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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주)한국 2008년 부도?
[이슈] (주)한국 2008년 부도?
  • 이원재
  • 승인 2001.03.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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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 보고서에 금융감독위원회 발끈…양측 입장 쟁점별 점검
“차기 정부 임기말인 2008년 공공 부문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60%까지 이를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지탱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이다.
다음 정권이 이런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집권 첫해인 2003년부터 매우 고통스럽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모건스탠리딘위터(MSDW)증권의 이코노미스트 앤디 셰가 쓴 한국 경제 보고서 <또 하나의 일본?>(Another Japan?)이 한국 정부와 금융가에 한바탕 파문을 일으켰다.
홍콩에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국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다우존스뉴스와이어> 등 일부 외신에서도 이를 받아 세계에 뿌렸다.
급기야 금융감독위원회가 모건스탠리에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고 해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27일 발표한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한국은 수출비중이 너무 높아 일본처럼 오랜 장기불황을 버텨낼 수 없다.
한국은 일본처럼 저금리와 강한 엔을 유지하는 사치를 부릴 수 없다.
” 일본은 대외적으로 강한 엔을 유지하면서 ‘제로금리 정책’을 통해 국내금리를 극단적으로 낮은 상태로 유지했다.
저금리 덕에 기업들은 금융비용 부담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엔화가치가 높아 수출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애를 먹기는 했지만, 워낙 세계적인 브랜드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용경색, 저금리, 경기하강, 증시침체 등의 현상이 10년이나 이어지면서도 국가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최근 경제 상황은 그런 일본을 따라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앤디 셰가 보기에 한국은 일본만큼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부양하는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자연스레 금리하락세가 멈추면서 일본식 ‘불황 균형’은 깨진다.
금리상승과 함께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이 순간 한국 경제에는 위기의 징후가 피어오른다.
쟁점 1. 2008년 위기는 오는가 [모건스탠리] “기업부채 떠안다 국가부도로” [금감위] “기초적인 계산조차 틀려”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앤디 셰가 보기에 한국은 기업 영업이익과 금융비용 사이의 격차를 정부가 메워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산업은행 보증기능, 채권시장 안정기금, 은행에 대한 매수강요 등을 통해 올해 만기 돌아오는 60조원어치의 회사채를 해결해줬다.
기업 부문의 채무가 간접적으로 정부 부문으로 흘러넘어온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식의 기부행위는 수명이 길지 않다.
앤디 셰는 현재 한국 기업들의 전체 부채규모가 GDP 규모와 같고, GDP가 현재와 같이 연 6%대의 성장을 보인다면, 기업 영업수익성장은 기껏해야 GDP의 3%대에 머물게 된다고 전망한다.
그러면 기업의 평균차입비용이 6~8% 이상이기 때문에 기업 영업이익이 차입비용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고, 1년에 GDP의 약 5%씩이 공공 부문 부채에 추가된다.
현재 GDP의 30%를 넘는 공공 부문 채무는 2008년까지 60%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바뀌는 2003년에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주장을 무지의 소치로 몰아붙인다.
금감원은 반박발표문에서 “보고서는 기초적인 계산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커다란 우”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차입비용은 영업수익 전체로 갚는데, 앤디 셰는 증가분만으로 갚아야 한다고 계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금감원 이태규 조사연구국장은 “앤디 셰의 계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대만은 매년 GDP의 6.9%, 일본은 3.3%, 미국조차도 2.6%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반박했다.
금감원의 논리는 더 이어진다.
“한국 기업의 영업수익은 97년 지급이자의 62.1%, 98년에는 98%, 99년 83.5%로 IMF 뒤에도 한번도 이자보다 적었던 일이 없다.
” 어처구니없는 계산 실수에다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이 잘못돼 나온 틀린 보고서라는 것이다.
앤디 셰는 이 지적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다.
쟁점 2. 구조조정은 절대선인가 [모건스탠리] “구조조정 2003년에 한번 더” [금감위] “대규모 구조조정 사실상 끝” 그러면 ‘국가부도 보고서 파문’은 한 외국계 분석가의 실수로 일어난 한차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일까? 하지만 계산법에 대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보고서가 담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금감원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건드린 것은 보고서 가운데 “다음 정권이 들어선 2003년에 대대적 구조조정이 한번 더 있어야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진행해온 구조조정에 대해선 평가조차 하지 않고, 다음 정권에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니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금감원 이태규 국장은 “연쇄도산 우려로 공적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된다거나 하는 식의 구조조정은 이제 마무리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왜 앤디 셰는 구조조정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생각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기업 빚이 GDP의 100%를 훌쩍 넘어서고 영업수익이 이자비용을 감당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 빚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의 두배에 이른다.
영업이익이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영업이익보다 금융비용이 높으면 구제불능”이라는 식의 시각에 대해서는 반박의 목소리가 강하다.
예컨대 같은 그룹 소속이고 똑같이 빚더미에 앉아 있더라도 현대건설의 채무와 현대전자의 채무는 국가경제 전체로 볼 때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건설업종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그야말로 국가채무를 늘리는 데만 기여할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을 이끌 정도로 대규모 수출을 하고 있는 반도체 업종은 경기가 좋아질 때 대폭 흑자를 내면서 공적자금을 되돌려줄 가능성이 높다.
성장성이 있고 영업이익이 나는 기업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면 채무조정을 통해 회생을 돕는 게 당연하다.
쟁점 3. ‘빚’은 절대악인가 [모건스탠리] “터널의 끝은 국가부도” [금감위] “부실기업 원조는 최소한의 위기방지책” 앤디 셰 위기론의 핵심은 ‘빚’이다.
전반적으로 정부 부문에서든 기업 부문에서든 ‘빚’은 부실이고 절대악이라는 눈총을 받는다.
앤디 셰는 한국의 경우 기업의 채무는 그다지 줄지 않은 채 정부 채무는 자꾸만 늘어나는 걸 보면, 공적자금을 퍼부어도 기업의 금융비용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개별 부실기업의 빚을 떠안는 작업은 전체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지원은 부실기업에 한정된 문제가 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정부가 영업에서 회생가능한 기업들의 부채를 어느 정도 책임져주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결과 GDP대비 기업채무는 98년의 143%에서 99년 129%, 지난해 6월 121%로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채무뿐만 아니라 기업채무 역시 무조건 죄악시할 게 아니라 성격을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지금 부실한 자산으로 보이는 것도 경기가 좋아지면 우량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며 획일적 시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70년대 중화학공업 대량투자 때를 생각해보라. 정부는 해외차관 끌어오느라 법석이었고 기업은 대규모 차입투자로 빚더미에 올라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이 산더미 같은 빚이 86년 이후 3저호황 때 엄청난 돈을 벌게 하는 기반이 됐다.
” 경기반전 때 성장하는 부문에 속한 기업의 채무는 우량자산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의보다 고민하는 자세 아쉬워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대체로 보고서 내용이 아주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한국 경제는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금융비용이 상당히 크다”는 그의 핵심 메시지는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연구위원은 앤디 셰의 보고서가 과장됐다면서도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
“현재 ‘주식회사 한국’은 투자한 자본에 견준 수익(ROIC; Return of Invested Capital)이 점점 하락하면서 자본을 조달하는 비용률(WACC; Weighted Average of Cost of Capital)을 밑돌고 있는 ‘마이너스 부가가치’ 상태다.
회계적인 이익은 내고 있으나 사업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감안한 진정한 경제적 부가가치는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저비용 시대가 마감하면서 생산효율성은 오히려 하락 추세를 보인다.
해결책은 뭘까. “특정 산업의 자본축적이 진행돼 규모의 경제를 넘어서면 기술발전 등 외생요소 없이는 생산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다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건설·음식료·도소매 등 내수형 기업의 생산성이 수출기업보다 떨어지면서 세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신기술기업과 수출기업 중심의 ‘산업포지셔닝 개혁’만이 마이너스 부가가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금감원은 보고서 계산방법의 오류를 탓하면서 “보고서를 수정해 재발간하고, 앞으로는 한국 경제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할 때 더욱 주의하기(greater caution) 바란다”는 항의서한을 모건스탠리 본사쪽에 전달하고 서울지점장을 불러 강력히 따져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보여줬어야 하는 반응은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개혁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연결시켜 풀어나갈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아니었을까. 정부 경제정책의 성숙성에 다시 한번 의문이 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세계은행 출신 아시아통
보고서 작성자 앤디 셰
앤디 셰는 모건스탠리딘위터(MSDW)증권 홍콩법인에 소속된 이코노미스트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greater China) 지역을 담당하는 경제분석 총책으로, 한국으로 치면 전무급이다.
지난해 로이터에서 실시한 펀드매니저 여론조사에서 경제 부문 2위, 중국 부문 3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조사에서 아시아 상위를 달렸다.
그가 이번 보고서에서 지적한 환율·금리·과다채무 등의 문제는 평소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타임> 아시아판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 경제는 연 성장률이 11~12%대까지 거론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어 금리인상이나 원화절상을 해야 할 시점이지만, 은행과 수출업자들의 반대 때문에 주춤하고 있다”며 “재벌개혁도 많은 사람이 바라는 만큼 빨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한국 기업의 ‘숨겨진 채무’를 들추기도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앤디 셰는 가계 부문의 채무증가분 중 대부분이 IMF 뒤 대주주들이 유상증자 대금을 넣느라 차입한 대금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기업의 채무가 표면적으로는 GDP의 100%쯤 되지만 기업가 개인빚을 감안하면 180~200%까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IMF 뒤 기업들의 유상증자 러시가 일면서 대주주들이 여기에 돈을 넣기 위해 빌린 돈이 가계 부문 채무로 잡혔는데, 이를 기업 부문 채무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많았다.
그는 한국도 자주 들락거리며 정보를 수집해 정권 말기에는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생리 등을 정확하게 꿰뚫어본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앤디 셰는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산업·재무 프로그램과 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서 정보통신 및 전력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싱가포르 맥쿼리은행에서는 기업금융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보고서가 한국 정부와 모건스탠리 사이의 논쟁으로 비화하자, “경영진이 한국 정부를 상대하고 있고 나는 연루되고 싶지 않으니 인용하지 말아달라”며 금감위 반박에 대한 재반론을 거부했다.
또 “보고서는 아주 정밀한 수치를 근거로 한 게 아니며 전반적 전망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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