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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경제] 장고 들어간 '경영 귀재 '
[해외경제] 장고 들어간 '경영 귀재 '
  • 함석진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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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잭 웰치 회장, EU 반대로 하니웰 인수 무산 후 장고 들어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은 지난해 10월19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가 하니웰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메모지를 펼쳤다.
하니웰은 항공전자공학과 사업용 제트엔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알짜 기업이었다.
웰치 회장은 항공기엔진, 플라스틱, 전력시스템 등 GE가 석권하고 있던 시장과 하니웰의 사업분야를 하나하나 줄을 그어 연결해보았다.
이름만으로는 거의 전부가 겹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시장에서 직접 부닥치는 제품은 없었다.
GE 사업분야의 빈 틈을 메워주는 완벽한 결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웰치는 마지막으로 숫자를 맞춰보았다.
하니웰의 기업가치는 650억달러 정도는 돼 보였다.
그러나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의 하니웰 인수 예정가는 450억달러였다.
웰치는 무릎을 쳤다.
“내가 왜 이 보석을 진작 보지 못했을까?” ‘항상 깨어 있어라. 늦기 전에 움직여라’는 그가 20년을 지켜온 경영철학이었다.
“정말 늦은 것일까?” 시간은 촉박했고, 마음은 바빴다.
다음날 아침 뉴저지에 있는 하니웰 본사에서는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최종 결정하는 이사회가 열렸다.
웰치는 그곳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하니웰 마이클 본시뇨르(60) 회장을 찾았다.
“투표를 잠시 중단하시오. 더 좋은 제안을 하겠소.” 웰치는 본시뇨르 회장에게 이렇게 말한 뒤 망설임 없이 종이에 3자리 숫자를 적어넣고 사인을 한 뒤 그것을 팩스로 보냈다.
종이엔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의 제안보다 무려 34억달러가 더 많은 484억달러가 적혀 있었다.
하니웰 이사회는 고민없이 웰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 경영진도 금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을 받는 웰치와 충돌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3일 뒤인 10월23일 웰치 회장은 뉴욕 록펠러센터에 있는 GE 본사에서 본시뇨르 회장과 계약서에 사인한 뒤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업가로서의 마지막 작품을 훌륭하게 끝내고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게 해준 많은 사람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웰치다운 작전’을 통해 거의 손에 거머쥐었던, 그의 이 마지막 희망은 지난 3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합병불허 결정 하나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81년 45살의 나이로 GE의 최연소 회장에 오른 뒤 이 회사를 미국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웰치는 올해 4월 회장직에서 물러나 은퇴할 계획이었으나, 하니웰 합병 건을 직접 마무리짓고 싶다며 은퇴일정을 11월로 늦춰놓은 상황이었다.
은퇴마저 늦춘 채 “마무리 짓겠다” 웰치 회장은 취임 당시 120억달러였던 회사의 시장가치를 지난해 5250억달러로 44배나 끌어올리면서 신화적인 경영인의 입지를 굳혀왔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의 경영원칙은 10년 만에 100개가 넘던 사업분야를 12개로 줄이고, 그 가운데 11개를 1위에 올려놓았다.
2%에 머물던 생산성은 4.5%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는 관료주의에 젖어 흐느적거리던 거대 조직에도 칼을 대 40만명이 넘던 종업원 수를 그 절반 수준인 22만명으로 줄였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의 잔인한 감원정책 때문에 그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중성자탄은 건물은 고스란히 남기고 사람만 없앤다.
그가 이 과정에서 사용한 ‘리스트럭처링’이란 단어는 경영학과 경제학의 용어가 됐다.
그는 95년엔 3.5%가 넘던 제품 결함률을 5년 안에 1만분의 1로 낮춘다는 ‘6 시그마’라는 품질혁신 운동을 벌여 GE 제품의 수준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이 운동은 각 사업장의 품질관리 업무를 측정→분석→개선→통제라는 4단계의 과정으로 나눠 진행하고, 이를 다시 6개월마다 반복해서 감사하는 것으로, 전세계 많은 기업들에게 품질관리 방법의 교과서가 됐다.
GE의 제품은 이미 시장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웰치는 왜 그렇게 피곤할 정도로 품질을 강조했을까? 웰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지 경쟁자들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품질을 높임으로써 경쟁적인 상황 자체를 바꾸고 싶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품질, 그들의 성공에 너무나도 중요한 품질을 달성해, 그들에게 우리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게 만들고 싶다.
” 그는 인수·합병의 귀재이기도 했다.
최고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가치있는 기업을 사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 85년 을 가지고 있던 가전업체 알시에이를 포함해 재임 중 700여개 기업을 사들였고, 또 그 정도의 기업을 팔아치웠다.
그런 그에게도 하니웰 인수 건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동안 인수·합병에 들어간 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한꺼번에 투자하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웰치 회장이 은퇴를 늦추고 하니웰 인수를 직접 마무리짓겠다고 발표했을 때 “자리를 놓지 않기 위해 계획된 깜짝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1년을 더 있기 위해 분기마다 500억달러짜리 회사를 인수할 생각은 없다”고 당당히 응수했다.
이처럼 정성을 쏟은 하니웰 인수가 물 건너간 지금, 그는 입을 닫고 있다.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를 놀라게 할 또다른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전세계에서 수많은 시선이 그의 입과 다음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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