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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脈] 일단 해보고 딴죽을 걸자
[디지털脈] 일단 해보고 딴죽을 걸자
  • IT팀 유춘희 기자
  • 승인 2001.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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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겨운 얘기다.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아직도 얘기는 계속되고 있다.
체신부와 상공부 시절에도 그랬다.
그 얘기가 계속 튀어나온다.
각 부처별로 정보기술(IT) 분야 정책사업을 따로 추진함으로써 업무에 혼선을 초래하고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그렇다.
IT를 화두로 띄우면 “예” 하고 손 들고 일어나는 부처만 해도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는 물론이고,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에까지 이른다.


이럴 정도면 그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도 짜증이 날만 하다.
바깥에서는 제발 교통정리 좀 하고 일하라고 하고, 안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일의 성격이 조금 불명확한 것이 걸려들면 모르는 척하거나, 그건 우리 소관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모르면서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고, ‘협조’란 단어가 끼어들 수도 없다.
‘부처 할거주의’의 심각성은 최근 한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5급 이상 공무원 1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64.2%가 “정부 부처가 잘게 쪼개진 탓에 정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또 공무원들은 통폐합이 가장 시급한 부처로 산자부-정통부-과기부를 꼽았다.
이른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여러 차례 정부조직을 개편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행히 요즘 부처간 중복업무를 조정하는 작업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것 같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5월부터 각 부처와 수차례 차관급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가져 마련한 안이 나왔다.
정통부가 IT 분야의 중심부서 역할을 하되 응용산업은 산자부와 문화부 같은 해당 부처가 맡는 방향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예를 들어 게임 산업의 경우 정통부는 온라인과 PC 게임의 기반기술과 인력을 맡고, 콘텐츠와 응용기술 개발은 문화부가 주관하며, 산자부는 오락실용과 가정용 게임기 제조산업을 맡는 식이다.
또 냉장고가 인터넷에 연결되거나 자동차에 PC를 설치하는 것처럼 IT 경향이 강한 제조업 제품은 기존 담당인 산자부가 맡는다.
부처 산하에 있는 협의회나 단체는 더는 만들지 않고, 중복되는 단체들은 통합하기로 했다.
IT 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연계돼 있어 어느 한곳이 업무를 총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산망조정위원회나 국무조정실이 나서고 감사원이 중재한 적이 있지만 제대로 일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속 시원한 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산업의 특성을 일일이 열거하며 이건 누구의 일이라고 친절히 제시해준 적은 이제까지 없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판례를 만든다는 획기적 발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벌써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최종 합의된 안이 아니다, 논의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재경부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실무자들이 만나야 제대로 된 안이 나온다,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아직도 부처간 영역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등등. 심지어는 지금 하는 대로 그냥 놔둬도 별 문제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람이나 조직에는 각자의 몫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해당사자끼리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면 그와 무관한 3자들은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하면서 논점의 실체를 흐리고 희화화하는 사례가 흔하다.
정통부와 산자부의 싸움을 밖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세상에서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일만큼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문제는 그것이 정당한 밥그릇 싸움인가 아닌가일 것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응분으로 주어진 밥그릇을 백주 대낮에 누군가가 슬쩍 가로채려고 한다면, 그에 대응하는 싸움은 명분이 있다.
이런 경우는 싸움이 아니라 ‘성스럽고 정의로운 전쟁’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그저 질 낮은 밥그릇 전쟁으로만 매도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처간 갈등이 일어날 때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저쪽으로 일이 가버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국록을 먹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 내 업무가 곧 나라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자존심과 열의가 만들어낸 ‘욕심’이랄 수도 있다.
그런 일에 욕심을 내는 데 누가 뭐라겠는가. 부처 이기주의라는 비판만으로 마땅하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시행도 해보기 전에 딴죽을 걸려는 자세는 좋은 태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의미의 부처 이기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언제든 대립할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놓고 또다시 싸움을 걸 준비운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산업경쟁력보다는, 더 많은 일거리를 확보해 자기 부처의 지위를 높이겠다는 생각이 앞선 것 같다.
더 많은 예산을 따내 정책을 수행해야 힘이 세진다는 논리다.
부처별로 흩어진 IT 산업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번 합의가 중요한 시발점이자 큰 전환점이다.
15년 넘게 이어진 IT 관련 부처간 주도권 싸움은 여기서 일단 접자.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낫겠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합의안대로 정책을 시행하고 보완해야 할 점은 그때 가서 따질 일이다.
미리 다리를 걸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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