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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유 도시, 대구는 봉제중
1. 섬유 도시, 대구는 봉제중
  • 대구 장근영 기자
  • 승인 2001.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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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업계 중국산에 밀려 고사 직전… ‘밀라노 프로젝트’도 회의적 시각 많아
대구시 서구 비산동 염색공단. 100여개가 넘는 염색공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단의 대지는 한낮의 태양볕을 받아 이글거리고 있었다.
공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열병합 발전소까지 더운 열기를 쉼없이 뿜어낸다.
구슬땀이 시냇물처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공단 자체는 싸늘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
원단이나 직물을 실어나르는 차량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타이탄 트럭과 승용차들은 도로변에서 축 늘어져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다.
가는 숨을 내쉬는 듯한 기계음만이 아직 이 일대가 섬유단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위하는 것처럼 들린다.


올해 들어 대구 섬유업계는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파김치가 된 몇몇 업체들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며 짐을 싼다.
사업환경은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세계 직물시장에선 한국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대구의 섬유제품은 그들 것과 도저히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다.
대구 본부세관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섬유제품 수출액은 통관 기준으로 12억달러를 기록했다.
1997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가까이나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수출 물량과 견줘도 겨우 80%를 넘는 수준이다.



2003년까지 6800억원 투자 계획
중국산 의류는 어미를 잡아먹는 살모사처럼 국내 시장까지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웬만한 시장 골목에서 중국산 의류제품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중국산 원단을 바탕으로 자체 제직과 염색을 거쳐 만든 중국제 완성품이 국내 저가시장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동대구 시장만 해도 중국산 운동복이 1만원에 팔려나가고 있다.
저가 제품은 거의 중국산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과거 국내업체는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을 때 하나씩 하나씩 철이 지난 기술을 이전받았다.
이에 비해 국내업체는 중국에 기술을 몽땅 이전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통큰 인심’ 덕분에 대구 섬유업계 사장님들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어만 가고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신세타령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환자를 내버려두고 수명대로만 살게 하든지, 칼을 대고 환부를 도려내 재생의 길을 열어주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구시와 정부는 뒤의 처방을 택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그렇게 음침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대구 섬유업계의 마지막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대구지역 섬유산업 구조를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원사, 제직, 염색, 봉제 등의 가공공정을 패션·디자인과 함께 묶어, 대구를 세계적인 섬유산업 단지로 육성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처럼 대구도 생산과 기획, 마케팅의 3박자를 다 갖추고 기술력을 특화해 섬유패션 도시로 거듭나자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지난 99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대구의 섬유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라고 지시한 뒤 본격적으로 삽을 뜨기 시작했다.
17개 사업분야에 모두 6800억원을 쏟아붓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2003년까지 5년 동안 진행된다.
이 기간에 이곳 섬유산업의 구조를 탈바꿈시키고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품질 고급화와 패션디자인 산업 활성화, 기술개발 및 생산성 향상, 섬유종합전시장과 섬유기능대학 확대개편 등을 일차적으로 지원한다.
지난해 섬유종합전시장, 한국패션센터, 신제품개발센터 등을 완공했고, 염색디자인실용화센터와 니트시제품 공장은 거의 완공단계에 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4월 말 기준으로 51.4%의 진척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야심찬 계획에 대해 정작 업체들의 반응은 아직도 시큰둥하다.
여전히 많은 업체들이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해 무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피부에 와닿을 만큼 혜택이 없다고 토로한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개별 업체를 지원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섬유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직물업을 하는 김아무개 사장은 “대구 섬유가 다 죽고 난 뒤 밀라노 프로젝트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지역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밀라노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
대구의 섬유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는 데도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뭐가 다르냐는 얘기다.
또한 여전히 프로젝트 발주단계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결국 나눠먹기식 행정의 폐해가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양산업에 뭐하러 그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는 ‘신경제 지상주의자’들의 비판도 따갑다.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실무자들도 가슴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조급한 업체들이 기업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해온다.
하지만 밀라노 프로젝트라는 건 동전만 넣으면 제꺽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대구지역 섬유산업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식의 일부 지나친 낙관도 이들을 부담스럽게 한다.
이들은 너무 성급하게 닥달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사업 실무를 지휘하고 있는 대구시청의 서태일 섬유특별보좌관은 “인프라 구축은 내후년이면 끝나지만 성급히 과실을 따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고기를 잡아 입 안에 넣어주는 처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구가 명실상부한 섬유종합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20~3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그동안 대구엔 완성품이 아닌 원사나 제직 등 재공품 위주의 섬유업체들이 밀집돼 있었다.
섬유업계에선 마진율을 원사 부문 2~3%, 제직 5%, 염색 5%, 봉제 10%, 의류 30% 등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완성품쪽으로 갈수록 마진이 커지는 섬유산업의 특성에 비춰보면, 대구 섬유업계는 부가가치가 낮은 공정쪽에 매달려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패션과 디자인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고 하지만, 하루 아침에 저부가가치 섬유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쪽으로 뜯어고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기댈 언덕은 밀라노밖에 대구시가 밀라노 프로젝트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패션 어패럴 밸리’의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완성품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스 참조) 대구시 동구 봉무동 일대에 조성되는 어패럴 밸리는 현재 교통영향 평가와 사전 환경성 검토 등을 마치고 막바지 사업계획 완성작업을 서두르는 단계에 있다.
어패럴 밸리에는 봉제와 패션디자인, 의류, 섬유부자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만 입주시켜 대구 섬유업계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섬유업체들 가운데서도 지금은 힘들지만 밀라노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활용하려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삼우염직 우병용 사장은 그래도 기댈 언덕은 밀라노 프로젝트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섬유업계에 종사해온 지난 25년 동안 지금같은 불황은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기술개발에 힘을 기울여 다른 염색업체들보다 15~20% 정도 높은 단가로 제품을 납품하고 있지만 재미는 옛날에 비길 바가 못된다.
지금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 지역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인 갑을방적에서 공장장 일을 했던 내로라는 기술자이지만, 그도 지금은 비상 상황을 피해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원단 1야드를 기준으로 한 제품 단가가 최근 몇년 사이에 400원에서 350원으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전체 수주물량마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어, 사업은 배로 힘들어졌다.
기계와 인력은 그대로인데 전체 작업물량이 줄면 매출이 줄어들어 영업이익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공장 돌리는 재미에 이 일을 계속한다는 우 사장은 밀라노 프로젝트를 잘만 활용하면 거기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한 예로 염색공장 사장들이 무턱대고 몇백, 몇천 야드의 직물을 염색해서 바이어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한국염색기술연구소의 힘을 빌어 미리 품질 샘플테스트 등을 거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미리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게다가 패션센터의 조언을 얻어 요즘 유행하는 색채 등을 체크한 뒤 제품을 개발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밀라노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구축을 끝낸 몇몇 ‘패션·연구 인프라’를 구심점 삼아 업체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섬유패션센터와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등은 최근 40개 정도의 업체 선정을 끝냈다.
선정된 업체들 가운데 스스로 제품을 개발해 직접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선정업체가 40개지만 대구지역에는 2500개에 이르는 섬유 관련 업체가 있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구조조정은 결국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중국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많은 업체들이 쓰고 있는 버티기 작전도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더 버틸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대구에서 비교적 앞서간다는 이들 기업과 인프라를 맺어주는 것은 밀라노 프로젝트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생산업체와 패션업체, 연구 인프라의 시너지 효과가 프로젝트의 애초 목표였기 때문이다.
섣부른 희망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절망을 얘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종합 의류의 거리 ‘패션 어패럴 밸리
대구시 동구 봉무동 일대에 조성될 패션 어패럴 밸리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17개 사업분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투입되는 사업비만 모두 1556억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20%가 넘는다.
대구시는 30만평이 넘는 땅에 봉제와 패션디자인, 섬유부자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특화할 계획이다.
내년에 섬유패션대학이 이전해오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대구시는 올해 안에 어패럴 밸리 설계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가 2004년에 마무리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패션 어패럴 밸리가 완성되면, 이곳은 말 그대로 종합 의류의 거리로 탈바꿈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패션의 동향을 알 수 있고 직접 구매까지 가능하다.
물론 일부에선 벌써부터 업체들의 참여가 적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많은 업체들이 참여해 밸리가 제대로 모습을 갖출 때까지는 시간도 꽤 걸릴 것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미리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참여하는 업체들의 성과와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성장가능성을 기대해도 좋다는 것이다.
부산 경제의 등불, 선물거래소
부산 선물거래소가 애초 우려를 씻고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99년 4월 출범 당시 달러선물 및 옵션, CD금리선물, 금선물 등 4개의 상품으로 거래를 시작한 선물거래소는 지난해 9월 처음으로 하루평균 거래량이 1만5천계약을 넘어섰다.
올 상반기엔 하루평균 거래량이 3만4497계약에 이르렀다.
불과 몇달 사이에 거래량이 두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 거래량 증가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국채선물을 꼽을 수 있다.
국채선물은 올해 상반기 일평균 거래량이 2만4672계약을 기록했다.
CD금리가 시중금리의 움직임을 재는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잃고 국채의 금리 유동성이 커지면서 국채선물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코스닥50 선물은 올해 1월 상장돼 상반기에 하루평균 2140계약이 거래됐다.
하지만 최근 금융감독원에서 장기적으로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선물거래소를 통합하겠다는 발표를 한 뒤로 부산지역 여론은 싸늘해졌다.
부산지역 출신 경제인과 대학교수, 언론까지 합세해 정부의 성급한 정책 변경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올해 들어 국채선물을 중심으로 하루 거래량이 4만계약을 넘어서는 등 99년 개장 이래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그런 얘기들이 흘러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3대 시장 통합문제가 정부의 중장기 과제로 넘어가긴 했지만 부산지역 경제인들은 유치 당시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선물거래소가 서울에 있으면 많은 국가기관들 가운데 하나지만 부산시에서 볼 때는 어렵게 유치한 몇 안 되는 국가기관들 중 하나다.
”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에선 시장 통합을 통한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개장 2년밖에 안 된 지금 상황에서 통합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물론 선물거래소가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올 상반기 선물거래소의 계약 형태를 보면 국채선물이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이를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
코스닥50 선물은 불안한 시장상황 탓으로 거래가 기대보다 더디게 성장하고 있다.
또한 달러 선물에 대한 업체들의 인식이 부족해 환위험 회피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선물거래소 관계자들은 말한다.
선물거래소는 세미나를 여는 등 지역 업체들을 상대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이해도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고 전한다.
CD금리선물과 콜옵션, 풋옵션은 올해 상반기에 단 한건의 거래도 이뤄지지 않았다.
선물거래소 관계자들은 지금은 시장 초기단계이고, 현재의 거래량 증가 속도라면 앞으로 선물거래소가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2004년께 코스피200 지수가 상장되면 선물거래소는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선물거래소가 부산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문은 사실 크지 않다.
그보다는 상징성과 앞으로의 선물시장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선물거래소 기획부 하해룡 팀장은 “선물거래소 주위로 부은선물, LG선물, 동양선물 등 선물회사가 속속 모여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 부산이 선물시장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진다.
부산 장근영 기자 QuePasa@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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