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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표류하는 우리금융지주회사
[포커스] 표류하는 우리금융지주회사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기자
  • 승인 2001.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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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경영 범위 둘러싸고 자회사 은행과 갈등… 종합금융그룹 청사진 출발부터 삐걱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지난 4월2일 공식 출범한 우리금융지주회사(회장 윤병철)의 모습이 그렇다.
“미래 한국 금융을 이끌어갈 두축 중 하나.” 오는 11월 출범하는 국민-주택 합병은행과 함께, 한빛·광주·경남·평화 은행 등과 한아름종금을 자회사로 거느린 우리금융에 쏟아지는 기대다.
국민-주택 합병은행(총자산 160조원)에 뒤이어 총자산 100조원이 넘는 데다 기업금융 노하우가 그래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한빛은행을 자회사로 거느린 우리금융은 이런 기대를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표류하고 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은행들간의 마찰과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지난해 12월 투입된 8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이 아깝다는 힐난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출범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우리금융이 거두고 있는 성과는 초라하다.
공적자금 투입 당시 완전감자 당한 자회사 소액주주 30여만명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0여억원(우리금융 주식의 6.73%)어치에 대한 청약이 지난 7월11일부터 13일까지 순조롭게 이뤄진 것을 빼곤 진전이 거의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우리금융의 기능 재편 문제를 둘러싼 지주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통합 준비팀은 꾸리지도 못해 우리금융은 출범과 함께 자회사 은행들의 정보기술(IT)과 신용카드 부문을 통합하고, 자회사 무수익여신(NPL)을 한데 모아 정리하기 위한 배드뱅크(부실채권정리은행) 설립을 위해 준비작업팀을 구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수익여신 처리를 위한 준비작업팀을 빼곤 IT 통합 준비작업팀은 광주·경남은행쪽에서 우리금융에 파견한 인력을 철수시키는 바람에 개점휴업 상태이고, 신용카드 통합 준비작업팀은 꾸리지도 못했다.
급기야 지난 7월2일 우리금융은 자회사 은행들과 경영계획이행약정(MOU) 체결을 둘러싸고 그동안 쌓이고 쌓인 양쪽의 갈등이 폭발했다.
지난해 12월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예금보험공사와 우리금융 자회사 사이에 맺었던 경영계획이행약정을 우리금융과 자회사 사이에 맺는 과정에서 한빛·광주·경남은행 등 3개 자회사 노사가 MOU 체결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3개 은행은 예보와 경영계획이행약정을 맺어 자회사에 대한 감시·감독권을 넘겨받은 우리금융이 자회사의 독립법인격과 경영자율성을 침해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우리금융이 제시한 △경영계획, 예산, 배당정책, 자본확충 등에 대한 사전협의 및 조정 △지주회사 차원의 준비작업팁 구성을 위한 인력 파견 등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자회사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이 사태는 지난 7월12일 우리금융이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내용의 부속합의서를 마련해 한빛은행과 MOU를 맺으면서 일단락됐다.
일찌감치 우리금융과 MOU를 맺은 평화은행을 빼곤, 광주·경남은행도 한빛은행과 비슷한 수준의 MOU를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금융과 자회사 사이의 문제는 잠재돼 있다.
“자회사의 세부적인 자율경영 범위는 운영의 묘에 따른다”는 합의를 두고 언제든 갈등이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T 통합 준비작업을 둘러싸고 이미 우리금융은 “투자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통상적인 경영개선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자회사들은 “경영자율성 침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금융은 삐걱거리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헌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융지주회사법을 만들어 98년 6월 5개 은행 퇴출 때처럼 대규모 감원을 동반하는 자산부채이전(P&A) 방식을 통해 한빛·광주·경남·평화은행 등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대해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총파업으로 맞섰다.
결국 “지주회사가 느슨한 형태의 통합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합의에 따라 금융노조는 지주회사 설립과 구조조정에 동의했다.
그러다 장관이 바뀌면서 정부 안에서 지난해 11월 국민-주택 합병설과 함께 다시 P&A 방식의 구조조정설이 흘러나왔고, 금융노조는 같은해 12월 또 총파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맺어진 것이 “2002년 3월까지 컨설팅 작업을 통해 기능개편안을 마련하는 대신, 2002년 6월까지는 기능 개편을 하지 않고 경영자율성과 독자생존을 보장한다”는 노사정 합의였다.
이 합의가 자회사 노조들이 그동안 IT 및 신용카드 통합을 위한 준비작업에 반대해온 가장 주요한 근거다.
하지만 ‘노정 합의’ 뒷면에는 애초 우리금융 출범 때부터 해결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는 근본적인 물음들이 남아 있다.
첫번째는 ‘기능재편이 대규모 감원을 동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금융쪽의 설명과는 달리, 이를 그대로 믿는 자회사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곧 지주회사 출범 이전 정부 일각에서 주장하던 P&A 방식의 구조조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사정 합의에 따라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해온 자회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자회사 고위 관계자는 “실제로 자회사 노조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량 감원”이라고 털어놓는다.
다른 하나는 지방금융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다.
경남·광주은행은 기능 개편을 통해 우리금융에 화학적으로 흡수될 경우 지역실정에 맞는 지방금융은 사라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시중은행 중심구조에 그대로 편입돼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등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지역경제에 맞는 자방금융 육성을 위한 대안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오는 11월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역시 국제업무를 취급하지 않는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는 달리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6%로 낮추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지방금융이 수도권 중심의 시중은행 논리와 달라야 한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지닌다.
98년 6월29일 5개 은행 퇴출 때에도 총여신의 90% 이상을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한 정관에 따라 영업하던 ‘특수성’을 무시하고, 동남·대동은행 등을 BIS비율 8% 기준을 밑돈다는 이유만으로 퇴출시킨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논란이 돼왔다.
감원·지방은행 특수성 문제가 핵심 이에 대해 우리금융쪽은 “지방은행은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자회사들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완전 감자된 은행들이므로 상황이 달라졌다고 독자 경영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회사들이 MOU에 정해진 상반기 경영개선 목표를 모두 초과달성하는 등 객관적인 경영지표가 독자생존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을 빗대서 하는 소리다.
우리금융과 한빛은행 일각에선 광주·경남은행을 우리금융에서 떼어내도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말까지 사석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쥐고 있는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기능 재편을 둘러싼 우리금융 내부의 갈등은 노사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우리금융에 대해선 “속도를 내지 못하고 뭐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다그치고 있다.
우리금융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개입하는 불투명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2일 우리금융이 예보와 MOU를 체결하고 자회사들이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MOU 체결을 강행한 것도 정부를 의식해서라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현재 우리금융과 자회사 경영진은 모두 이런 조건 안에서 나름의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자회사들은 연말 경영실적을 목표치보다 대폭 초과달성해 법인격을 유지하는 자회사로서 독자생존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우리금융은 정부에 떠밀려 통합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금으로선 내년 상반기까지 IT 자회사와 신용카드사, 배드뱅크, 은행, 투자은행 및 증권, 투신사, 보험 등을 거느린 종합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한다는 우리금융의 청사진은 너무 낭만적이라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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