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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자기장에서 빛의 속도를 찾았다.
[테크놀로지] 자기장에서 빛의 속도를 찾았다.
  • 이김정(객원기자)
  • 승인 2000.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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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200테라바이트 전송 속도 가능 자기장통신 서비스 준비중…실용화의 벽 돌파할 것인가
스티브 배런(Steve Barron) 감독의 1984년 영화 <일렉트릭 드림즈>(Electric Dreams)는 어느 날 집에 들여놓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전기로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제어하는 것을 보여준다.
커피메이커와 전동칫솔을 작동시키고, 출입문까지 관리하는 이 똑똑한 컴퓨터는 혼자 있는 시간에 TV를 틀어 말을 배우고,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사랑에 빠져 주인공의 연적이 된다.
흔한 공상과학 영화의 사이보그들처럼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 주인공을 곤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사람들을 사로잡는 한가지는 전기와 컴퓨터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재미난 상상력이었다.
그런 상상 속의 일이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날 모양이다.
전력선통신과는 발상부터가 다르다 미국의 미디어퓨전(Media Fusion)이라는 회사가 ‘전력선 자기장 통신’(PAN, Power-line Area Network)이라는 ‘꿈’같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전력선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통신수단으로 활용하는 이 기술은, 기존 전력선을 통해 초고속통신을 훨씬 능가하는 2.5Gbps의 속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전력선 자기장 통신’은 기존 ‘전력선 통신’(PLC, Power Line Communication)의 고민을 ‘콜럼버스의 달걀’이라 할 만한 발상의 전환으로 풀었다.
PAN 기술을 개발한 윌리엄 루크 스튜어트는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신호학과 초극단파 기술 그리고 초고속 컴퓨터와 뇌신경시스템을 본뜬 네트워크에 전문지식을 가진 그의 묘책은 무엇일까. 그는 기존 PLC 기술 개발자들이 전력선 내부를 통해 데이터를 흘려보내고, 잡음없이 데이터를 수신하기 위해 쏟아왔던 노력을 전혀 다른 곳에서 해결했다.
그는 쓸모없는 현상으로만 여겨지던 전력선 주위의 자기장에 ‘메이저’(MASER, Microwave Laser)를 사용한 데이터를 실어보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 첨단 부반송파 프로세스’(ASCMTM, Advanced Sub-Carrier Modulation Process)로 불리는 이 기술은 송전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에 정보를 써넣어 전력선을 통해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50KHz에서 2만4000KHz까지 폭넓은 주파수 대역을 확보해 다양한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통신 가능범위는 200마일(3200km)이다.
스튜어트는 “우리는 아주 원거리 지역까지 데이터 전송 속도를 증가시킬 거의 무제한의 가능성을 지닌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미디어퓨전의 아시아지역 파트너인 ‘파워코리아21’(대표 송요섭)은 “2002년 2.5Gbps로 첫 상용화 서비스를 진행하고, 그 2~3년 뒤부터는 200테라바이트 정도의 속도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튜어트는 이런 초고속 전송이 가능한 것은 신호를 방해하는 스위치(switch)나 라우터(router) 또는 게이트웨이(gateway)의 수가 적어서라고 한다.
복잡한 데이터 이동경로 전력선 하나면 끝 이 데이터 전송 방식은 기존 PLC 기술이 지녔던 또다른 한계도 해결한다.
PLC는 변압기를 거칠 때 생기는 불안정성과 속도저하 문제 때문에 지리적 한계를 지닌 서비스에 만족하거나, 변압기를 우회할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자기장을 이용하면 이 문제는 사라진다.
데이터 전송 기술의 이런 탁월성과 안정성은 국내 전역을 서비스하는 데 하나의 컨트롤센터만 설치해도 될 정도라고 한다.
파워코리아21은 총 3600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하나의 주 컨트롤센터와 두개의 백업센터를 구축하고, 2002년부터 전국을 포괄하는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는 기존 초고속통신망 사업에 비해 아주 값싼 투자가 될 것이다.
스튜어트는 “이 믿을 수 없는 전송 가능성이 끝은 아니다.
조만간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이나 작업 배분을 포함해 전체 작업 속도를 훨씬 더 빠르게 해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극적인 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술을 활용할 추가적인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는 전기 소켓에 끼워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컨트롤러’라는 간단한 중계기를 통해 TV와 전화, 컴퓨터 등을 전력선과 연결하게 된다.
케이블TV망, 전화선, 광통신망 등으로 복잡하던 데이터 전송 경로가 전력선 하나로 줄어드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85% 가량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화선이나 초고속통신망 따위를 이용한 인터넷 접속은 12~1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전력선을 활용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또다른 광케이블이나 동축케이블을 깔지 않고, 이미 집집마다 연결된 전력선을 활용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진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대도시와 농촌간의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일은 한결 수월해진다.
이는 정보의 소외를 극복하고픈 일반사용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고픈 기업에게도 입맛당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퓨전의 블레어 사장도 이 기술이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쉽게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아직 말뿐인 이 기술이 21세기 정보혁명을 이끌어나갈 표준으로 자리매김 할 때만 가능하다.
이제 막 실험실을 빠져나온 이 기술은 현장시험이라는 중요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미디어퓨전은 올 가을 댈러스 지역에서 이 시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으나, 파워코리아21 관계자에 따르면 2001년 말경으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기존 전력선 통신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 대응할 만한 차별적이고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자제품 제조 업체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와의 협력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 두가지에 모두 성공했을 때 기존 PLC 기술의 연대인 ‘파워라인 프로젝트’(Power line Project)에 속한 기업들의 비판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라인 프로젝트에 속한 기업들은 PAN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이 기술을 이용할 많은 하부기술들 또한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튼튼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PLC 기술의 표준을 정하고, 시장을 개척하려 애쓰는 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와 서비스를 이야기하는 PAN의 존재가 현실화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기술경쟁의 역사를 보면 ‘DVORAK 자판’이 그 입력방식의 효율성을 입증하고도 전부터 타자기에 사용돼오던 ‘QWERTY 자판’이라는 실질적 표준을 밀어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처럼 기술적인 효율성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심심찮게 있다.
전력선 통신의 첫번째 해답으로 나온 PLC 업체들이 상용화 서비스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선점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를 전력선 내부에 실어보내는 것에 따른 속도의 한계와 전력선망 자체의 간섭현상들을 피하기 위한 추가 비용을 생각할 때, PLC가 PAN에 비하면 한수 아래라 해도, 현재로선 이들이 전력선을 이용한 통신의 이점을 먼저 선보일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2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2000’에서 1Mbps 모뎀 시연회를 성공적으 로 개최한 기인텔레콤은 하나로통신과의 제휴를 통해 2Mbps급 전력선 통신모뎀을 개발하고, 올 10월에 시험 서비스, 내년부터는 초고속인터넷망 상용 서비스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산업자원부가 추진하는 10Mbps급 전력선 통신모뎀 개발에도 한국전력·한국전기연구소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영화 속의 꿈과 가장 가까운 홈 오토메이션은 ‘플래넷’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플래넷은 Z-256이라는 자체 프로토콜을 적용한 스위치 유닛, 소켓 유닛이라는 제품을 이미 상용화해 공급함으로써 전력선 통신 서비스의 개척자를 자임한다.
낮은 속도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기술이지만 이 제품을 탑재한 소켓을 이용할 경우 별도의 장비 없이 6만5500개 이상의 가전, 정보통신기기를 연결할 수 있다.
전류소비가 30mA 이하로 적고, 가격이 저렴해 사이버 아파트 등의 홈 오토메이션에는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양방향 데이터 통신으로 조명제어 및 방범, 방재, 기타 가전기기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용화 단계 들어간 PLC 기술을 이길 것인가 좀더 넓은 범위의 자원관리는 원격자동제어시스템 개발에 성공해 특허를 출원한 ‘코아렉스’가 앞서 있다.
코아렉스는 디지털 통신 기술을 이용한 제어와 감시 기술로 가로등이나 보안등에 설치된 램프나 안정기 등의 이상 유무 등을 전력선을 통해 감시한다.
특히 공기업과 국가 기반시설의 효율적인 관리와 간단한 가정 자동화, 빌딩 자동화 기술 등을 겨냥한다.
이에 비해 PAN 기술은 아직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의 생명력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개념의 전력선 자기장 통신이 가능하다고 밝힌 빛의 속도는 그 자체로 많은 동력을 갖고 있다.
많은 기술자와 업체들이 이들과 손잡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렇다면 전력선 자기장 통신은 사람들의 오랜 상상에 힘입은 성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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