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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출근하기 싫으면 출근하지마.
[직업] 출근하기 싫으면 출근하지마.
  • 이용인
  • 승인 200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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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에 북새통 지하철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오전에 출근해도 되고 오후에 회사로 나와도 된다.
몸이 찌뿌드드하면 아예 출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집에서 근무한다고 ‘통보’만 하면 그만이다.
직원 12명이 매일 한명씩 돌아가며 오전 9시까지 출근해 당번을 서는 게 유일한 출근 제약이다.
여행정보 제공 사이트인 티붐닷컴 www.tboom.com에는 출근 시간이 따로 없다.


당연히 퇴근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
약속이 있으면 일찍 들어가도 되고, 회사에서 날밤을 새워도 된다.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샘 작업을 하는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뒷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다.
아예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도 프로그래머 2명, 여행기획 1명, 웹 디자이너 1명 등 4명이나 된다.


모든 업무 연락은 이메일과 인스턴트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월요일 아침 10시 전체회의 시간과 금요일 오후 전체회의 시간에 출근해 업무 진척상황만 보고하면 끝이다.
각자가 작성한 주간업무계획표에 따라 정해진 업무만 완성하면 어느 장소, 어느 시간대에 근무하든 탓하는 사람은 없다.
회장이나 사장은 아예 얼굴도 안 내민다.
회사에 자주 나오면 사무실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회장이나 사장은 외근을 하며 마케팅에만 전념한다.
기껏해야 전화나 이메일로 송성수(37) 부사장과 상의하는 게 전부다.
직원들을 관리하고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은 실질적인(?) 최고경영자(CEO)인 송 부사장의 몫이다.
티붐닷컴의 ‘멋대로’ 출퇴근제가 회사 설립 초기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두세달여 동안의 진통과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제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9월 법인을 설립한 뒤로 출근 시간은 여느 회사처럼 ‘엄격하게’ 오전 9시였다.
하지만 야근이 잦아지면서 지각하는 직원이 잇따랐다.
무리하게 출근 시간을 맞추다 보니 직원들 몸도 하나둘씩 고장나기 시작했다.
올 3월, 회의 끝에 출근시간을 한시간 늦춰 오전 10시로 결정했다.
하지만 10시라는 시간대가 어정쩡했다.
일에 몰두한다 싶으면 금세 점심시간이었다.
도대체 직원들이 일찍 출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네티즌들이 게시판에 올리는 질문에 답해주거나 통상적인 문의 전화를 받는 게 거의 전부였다.
그렇다면 당번 한명만 일찍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직원들은 전체회의를 통해 자유 출퇴근제를 시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송 부사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도 일이 고돼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던 터였다.
출퇴근 시간 이외에도 티붐닷컴의 분위기는 여러모로 톡톡 튄다.
주5일 근무제만큼은 회사 초기부터 철저하게 지킨다.
무엇보다 송 부사장 스스로가 이전에 경영하던 회사에서부터 주5일 근무제에 익숙해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면 직원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맛있는 집을 골라 야외로 나간다.
최근엔 포천으로 원정을 떠나 갈비를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테크노방을 가고, 다음날 토요일 7시에 헤어지는 ‘놀자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자유분방한 회사 분위기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사이트를 공식적으로 연 지 4개월도 안돼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어섰다.
배너광고 수입도 짭짤한 편이고, 보험상품과 금강산 여행 사이버 등록을 대행하면서 직원들 인건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매출이 불었다.
회장의 집을 사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에 월세 부담이 없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티붐닷컴만의 독특한 사무실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는 아무래도 여행 사이트라는 특성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직원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묶이는 것을 대체로 싫어하는 편이다.
직원들을 억지로 구속하면 콘텐츠에 필요한 창의성과 상상력이 제약되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니냐고 송 부사장은 반문한다.
직원들이 적다는 점도 자유스런 분위기 조성을 가능하게 했다.
대기업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라고 송 부사장은 말한다.
“직원들의 생활과 업무방식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집에서 근무해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지요. 직원들이 15명 이상으로 불어나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새로운 경영자를 영입하고 저는 개발자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겁니다.
” 직원들은 한달에 한번 이상 특별한 준비없이 여행을 떠난다.
그냥 누군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면 그자리에서 보따리를 꾸려 훌쩍 떠나버린다.
사이버 근무의 약점인 팀워크를 저절로 다지게 되는 것이다.
티붐닷컴엔 벤처기업의 빡빡함과 여유로움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편하긴 하지만 소외감도 있어요 ” 웹디자이너 박희자씨 미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재택근무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티붐닷컴에서는 현재 4명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한다. 웹 디자이너인 박희자(29)씨도 5월 말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신청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지난해 8월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웹 디자이너로 근무해왔다. 아무래도 밤샘 근무를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많이 축나서 신경성위염이 생겼다. 그래서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하고 5월 말부터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집에서 근무하다 보면 게을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다. 첫 일주일 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몸도 축 처지고 긴장이 풀어진다. 보는 사람도 없고, 통제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생각의 강도도 느슨해진다. 하지만 그 뒤로는 억지로 오전 10시 안에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이 생겼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절대적인 업무량이 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나중에 일이 밀려 더 피곤해진다. 회사와의 업무 연락은 어떻게 하나. 주로 인스턴트메시지를 활용한다. 회사에서 수시로 연락이 오기 때문에 컴퓨터 앞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다. 다른 직원들과의 업무 협조도 이메일이나 인스턴트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월요일과 금요일에 한번씩 회사에 출근해 업무 진행 현황을 개괄적으로 보고한다. 물론 불가피할 경우에는 다른 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한다. 재택근무의 좋은 점이 있다면. 제일 커다란 이점은 출퇴근 시간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직원의 경우 회사로 출근하려면 화장도 해야 하고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게 많다. 그런 것이 없다 보니 시간 여유가 많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단절로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던데. 인스턴트메시지로 ‘수다’를 떨기 때문에 그렇게 큰 외로움은 없다. 그럼에도 월요일날 회사에 출근하면 “내가 없는 사이에” 몰랐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모여서 어디를 놀러갔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든지 하는 얘기가 나오면 소외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7월 말부터는 회사로 출근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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