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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홈 오토메이션(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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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춘희
  • 승인 2000.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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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잘못 잡은 쌍방향 CATV
“꿈을 그리는 아이, 결코 꿈이 아닙니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89년 6월 정보문화의 달을 맞아 공익성 광고를 냈다.
지금 저 아이가 그린 꿈이 가까운 장래에 풍요하게 실현될 것이라는 걸 한국통신은 알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조그만 손으로 도화지 위에 그린 꿈들이 이뤄져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팩시밀리가 오가고, 컴퓨터 데이터통신이 열리고, 그리고 이제 첨단 미래사회로 안내하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꿈꾸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결코 ‘꿈’이 아니었다.

80년대 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텔레비전 광고는 최첨단이었다.
두 라이벌이 내건 슬로건은 각각 ‘휴먼테크’와 ‘테크노피아’. 인간과 기술이 손을 잡는 가슴 찡한 장면이 안방에 펼쳐졌다.
그러나 산업부분의 정보화, 그러니까 당시 유행하던 OA(사무자동화)와 FA(공장자동화)의 발전속도에 비해, 정작 중요한 가정자동화(HA)는 더디게 나아갔다.
가정정보화를 주도한다던 혁신적 뉴미디어는 학술논문이나 체신부의 계획안에만 존재할 뿐, 가정은 정보화 물결에서 철저히 샛강으로 흘렀다.
재택근무, 재택학습, 재택진료 따위는 말로만 떠돌 뿐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집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되면 ‘안락한 휴식공간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보화 기지로서 가정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시 가정이라는 황무지에 뿌리를 내릴 만한 정보미디어로 어떤 게 꼽혔을까. 당시 마니아들을 만들어가던 피시통신과 비디오텍스, 문자다중방송(텔레텍스트)이 강력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고품위 텔레비전(HDTV)과 쌍방향 CATV, 비디오 디스크(지금의 DVD)가 일반화할 것으로 예견했다.
특히 비디오텍스와 쌍방향 CATV는 21세기에 뜰 가장 대중적인 정보전달 매체로 꼽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88년 말에 내놓은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다.
미국 국방부의 인터넷이 상업용으로 개방되리라고 점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비디오텍스는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데이타통신(데이콤)이 서둘러 서비스를 시작한 천리안 서비스가 시초다.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방식의 전용 단말기를 주요 경기장에 설치하고 교통·관광, 쇼핑, 일기예보, 환율 등 외국인이 궁금해할 만한 4천여개의 화면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 단말기는 주최국으로서 으레 갖춰야 할 예의 정도로 해석됐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근간으로, 88년 5월부터 문자만으로 피시통신 사용자에게 정보를 공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리안Ⅱ 서비스다.
지금 이 서비스는 원래 그 이름대로 ‘천리안’으로 불리고 있다.
주문형 비디오는 노래방 서비스?
쌍방향 CATV는 당시로선 낯선 개념이었다.
CATV가 정식 허가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 일이고, 당시에는 난시청 지역에 공청 안테나를 세운 뒤 깨끗한 화면을 서비스하는 지역유선방송 사업자가 고작이었다.
그들에게 쌍방향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쌍방향 CATV는 93년부터 미국에서 불어닥친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통해 ‘미약하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다.
가입자가 프로그램 스케줄과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송국이 릴 테이프가 아닌 하드디스크에 동영상을 저장하면, 시청자는 TV와 전화선을 연결한 셋톱박스를 통해 원격조정을 했다.
지금 노래방 같은 방식이라고 하면 너무 얕본 것일까? 이 반쪽짜리 쌍방향 CATV는 한국에도 들어왔다.
94년 10월 한국통신이 서울 반포와 목동 지역 일부 주민을 대상으로 가입자를 받아 서비스했다.
교육,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스포츠, 영상반주 등을 3개월마다 한번씩 새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가입자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이용률이 떨어져 1년도 못 가 문을 닫고 말았다.
한국통신은 다음해 국정감사에서 예산을 낭비했다며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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