 우유에는 사람의 위 속에서 우유의 카제인 단백질이 소화 효소로 작용한다고 씌어 있다.
위산이 분비되는 위장에서는 우유의 카제인을 소화효소로 변하도록 진화시킨 모양이다.
노년인구의 비율이 높은 요즘에는 그런 제품이 잘 팔린다고 한다.
요즘은 우유를 사면 플라스틱인 우유통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 팩이 같이 들어 있다.
우유통을 버릴 때 이 미생물 팩을 뜯어 플라스틱 통에 넣어 버리도록 한 것이다.
매립을 하면 플라스틱이 잘 분해될 수 있도록 돕는다.
몇년 전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개발되었을 때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뒤 어찌어찌 시행된 제도로 김씨는 기억한다.
슈퍼마켓에도 최근 들어 분자육종기술로 개발됐다는 새로운 제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당도가 계속 증가한다는 오렌지, 웬만큼 흔들어도 노른자가 깨지지 않는 계란 등이 잇따라 등장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식품이나 먹을거리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사람도 이젠 태어날 때 유전자를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분자육종기술이 활짝 피어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술로 개발된 백신 유전자를 이미 몸 속에 갖고 태어났다.
그래도 김씨 머리가 복잡해진다.
김씨는 요즘 유전자 변형이나 인공적 진화를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하는 ‘백 투 그린’이라는 시민단체에 가입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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