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4 (수)
2.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호남
2. 잡초만 무성한 황량한 호남
  • 정금자 엔터닷컴 기자
  • 승인 2001.07.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업용지, 기반시설 없어 분양률 저조… 지방자치단체 궁여지책으로 명맥만 유지
“그동안 우리나라에 지역경제 정책이 있기라도 했습니까.” 지역경제 정책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청에 들어갔다가 맨 먼저 어느 공무원의 성난 질문에 부딪혔다.
‘지역 죽이기’ 정책으로 일관해온 우리나라에서 지역경제 정책의 실체가 있기라도 하냐는 얘기였다.


광주지역에는 현재 첨단과학산업단지 6만6천평을 비롯해 평동외국인기업 전용단지 4천평, 평동산업단지의 1차단지 6만여평 등 모두 13만여평의 산업용지가 분양되지 못한 채 ‘놀고’ 있다.
애초 정확한 사업성을 평가하지 않은 채 중앙정부의 정치적인 선심성 공약으로 출발한 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단이 들어서 입주업체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죽어가는 공단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외국기업 유치 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 말잔치에 지자체 속앓이 우선 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는 지난 88년 “광주에 유일한 첨단산업단지를 세우겠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삼소동 본촌동 일대에 조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성된 지 10년이 넘도록 이곳 주변에는 아파트만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허허벌판인 첨단산업 연구용지에는 바람만 휙휙 불고 있다.
이처럼 분양실적이 저조한 것은 연구용지 분양가가 전국에서 가장 높아 민간기업이나 국책연구소의 유치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주첨단단지 연구용지 분양가는 전주첨단단지(29만7천원), 대전대덕단지(26만5천원) 등 다른 지역의 평당 분양가보다 턱없이 비싼 66만6천원에 이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만 있었지, 중앙정부에서 보조를 해주지 않아 엄청난 단지 조성비를 지역에서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광산업 전문업체인 한국고덴시는 광주첨단단지에 연구소 건립을 희망하고 있지만 분양가가 너무 높아 주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고덴시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광주·전남 지역은 그동안 너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국제공항·통신·유통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는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공단만 지어왔습니다.
” 사정이 이러하니 외국계 기업들이 입주를 꺼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3년째 광주광역시에서 외자유치를 전담하고 있는 이재의(47) 통상협력자문관도 “솔직히 말해 외국기업들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낙후된 기반산업과 고급인력의 수도권 유입, 원자재 공급처 부재, 복잡한 규제 등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발전의 혈관에 해당하는 기반산업 구축은 소홀히 한 채 공단만 조성해, 황량한 ‘외딴 섬’을 자초해왔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이런 모든 결함을 상쇄시킬 만한 유인방안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 없이 지방정부에서만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결국 광주광역시는 광주첨단산업단지 분양실적이 저조하자 지난 2월부터 연구용지 4필지 가운데 1필지(9만4천평)를 제외한 나머지 3필지(13만5천평)를 주거용지 따위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평동 외국인기업전용단지(광주시 광산구 장록동 일원)도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분양이 지지부진하다.
이곳은 최근 궁여지책을 마련하고 나서야 분양이 활발해졌다.
지난해 외자유치 비율을 10%로 낮춘 뒤 분양이 크게 늘어 19만7천여평 가운데 4천여평을 제외한 대부분이 분양된 상태다.
외자유치 비율이 낮아진 뒤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20여개 업체를 유치한 것이다.
광주광역시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내용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으로선 최선을 다한 선택”이라고 고백한다.
95년 공단 조성공사가 완료되었는 데도 분양은 쉽지 않았고, 일부 언론에서는 적극적인 기업유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고 야단이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외자유치 기준을 낮추는 거였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이 외국자본을 10% 이상만 끌어들이면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크게 늘린 것에 대해 일부에선 형식적인 수치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단을 살려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그는 달리 선택이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평동 외국인기업전용단지에 입주한 23개 업체 가운데 12개 업체의 외국자본 투자비율은 20% 미만이었다.
물류비용 높아 기업들 외면 전남 목포시 대불공단 외국인전용단지 29만평도 설립자본금 대비 외국자본의 비율을 10% 이상으로 크게 낮추면서 입주업체가 늘었다.
현재 29만평에 보워터한라제지 등 12개 업체가 입주했다.
하지만 대불공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공장용지는 여전히 잡초만 무성하다.
대불공단은 349만9천평을 90년부터 분양하기 시작했으나, 지금까지 분양률은 33%에 지나지 않는다.
5년 동안 무이자 할부로 분양금을 대주고, 임대료도 전국에서 가장 싼 평당 89원으로 잡았지만 “문의 자체도 끊긴 상태”라고 관계자들은 하소연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불지원부 강양구(38) 과장은 수도권과 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을 잃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이곳은 정말 어렵습니다.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멀 뿐 아니라 기반시설이 전혀 안 돼 있어 물류비용이 엄청 높습니다.
원자재를 공급할 주변 산업기반도 조성되지 않아 이음새 연결 가공도 울산이나 창원까지 가서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일할 인력도 없는 실정입니다.
” 이제 지역민들은 논밭 갈아엎어 ‘눈요기’로 산업단지만 조성하는 식의 정부정책에 손사래를 친다.
평동공단에서 만난 회사원 유수종(34)씨는 “집을 짓더라도 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으면 허가가 안난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정부에서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의 지역정책을 꼬집었다.
마치 인터넷 전용선이 깔리지 않은 ‘최첨단 컴퓨터’와 같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말잔치’로 멍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광산업, 지역 특화사업으로 기대
광주광역시는 지난 99년 말부터 광(光)산업 육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미래산업이며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라는 점 때문이다.
광산업 육성은 갈수록 낙후되고 있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쟁력을 갖춘 특화사업을 발굴 육성하자는 취지로 기업인·공무원·연구원 34명이 ‘과학기술전략기획연구회’를 구성하며 본격화했다.
지난 4월엔 업체의 장비 구축·제품화와 기술개발 등을 지원할 ‘한국광기술원’이 문을 열고, 광주과학기술원과 함께 고급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벌써 휘라포토닉스·우리로광통신·LG이노텍 등 관련업체들이 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 안의 광산업단지(2만6천여평)에서 광섬유·로봇 시각장치 등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프라임포텍은 광섬유를 연결하는 커넥터의 핵심부품인 페롤의 상용화에 성공해, 월 100만개의 페롤 생산품 가운데 90%를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
광산업 2차 단지 분양에도 전국 광관련 업체들이 앞다퉈 입주를 희망해와 19개업체를 선정해둔 상태다.
광주시 첨단산업과 박찬기(45) 첨단기획계장에 따르면, 외자유치 현장에서도 유일하게 광산업 분야에 대해서만 외국기업이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유일하게 경쟁력 있는 아이템”인 셈이다.
그래서 광주광역시는 1단계인 2003년까지 모두 4020억원(국비 2353억, 시비 571억, 민자 1096억원)을 들여 기술개발과 상품화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광주시는 지역 내 광산업 생산과 그 부가가치가 2005년 1조1100억원, 2010년에는 3조8600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특화산업으로 묶여 있어 아직 여러가지 어려움이 널려 있다.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우선 민자 1096억원의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자원부의 지원만 있을 뿐, 정작 관련이 깊은 정보통신부와는 연계도 안 된 상태다.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도 없다.
휘라포토닉스 고천주(37) 이사는 “광산업은 반도체 산업을 대체할 유망산업”이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선·철강·반도체 등에 오랜 세월 투자했듯이 장기적이고 전폭적인 투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