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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인터넷영화감독 조영호
[나는프로] 인터넷영화감독 조영호
  • 이경숙
  • 승인 2000.07.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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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클릭하라
S#1 몽타주 (새벽)
(광화문 네거리)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들 위로 코넷 전광판 광고가 번쩍인다.
미국 브룩클린 다리 위에 선 조영호는. 양손으로 영화 프레임 모양을 만들어 이편을 응시한다.
자막 ‘인터넷영화감독 조영호’.
조영호의 목소리:내 영화를 걸기엔 스크린은 너무 작다.

(PC 모니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인터넷익스플로어 주소줄에 한자 한자 글자가 뜬다.
‘www.neotiming.com’.

(네오타이밍 조영호의 방) 유리창에 ‘DANGER 조영호’라는 표지판이 붙은 문. 창 너머에서 조영호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화장기없는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노트북 화면에 글씨가 찍힌다.
‘닷21 니르바나님, 주신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줄 바꾸기) 먼저 인터랙티브영화 감독이 된 계기는(커서가 멈춰 깜박인다)’ 조영호는 양미간을 누르며 의자 뒤로 목을 젖힌다.
(PC 모니터) 커서가 이동해 인터랙티브영화 ‘영호프의 하루’를 클릭한다.
순간 모니터가 팟, 하고 꺼진다.
스크린 이편에서 손이 나와 모니터를 탕탕 친다.
모니터에 이내 불이 들어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제목이 올라온다.
‘인터넷영화감독 조영호 되기’ S#2 조영호의 집(밤) 열아홉살의 조영호와 아버지, 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다.
조영호는 테이블 위에 시선을 떨구고 있다.
어머니가 부드럽게 아버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신문을 쫙 펼쳐든다.
아버지:하필 딴따라가 뭐냐, 딴따라가. 조영호는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책상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는 책상 위에 쌓인 책뭉치를 툭 건드린다.
방바닥으로 흩어져내리는 책들. <꽃들에게 희망을> <서양미술사> <김수영 시 전집> <권력이동> <1984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조영호는 그중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집어든다.
책장을 펼치자 두개의 문장이 그 위에 뜬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여대에 간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간다’. 조영호는 떨리는 손으로 ‘연극’을 클릭한다.
S#3 드라마센터 (밤) 아서 밀러의 <시련>을 공연중인 무대. 조영호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관객들의 환호 속에 막이 내리고 암전. ‘영호야, 오늘 최고였어’ ‘멋지더라’ ‘내일 보자’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어둠속에 들려왔다가 사라진다.
아무도 없는 소극장 무대바닥 위,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조영호가 앉아 있다.
영화사 ‘기획시대’ 대표 유인택, 영화감독 박광수, 배우 문성근의 얼굴들이 그의 망연한 얼굴 위로 겹쳐진다.
영화현장 속 그들의 얼굴은 강렬한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어둠속에 다시 선택지 두개가 뜬다.
‘영화인가’, ‘연극인가’ 조영호는 ‘영화’를 클릭한다.
S#4 몽타주(낮) (런던공항) 공항을 나서던 조영호는 잠깐 멈춰서 낯선 땅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의 손에 들린 옥스퍼드 안내지도. (옥스퍼드 한인학교) 조영호가 칠판에 판서하며 아이들을 둘러본다.
(런던영화학교 스튜디오)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진다.
카메라렌즈 속에서 조영호가 다른 연기자를 바라본다.
(런던왕립연극원 도서실) 고요한 도서관 내부. 조영호가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품하며 기지개를 펴는 조영호의 눈앞에 영화 스크린이 동동 뜬다.
조영호는 책과 스크린을 번갈아 보다가 스크린을 클릭한다.
(영국의 한 은행) 영화기획서를 신중하게 읽던 투자자가 조영호에게 손을 내민다.
조영호는 기쁜 얼굴로 그의 손을 마주잡는다.
(충무로와 여의도 거리) 조영호는 영화기획서와 시나리오 ‘코트와 연어의 긴 여행’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00비디오프로덕션, 00영화기획사, 00방송국 건물이 스쳐지나간다.
중년남자의 목소리: 뭘 믿고 투자를 하죠? 이게 성공할 것 같아요? 필름을 아무나 하나? (김포공항) 외국인 스태프들이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돌아선다.
조영호와 한국의 스태프들은 그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서 있다.
조영호:(씩씩하게 돌아서며 스태프들에게) 자, 우리도 가자. S#5 무한기술투자 사무실 (저녁) 무한기술투자 이인규 사장이 영화기획서를 읽고 있다.
지치고 야윈 조영호의 얼굴에서 눈만이 유독 빛나고 있다.
이 사장:(천천히 입을 뗀다) 기획은 좋은데…. 아직 영화 펀드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조영호,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난다.
바닥에 핏방울이 툭 떨어진다.
조영호의 코에서 피가 주루룩 떨어져내린다.
당황한 조영호, 이 사장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문을 나선다.
조영호:(닫고 나온 문에 기대며)후우. 하필 지금…. 조영호의 눈앞에 두개의 선택지가 뜬다.
‘포기한다’, ‘다른 길을 찾는다’ 조영호는 서서히 손을 들어 ‘다른 길’을 클릭한다.
그러자 6mm 디지털 캠코더 렌즈가 나타나 조영호를 빨아들인다.
긴 터널을 지나 조영호는 광장 위로 떨어진다.
광장은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덮여 있고 그 끝마다 모니터가 빛을 발한다.
조영호: 저거야. S#6 네오타이밍 조영호의 방 (아침) 조영호,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다.
똑똑, 노크소리. 직원:(문을 빼곰이 열며) 저기, 감독님. 오늘 인터뷰…. 네개 하셔야 하는데요. 조영호: 음, 으응, 알았어요. 조영호, 황망히 눈을 비비며 노트북 ‘ESC’ 키를 누른다.
모니터가 켜지면 자판을 두드린다.
조영호 목소리 : 저는 견고하고 정당한 나 자신의 기준과 규칙을 만들어가면서 일하고 또 살고 싶습니다.
인터랙티브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행이라는 성공을 맛보고 싶습니다.
갖가지 이야기가 내용과 형식, 매체와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주제와 감동, 흥미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기지개 켜며 일어나는 조영호 앞에 선택지가 뜬다.
‘제도권’, ‘인디’. 조영호, 손을 내밀어 클릭하려는 순간 암전. 엔딩자막이 뜬다.
‘이 영화는 조영호 대표와 가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한 픽션입니다.
조 감독의 진짜 선택은 그의 다음 영화 <개족>을 통해 지켜보십시오.’ *추천 사이트 시네마토그래피닷컴 cinematography.com 잇츠유어무비 itsyourmovie.com 알타비스타 altavis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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