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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할인점 출점경쟁 무한궤도
[커버스토리] 할인점 출점경쟁 무한궤도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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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엔 400여개 이를 듯… 업체마다 대형화·고급화로 전략 수정
사람은 인생에 세번 기회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은 도약의 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10년에 한번 정도. 소매유통 산업은 바로 지금 그때를 맞고 있다.


주요 백화점과 할인점 업체들의 주가는 지금 연초보다 두세배씩 뛰어올랐다.
외국 기업과 자본들도 한국에 직접 유통회사를 차리고 키워보려거나 기존의 한국 유통업체를 사기 위해 돈가방을 들고 몰려든다.
다른 대부분의 업종들에서는 경기가 점점 더 가라앉거나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상황이지만, 유통업계는 최근 매출이 지난해 같은 시기를 넘어선다.
증권회사의 유통업 담당 애널리스트들도 오감이 확 깬다는 듯한 표정으로 신바람이 나 있다.
마치 닷컴 열풍 때 통신과 인터넷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보여줬던 분위기와 흡사하다.

하지만 행복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마음에 불안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현재를 말할 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유통업계 리더들이 내일도 얘기해보자면 갑자기 양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이들이 불안해하는 미래는 아직 멀리 있지만, 불안감을 일으키는 징후들은 이미 가까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2~3년 후엔 전 상권 포화상태 어떤 역풍이든 역풍은 앞서 나가는 선두주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느낀다.
한해에 낮게는 30%, 높게는 100% 속도로 성장하면서 소매시장 구도 변화의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는 할인점들은 ‘셔틀버스 운행 금지조처’라는 역풍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전국의 백화점과 할인점들은 모두 1800대에 이르는 셔틀버스 운행을 6월20일부터 중단해야 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위치한 할인점들이 백화점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할인점 매출에서 식료품 등 저가품 매출의 비중이 높다는 것도 불리한 점이다.
교통이 불편해지면 할인점 고객들이 주택가 근처 상가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게 된다.
셔틀버스 운행 금지조처에 따른 연간 매출액 감소효과는 백화점의 경우 4~6%, 할인점은 6~9%라고 애널리스트들은 추산한다.
반면 할인점의 성장 항해를 밀어주던 순풍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소비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다.
현대투자증권은 올해 국내 소매판매액 증가율을 6.6%로 예측한다.
IMF 구제금융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두자릿수를 유지해오던 소매판매액 증가율이 한자릿수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경제성장률의 둔화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최근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애초 잠재성장률로 잡았던 5~6%에서 4~5%로 낮췄다.
UBS워버그, CSFB 등 외국계 증권사들은 3.3%에서 2.8%로, ADB(아시아개발은행)도 4.4%에서 3.9%로 각각 올해 예상 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성장률 둔화보다 더 치명적인 역풍이 머지 않은 앞날에 놓여 있다.
수요증가 속도보다 공급증가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장 경쟁이 과도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쪽에서 ‘허리케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할인점 5개 이상을 운영하고 있는 주요 유통업체 11개사를 조사해본 결과, 그 가운데 8개 업체가 다점포망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한다며 대규모 출점계획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출점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3개 업체 중 월마트와 LG상사(LG마트)는 직상장 업체여서 공시를 하기에 앞서서 사업계획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법정관리 상태에 있는 킴스클럽은 직접 출점을 늘리는 대신 지방 점포들을 가맹점으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체인망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출점 계획의 규모는 신세계 이마트가 가장 크다.
신세계 이마트는 현재 35개인 점포 수를 올해 43개, 2002년 54개, 2003년 64개로 늘리고, 2004년엔 현재의 두배가 넘는 75개, 2005년엔 85개까지 확장 운영할 계획이다.
롯데마그넷도 세력 넓히기 작업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마그넷은 현재 18개인 점포를 올해 말까지 25개, 2005년까지 70개까지 총 52개 점포를 더 열어나갈 방침이다.
삼성테스코는 7개인 홈플러스 매장을 2005년까지 55개로 늘릴 예정이다.
다른 할인점들도 9개에서 19개까지 더 출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계획에 따르면 2005년까지 까르푸는 21개에서 40개로, 하나로클럽은 13개에서 30개로, 코스트코는 5개에서 14개로 늘어난다.
11개 주요 업체들이 거느리는 할인점 수만 따져봐도, 현재의 152개가 올해 말에 180개, 2005년에는 366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월마트와 LG마트, 그리고 할인점 한두개만 운영하는 업체들은 제외하고 집계한 숫자이니, 전체 할인점의 점포 수 증가속도는 이보다 더 빠를 것이다.
이마트 이인규 실장은 2005년쯤이면 총 점포 수가 400여개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인구가 소화할 수 있는 할인점 점포 수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3천평 이상 규모 점포 1개소당 적정 인구를 20만명 정도로 본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적정 할인점 수가 250여개 정도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런 의견이 맞다면, 2~3년 뒤면 할인점의 거의 전 상권이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세계 이마트 이인균 마케팅실장은 “인구 10만명은 독자상권, 20만명은 경합상권, 50만명은 다자간 경쟁상권으로 본다”며 “1천억원 이상 매출을 내야 효율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농심가의 전략기획팀 이승찬 대리는 “지도를 펼쳐놓고 점을 찍어보면 할인점을 세울 수 있는 포스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가격경쟁 보다는 서비스 경쟁으로 사자가 하이에나보다 밀림 속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개체간 거리가 멀듯, 대형 할인점들 역시 적당한 개체간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면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경쟁이 가장 격렬한 지역은 경기도 일산이다.
인구 80만명의 위성도시 하나에 이마트 일산점을 비롯해 마그넷 주엽점, 까르푸, 월마트, LG마트 등 할인점 10개와 롯데, 그랜드백화점, 뉴코아백화점, 세이브존백화점 등 백화점 4개가 들어서 있다.
최근 한두달 사이에만도 롯데마그넷 화정점과 농협 하나로클럽이 영업을 개시했고 킴스클럽 화정점을 인수한 월마트도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서울 지하철 3호선 마두역과 화정역, 주엽역 부근은 ‘사자’들의 으르렁거림이 멈출 날이 없다.
이 지역에선 이마트가 ‘왕’ 자리를 접수했다.
이마트는 월 130억, 연 156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유력한 경쟁자인 까르푸를 추월하고 있다.
경쟁 매장이던 마그넷 일산점은 경쟁에서 밀려 최근 롯데백화점 일산점의 식품관에 통합돼버렸다.
화정역에서 상권을 주도하던 LG마트는, 지난 5월 말에 넓고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마그넷 화정점한테서 강력한 공세를 받고 있다.
이달 중 월마트 화정점이 열리면 3파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싸움은 독자상권에까지 번지고 있다.
홈플러스가 연 2541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장악하고 있던 대구에서는 지난 4월 이마트가 4천평이 넘는 큰 매장 덩치를 선보이며 도전장을 냈다.
연 1250억원 매출로 울산지역을 평정했던 롯데마그넷 울산점 상권에는 월마트, 홈플러스 등이 진출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 줄줄이 할인점 개점일정이 잡혀 있는 인천 간석동과 서울 영등포도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판이 달라지면 게임의 법칙도 바뀐다.
할인점 업계는 초기처럼 시장선점이나 가격경쟁을 앞세우기보다는 매장의 대형화, 서비스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쪽이 이기는, 새로운 게임 법칙을 익히고 있다.
최근 매출 실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업체는 홈플러스다.
홈플러스를 운영중인 삼성테스코의 설도원 상무는 홈플러스가 7개 진출지역 모두에서 매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다른 점포보다 10원, 20원 싸게 파는 것보다는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와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과란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 개장되는 인천 간석점은 1만2천여평의 부지에 쇼핑, 행정민원, 은행, 여행, 문화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로 짰다.
이러한 ‘원 스톱 라이프 서비스’ 개념은 최근 개장한 이마트 가양점이나 성수점, 마그넷 화정점 등에 이미 도입되고 있다.
‘원 스톱 라이프 서비스’를 도입하려면 매장의 대형화를 피할 수가 없다.
자금동원력과 구매력이 강한 업체여야만 써볼 수 있는 전략이다.
따라서 경쟁은 힘있는 자들 사이로 압축된다.
현재는 이마트가 35개 점포, 시장점유율 29%로 저만큼 앞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그뒤로 마그넷, 까르푸, 홈플러스가 10% 안팎의 점유율로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마그넷의 강성득 본부장은 좋은 상권과 시스템을 가진 이마트, 국제적 규모의 자금동원력과 구매력을 가진 홈플러스와 까르푸가 마그넷과 함께 장기적으로 4강 구도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라 안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할인점들은 고개를 슬쩍 바깥으로 돌린다.
농심가의 메가마켓은 지난 1월 중국 선양(沈陽)시에 매가마(每家瑪)를 열었다.
97년 상하이에 진출한 이마트는 내년에 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투자를 재개할 계획을 세우면서, 북한 시장도 눈여겨보고 있다.
마그넷 등 다른 할인점들도 국내 투자가 끝나는 대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나가겠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이마트 이인균 마케팅실장은 “같은 문화권이라고는 해도 우리보다 유통업이 발달한 일본보다는 우리의 유통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중국으로 가는 것이 승률이 높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내 할인점들이 고급화·대형화하면서 최근 출점비용이 400억~500억원으로 늘어난 것도 중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농심가 전략기획팀 이승찬 대리는 중국에서의 출점비용은 40억원으로, 국내에 비해 10~20% 수준에 불과하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중국 시장의 점포당 매출은 예상했던 것보다 80% 이하라고 한다.
중국 고객 1명당 매출액이 낮은 탓이다.
250개 넘으면 구조조정 ‘눈앞’ 이래서 유통 전문가들은 ‘역시 조강지처’라고 말한다.
한국 시장이 중국 시장보다 여전히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삼성테스코 설도원 상무는 “일본과 미국은 소매업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0%가 넘는다”면서 “소매시장이 GDP의 20% 남짓한 우리나라는 유통업의 성장 가능성에 아직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분석한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저가구매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시장포화 상태가 오더라도 할인점 업계는 계속 성장해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할인점망 중 한 점포가 죽는 일은 있어도 한 할인점망 전체가 죽거나 전체 시장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시장포화가 닥치면 기존점의 인수합병이나 쇄신(리뉴얼) 작업이 시작된다.
현대투신증권 박진 과장은 “할인점 수가 250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시장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파워센터 등 새로운 형태의 할인점도 등장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롯데그룹의 레몬, 신세계이마트의 에브리데이를 중심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할인점 시장이 몸뚱이를 팽창시키면서, 이전의 할인점 형태는 뜯어고쳐지고 있다.
10년 만에 온 성숙의 계절에 할인점 업계는 어떤 새로운 모습의 소매시장을 탄생시킬까?
“3강 구도로 압축될 것”
황경규 이마트 대표이사 할인점 시장은 2003년 정도가 되면 과포화 상태의 전조를 보이면서 경쟁력 있는 상위 3개 정도의 업체들로 경쟁구도가 압축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업계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 중심으로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겠지요. 변수는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외국 할인업체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유통시장을 공략할 것인가, 아니면 투자를 보류 또는 중지할 것인가입니다.
할인점은 신속한 다점포화가 경쟁력의 원천인 만큼 다점포망을 구축한 업체들이 생존할 확률이 그만큼 큽니다.
이마트는 그때를 대비하여 경쟁체질을 강화하면서 업계 1위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인점은 3~5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유통시장을 주도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인점의 성장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같은 다른 업태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업태들도 각자 본연의 성격에 맞는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리라 봅니다.
“할인점이 백화점 이긴다”
강성득 롯데마그넷 본부장 할인점은 2005년, 2006년까지 성장할 겁니다.
물론 성장저해 요소도 있습니다.
지방자체단체들은 재래 소매업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점포 인허가를 까다롭게 내줄 것 같습니다.
대형화 추세에 있는 할인점들은 토지용도 변경 제한 때문에 중공업지역 외엔 좋은 부지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할인점들이 출점을 신중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죠. 우리나라는 특정 지역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할인점이 입지를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통 선진국에서처럼 상권당 적정 인구를 10만명으로 보면 450개, 5만명으로 보면 900개까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인구밀집 형태나 지형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늘어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따라서 인구 20만명 당 1개, 점포 수 250여개 정도가 적정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유통이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의 소매시장도 대형화, 체인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유통이 전체 소매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0% 정도인데, 앞으로는 50%까지 확대될 겁니다.
백화점보다는 할인점이 유통시장의 주류를 이루게 되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기업형 유통, 성장여지 아직 많아
“꿀 사세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만 해도 별다른 인기척도 없이 대문을 삐쭉 열고 고개를 들이밀던 보따리장수들이 있었다.
그네들은 어느 집에 가든 그 집 식구들을 죄다 모아 앉혀놓고 꿀을 길게 늘이거나, 조개젓이니 무말랭이니 하는 밑반찬거리들을 맛보게 하면서 웬만하면 물건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앞으로 몇년 뒤엔 시장상인마저도 보따리장수들을 따라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백화점, 할인점, 홈쇼핑 등 대형 기업형 유통이 재래시장의 기능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기업형 유통이 전체 소매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년 26.55%에서 지난해 29.78%로 3.23%포인트 늘어났다.
이것은 편의점이나 대형 슈퍼마켓들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편의점과 슈퍼마켓들을 더하면 기업형 유통의 비중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할인점, 홈쇼핑 시장은 성장률 30~40% 이상의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할인점은 99년 52.5%, 지난해엔 41.1%씩 성장했다.
홈쇼핑업은 지난해 49.5% 성장해, 그 전해보다 6%포인트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백화점은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99년 16.7%였던 성장률은 지난해 13.2%로 낮아졌고, 올해는 7%대까지 더 떨어질 전망이다.
이런 속도라면 소매업태의 대표주자가 곧 교체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내후년쯤에는 할인점들의 매출이 백화점들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변화는 소비자 구매패턴에서부터 오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거쳐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소비자, 특히 중산층 소비자들은 값싸고 거리도 가까운 할인점으로 주요 구매장소를 옮기고 있다.
반면 고소득층 소비자들은 더욱 고급화된 상품과 구매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상품별 구매장소도 크게 달라졌다.
백화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의류, 구두, 보석장신구 등 소비자들이 고급을 추구하는 상품들은 백화점 이용비율이 50~68%로 98년에 비해 10~20%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저가를 추구하는 식품과 생활용품은 할인점 이용비율이 각각 51%와 47%로 98년보다 15%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재래시장 이용비율은 전체 상품에 걸쳐서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품목별 재래시장 이용비율을 보면 보석류가 0.7%로 가장 낮고, 가장 높은 식품류도 20.8%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투자증권 박진 과장은 “일본, 미국 등 유통 선진국에서는 기업형 소매시장 비중이 50~70%에 이른다”며 “이것이 30%도 되지 않는 우리 유통시장에서는 아직 기업형 소매시장의 성장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
유통의 ‘고수’를 잡아라
“사람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할인점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이에요. 고객들은 10원, 20원 싼 곳보다 기분 좋은 곳을 찾습니다.
” 한 할인점 점장은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경쟁사에서 몇달 전 옮겨온 그는 근처에 대형 할인점이 생길 때마다 고객들이 우르르 옮겨다니는 현상을 자주 목격했다.
그가 근무했던 할인점의 매상도 경쟁 할인점이 들어섰을 때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가격을 더 낮추는 것은 무리라고 여기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직원들을 독려하고 서비스 교육을 강화한 결과, 매출은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90% 수준으로 회복됐다.
할인점들의 지역별 경쟁이 치열해지고 신규출점이 가속화되면서 업체들마다 유능한 임원과 점장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임원과 점장들의 능력이 점포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경쟁사에 임직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인센티브와 복지를 강화하랴, 신임점장들을 교육시키랴 분주하다.
특히 신세계 이마트는 IMF 사태 때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간 고급인력들이 지금 경쟁사들에서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고 있어 ‘유통업계의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들이 롯데마그넷 강성득 본부장과 영업전략팀 허수 팀장, 농심가의 전국주 사장과 김승령 상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유통업계의 고수들이다.
신세계 이마트는 앞으로 인재 누출이 없도록 사원 복지와 인센티브 제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올 한해 15개점을 열 계획인데, 신임 점장의 대부분을 신세계와 이마트 내부에서 승진인사로 채울 방침이다.
신규점포에는 이미 업무를 익힌 기존 점포의 점장을 배치하고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진 기존 점포에는 각 점포의 팀장급을 점장으로 승진시킨다는 것이다.
또 이익 달성도에 따라 100~1000%의 성과급을 지급한다.
신규점포를 지을 때는 휴게실, 샤워시설 등 직원들의 복리후생 시설도 최신식으로 갖춰놓는다.
새로 지은 가양점이나 성수점에는 여직원 흡연자들이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우라고 여직원 전용 흡연실도 배치했다.
올해 9개를 출점하기로 한 롯데마그넷은 올해부터 점장 해외연수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일본 등 유통 선진국에 연수를 보내고 선진 유통업체의 전문 컨설턴트를 초빙해 점장 능력향상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도 올 하반기 6개점, 내년 10개점 출점을 앞두고 있어 점장급 인력 확보에 고심이 크다.
그래서 삼성테스코는 올해부터 새로운 점장 조기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론과 실습, 자율연구, 벤치마킹은 물론 테스코 영국 본사에서 직접 실무교육까지 받는다.
기존의 양성 프로그램은 경력 15년차 직원들이 대상이었으나 새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점포확장에 맞춰 양질의 인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경력 8년차 직원으로 조정됐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할인점 싸움은 지역별 싸움”이라면서 맨파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점포당 경쟁력을 높이는 곳이 최종적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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