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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오감] 1.프롤로그
[디지털@오감] 1.프롤로그
  • 이경숙
  • 승인 2000.07.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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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감 재현 기술 급진전...가상이 현실을 복사하기 시작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차멀미를 하는 기분이었다.
벽에 부딪힌 자기부상열차가 뒤집혀 한바퀴 빙글 맴돈 것뿐인데….
“몸은 그대로 있는데 가상환경만 회전을 해서 그래요. 현실과 가상의 차이 때문이죠.”
가상공간의 열차를 세우면서 SGI코리아 이규재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말로만 듣던 ‘시뮬레이터 병’이었다.
차량이나 비행기 시뮬레이터를 운전할 때 운전자의 운동감과 시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멀미나 구토를 하게 되는 병이다.


감각을 속여 가상현실로 끌어들인다
우리의 감각은 참 잘도 속는다.
현실이 아닌, 현실과 비슷한 자극에도 현실인듯 반응하기 일쑤다.
깊게 몰입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브라운관 속에 가짜 귀신이 나타나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보던 어린 시절, 어디 그것이 거짓말인 줄 모르고 무서워했던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은 쉽게 말하면 인간의 감각을 속이는 기술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멀리 있어 접할 수 없는 것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고 냄새맡고 맛보는 듯 느끼게 한다.
TV드라마나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빠져드는 건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량의 95%를 시각과 청각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만 장악해도 인간의 지각력을 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다.
뇌파 등 생체신호로 컴퓨터와 직접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감각자극을 통하지 않고도 가상현실 속에 몰입할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뒤통수에 연결된 선 두가닥만으로 컴퓨터가 창조한 가상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든가, 영화 <13층>에서 뇌파 조작 기계를 이용해 미리 프로그래밍된 가상세계로 이동한다든가 하는 아이디어도 말짱 헛된 공상만은 아니다.
상호작용, 몰입, 그리고 자율성은 가상현실의 특성이다.
사실 이 세가지는 현실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을 잡고 내가 손을 간질이면 ‘우히히’ 웃는 연인을 가상의 존재라고 의심한 적 있는가. 지나가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 아래에 앉아 ‘이곳이 혹시 가상세계가 아닌가’ 의심한 적 있는가. 현실의 특성을 훌륭히 모사할수록 가상현실의 ‘현실감’은 높아진다.
하지만 당분간 ‘내가 사는 세상이, 내 연인이 가상현실인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술 수준이 아직 인간의 오감을 완전히 속일 만큼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가상환경연구실 cau.ac.kr/~camlab 채영호 교수(기계공학)는 가상현실에 대한 꿈과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상현실의 개념을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 인조환경(Synthetic Environments), 가상환경(Virtual Environments), 가상현실(Virtual Reality) 네가지로 세분해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상현실은 꿈에 가깝다.
가령 <매트릭스>나 <13층>처럼 가상임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현실에 가까운 것이 가상현실이다.
3차원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듣고 만지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공간에 자신이 포함돼 있다고 느껴야(즉 몰입감) 한다.
이것은 가상현실 연구자들의 이상이다.
인공현실이나 인조환경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실현할 수 있다.
3차원 게임 ‘둠’이나 인터넷의 가상모델하우스처럼 데스크톱 환경에서 구현되는 시뮬레이션은 인공현실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실시간 상호작용이 강조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로봇 ‘알투디투’가 허공에 투사한 레나 공주의 홀로그램은 ‘인조환경’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 상호작용 기능을 더한다면 말이다.
인조환경은 입체적인 투사 시스템을 사용해 인공현실보다 더 몰입하기 쉽다.
베엠베(BMW)나 다임러-벤츠는 이 기술을 모의충돌시험, 산업용 로봇 조립 시뮬레이션에 사용하고 있다.
인조환경에 촉감, 역감(Force feedback) 같은 상호작용을 첨가하면 가상환경이 된다.
가령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영상미디어센터 vdream.kist.re.kr에 설치된 가상현실스튜디오는 시각과 역감이 복합된 가상환경 시스템이다.
이 스튜디오의 자전거에 올라타면 20평짜리 내부공간은 수만평의 연구원 캠퍼스로 바뀐다.
물론 핸들을 움직여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다.
우둘투둘한 아스팔트의 재질도 느껴진다.
오르막길에선 자전거 페달을 힘겹게 밟아야 하고 내리막길에선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올 수도 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가상환경 속에서 인공현실이나 가상환경 기술은 주로 사업비용이나 작업의 위험성을 낮추는 데 이용되고 있다.
포드는 자동차철골구조를 담금질하는 기술자들을 가상환경 속에서 훈련시킨다.
이 시설을 이용하면 초보자들이 담금질 연습을 위해 수천도의 주물덩어리 앞에 나서는 위험은 없어진다.
견습생들이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MD)로 보는 주물덩어리는 벌겋게 달아올라 보인다.
햅틱(Haptic)을 착용한 손에는 직접 해머를 휘두르는 것 같은 반동이 전해진다.
포드는 이 시설로 훈련받은 기술자가 실제 공장에서 훈련받은 사람들보다 10% 이상 뛰어난 수행능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의사들도 가상수술훈련으로 숙련도를 높일 수 있다.
환자의 신체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하면 컴퓨터는 실제로 수술을 하는 것 같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 성공한 시술의 데이터를 입력해놓았다가 실제 수술 때 사용하면 수술에 실패할 위험이 대폭 줄어든다.
만약 심근경색증인 어머니가 수술대에 누워 있는데 의사가 ‘이 혈관이 아니네’ ‘이 혈관도 아니네’하며 여기저기 쑤시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가상훈련은 의사들의 실수를 최소한으로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미국 의사들은 가상훈련, 원격진료, 전자혀, 전자코 등 가상환경과 관련한 연구모임을 꾸릴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공항, 공장, 아파트 설계도면을 미리 테스크해보기 위해 흔히 가상공간 시스템을 사용한다.
가상공간 속에서 의뢰자는 미래에 지을 건물을 직접 걸어다니면서 동선의 효율성과 공간의 쾌적함을 체험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환경이 산업에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4월부터 도입한 영상품평장은 진흙모델을 만들지 않고도 새 자동차 모델의 디자인을 감상하게 해준다.
실물 크기의 자동차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뒤집어보면서 디자이너들은 실시간으로 모양과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
이 장비의 제작사인 SGI측은 “제작에 한달 이상 걸리던 진흙 모델 대신 입체영상 시스템을 쓰면 하루나 이틀 만에 새 디자인을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또 비용을 저렴해지고 작업 효율성은 크게 높아진다.
가상현실의 편의성과 경제성은 아직 그다지 높지 않다.
게다가 기초연구비용이 많이 들어 일부 선진국 외에는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다.
단기간 안에 수익을 올려야 하는 기업 생리상 업계에서 연구를 주도하기는 어렵다.
가상현실연구센터를 설치하면서 의욕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섰던 삼성이 중도 포기한 이유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상현실 기술개발을 위한 기초투자에 발 벗고 나서야 할 우리 정부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반면 이웃 일본 정부는 ‘오감 통신 시스템’ 실현을 장기과제로 선정, 본격적인 육성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전자열도’를 위한 정보통신 분야 연구개발 기본계획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오감 기술, 가상현실 기술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 것일까. 또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주요 가상현실연구소 현황
기관
연구과제
URL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영상미디어연구센터
통합상호작용, 시각기반상호작용, 가상환경, 입체시청각, 다감각혼합, 전자석이미징시스템 등 시·청·촉·후각과 운동감vdream.kist.re.kr
한국과학기술원
가상현실연구센터
네트워크 등 가상현실시스템, 상호작용과 현실감 증대, 영상생성, 실감재현기술 등 시·청·촉각과 생체신호www.kaist.ac.kr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가상연구개발센터
디지털콘텐츠 제작도구, 네트워크가상현실시스템, 가상현실의료기구, 입체음향, 뇌파정보를 통한 컴퓨터와 상호작용 등 시·청·촉각과 생체신호www.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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