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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실리콘밸리 스토리(데이비드 A /캐플런)
[지식창고] 실리콘밸리 스토리(데이비드 A /캐플런)
  • 심상민(삼성경제연구소)
  • 승인 2000.07.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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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 더이상 영혼은 없다
“나는 뭐야?”
프롤로그를 읽고 나니 제꺽 이런 힘 빠지는 느낌이 왔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면면을 고감도 망원경으로 훔쳐본 듯하다.
너무나 큰 격차에 허탈감이 앞선다.
책 내용에 대한 선입감을 버리기 위해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는다.


갑부들의 울타리 안. <실리콘밸리 스토리>(데이비드 A 캐플런 지음, 동방미디어 펴냄)는 먼저 그 안으로 잠입한다.
<뉴스위크> 기자인 지은이는 갑부들의 ‘재력’을 원없이 보여주고, 독자를 역사기행으로 데려가고, 화려한 기업가들을 소개해준 뒤 끝으로 큰 물음을 던지는 순서로 이 책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그 큰 물음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뉴다.

돈 구경의 극치는 ‘우드사이드’라는 갑부 마을을 묘사한 부분에 있다.
평균 주택가격이 150만달러를 넘는 이 마을에는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가수인 닐 영과 존 바에즈 등이 살고 있다.
그들과 이웃들은 주식상장 기념파티, 마이크로소프트 타도 파티, 5만달러 쓰기 파티 따위를 열며 흥청댄다.
지은이는 “실리콘밸리는 족히 그럴 만하다”고 은근히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황금 신전에 대한 탐사는 이렇게 ‘부’에 대한 경의로부터 시작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말은 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원은 160년 전인 183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존 수터라는 한 선장이 멕시코로부터 허가받은, 산호제이 일대의 활기없는 땅에서 ‘프라이팬 속의 빛’으로 불린 황금을 발견했다.
골드러시 이후 이 지역 인구는 10년마다 배로 늘어났고 다양한 비즈니스의 향연이 펼쳐졌다.
스탠퍼드대학의 설립자인 리랜드 스탠퍼드도 광부들을 상대하던 인근 새크라멘토의 거상이었다.
골드러시는 2430만온스의 금을 끝으로 끝났지만 ‘황금 맛’을 본 캘리포니아의 유전자 코드는 이미 바꿀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프레데릭 터먼이 후원한 휴렛, 그리고 패커드가 1939년 의미있는 동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하이테크 벤처 기업의 효시다.
2차세계대전도 이들의 성공을 도왔다.
이때 트랜지스터의 재료가 된 실리콘을 따서 누군가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57년 휴렛패커드는 기업을 공개했고 엄청난 부를 일궜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이런 성공 신화는 백배 천배로 확산되고 있다.
인텔, 두 스티브(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의 애플컴퓨터, 래리 앨리슨의 오라클, 스콧 맥닐리의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우상 존 도어, 24살에 억만장자가 된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슨과 실리콘그래픽스의 짐 클라크, 그리고 야후의 제리 양으로 신화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은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를 짓밟은 것과 같은 사례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밤비가 고질라를 만나다”라는 표현까지 인용한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선 틀에 박힌 르포르타주가 아닌 일종의 문명비평서를 겨냥한 듯하다.
지은이는 끝마무리를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22년을 살다 미국 동부의 메인주로 옮겨간, 3컴 창업자 밥 메트캘프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트캘프는 인터넷이 빚어낸 새로운 혼돈에 대해 “이윤도 합리적인 비전도 없는 기업이 기업공개를 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한탄한다.
“여기에는 신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이 그립다”며 눈앞의 현실을 탓하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도 끼워넣었다.
이혼율이 80%에 이르고, 가족요법 전문의가 실리콘밸리 최대의 병을 ‘휴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지적한 것 등 어두운 측면이 계속 부각된다.
결국 파티가 계속되는 가운데 참여자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게 끝맺는다.
“실리콘밸리는 한때 새로운 기계였다.
실리콘밸리는 세계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제 그 기계에는 더이상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
” 책을 덮자 안개가 걷힌 실리콘밸리의 명징한 모습, 그 맨 얼굴이 환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더욱 친근해진 느낌이다.
마침 아메리카온라인(AOL)이 있는 미국 수도 워싱턴 일대가 고용인력 면에서 실리콘밸리를 추월했다는 뉴스가 전해왔다.
도전 받는 그곳, 실리콘밸리는 언제까지 우리 시대의 우상이 될 것인가.
P37 싫든 좋든 실리콘밸리는 20세기 말 미국인들이 그리는 꿈의 낙원이 되었다.
과거 한때 서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실리콘밸리가 현실과 신화를 뒤섞어 놓은 동경의 나라가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동경하든 멸시하든, 우리는 실리콘밸리를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일말의 암시를 얻을 수 있다.
P282 이곳에서 이뤄진 성공의 이면에는 더이상 차고를 발판으로 한 소자본 창업시대의 낭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쓰디쓴 비밀이 내재해 있다.
….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금융계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힘, 다시 말해서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 힘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경제법칙뿐이다.
P594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목표는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것이다.
자선활동을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실리콘밸리를 비췄던 서광이 이제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개척자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그 자리를 투기꾼들이 채우고 있다.
…. 파티가 계속되는 가운데 파티 참여자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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