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5:10 (수)
[디지털@오감]2.후각
[디지털@오감]2.후각
  • 오철우
  • 승인 2000.07.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의 향취를 컴퓨터에 저장한다.

"냄새도 멀티미디어 요소" 사람코 닮은 냄새 분석과 향발현 기술개발 한창
사람의 오감 가운데 후각을 일깨우는 냄새는 ‘멀티미디어 정보’다.

봄철 꽃사태가 내뿜는 향기부터 한적한 카페의 커피향, 그리고 한여름 계곡의 녹색 내음, 떠들썩한 바닷가 내음, 한겨울 손을 호호 불며 까먹던 군고구마까지, 온갖 냄새는 우리 기억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돼 있던 옛 정보를 ‘메모리’로 문득 불러낸다.


냄새는 또한 생활의 실감이다.
새옷 냄새, 김치 냄새, 빵 냄새, 술 냄새, 책 냄새, 땀 냄새 등등엔 우리네 생활이 담겨 있다.

이렇게 생활과 기억을 갖가지 색깔로 재생해주는 냄새가 이제 컴퓨터 안에서 디지털 신호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7월 중순의 무더위 날씨지만, 서울 송파구청 안 송파벤처타운 803호 이원이디에스(대표 최중호) www.eoneinc.co.kr에 들어서면 달콤한 꽃내음이 사무실 가득히 진동한다.
꽃밭 한복판에 선 듯한 달콤함이 은은하게 퍼진다.
“냄새는 기억입니다.
나쁜 냄새든 좋은 냄새든 옛 상황을 기억하게 만들어, 비로소 냄새를 구분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냄새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달라요.” 이원이디에스 부설 향발현기술연구소 장응하(38) 소장은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아주 주관적이어서 표준화된 냄새를 디지털 신호로 구현하는 기술은 더욱 어렵다”고 한마디 내뱉는다.
실제로 동물의 후각은 과학계에서도 가장 규명되지 않은 미개척 분야다.
이 연구소에선 세계 최초로 디지털 향발현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목표 아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대사연구센터와 산학 협동으로 한창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인터넷 향 전송 이미 시제품 단계 이미 몇가지 기술은 시제품이 나올 정도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인터넷 전자우편에 장미향의 재생 파일을 첨부해 보내면, 향발현 단말기를 갖춘 상대방은 편지를 여는 순간 스치듯 장미향을 맡을 수 있다.
디지털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나 영화 또는 게임에 향을 재생하는 디지털 신호를 담아, 실제 상황처럼 가죽, 폭약, 음식, 꽃밭을 연출할 수 있다.
이게 다 지금도 가능한 기술 수준이다.
세계 여러 기업들도 비슷한 시기에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디지센트 www.digiscents.com 역시 인터넷과 게임, 영화 등 디지털 세계에 향을 퍼뜨리는 색다른 사업에 나서고 있고, 리얼아로마 www.realaroma.com라는 업체도 초보 수준의 인터넷 향발현 단말기를 판매한다는 공고를 자사 사이트에 내걸었다.
최근 들어 디지털 향발현 기술이 이처럼 경쟁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까 조만간 디지털 기기 분야에서 다양한 향을 재생하는 제품들을 보게 될 전망이다.
향발현 기술의 원리는 단순하다.
냄새분자의 성분을 분석해 특정 냄새의 주성분을 찾아낸다.
보통 하나의 냄새는 수십가지 분자가 조합을 이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커피향은 수백가지, 장미향은 수십가지 냄새분자로 이뤄졌다.
공통의 냄새성분을 찾아내는 일은 중요하다.
마치 적색(R) 녹색(G) 청색(B) 등 삼원색이 컴퓨터 화면에 자유자재로 자연색을 빚어내듯이, 냄새를 이루는 기본요소를 찾아낸다면 더욱 수월하게 다양한 냄새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향발현 기술에서 대단히 어려운 기술장벽 가운데 하나다.
일단 냄새성분 분석이 끝나면 냄새성분마다 표준 코드를 부여해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한다.
이제 이런 냄새 데이터는 온라인으로 전송할 수도 있고, 재생소프트웨어와 향발현 단말기를 통해 향으로 재생할 수도 있다.
냄새 원액을 갖춘 향발현 장비는 입력한 데이터에 따라 원액을 적절하게 분사해 냄새를 재생한다.
KIST 윤창노(42) 책임연구원은 “단순한 원리처럼 보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냄새를 정확하게 분석해내는 기술, 분사 단말기를 미세하게 제어하는 기술, 잔향을 없애는 기술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정밀성이 상당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원이디에스는 현재 50여가지, 내년 초까지 200여가지 냄새를 구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론 사람이 맡는 1만가지 이상의 냄새를 자동으로 구현하는 시스템 개발이 목표다.
최근엔 냄새 표준화를 위한 국내 컨소시엄 구성도 마쳤다.
전자코 개발 땐 다양한 응용분야 혁명 사람이 맡을 수 있는 1만가지 이상의 모든 생활향을 구현하려면, 사람코처럼 순식간에 냄새를 분석해내는 ‘전자코’(electronic nose) 기술이 이뤄져야 한다.
전자코는 그래서 디지털 후각 기술의 결정판인 셈이다.
전자코는 음주측정기처럼 특정 냄새성분만을 감지해내는 일반 센서와는 달리, 자연상태의 공기에 떠다니는 갖가지 냄새를 실시간으로 분석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화될 경우 다양한 응용분야에 혁명을 몰고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람코로 맡기 어려운 독성물질 성분을 분석해내고, 멀리 떨어진 환자의 시각-청각 정보와 함께 냄새로 증세를 진단하는 원격진료, 공장의 공해물질을 감시하는 환경장비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냉장고가 몇달째 처박아둔 음식의 상한 냄새를 맡아 경고음을 울리는 일도 실현될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은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에서 예측하지 못한 어떤 냄새라도 감지해낼 수 있는 전자코(E-NOSE)를 민간연구소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전자코는 어떻게 모든 냄새를 맡을까. 전자코는 사람의 후각 시스템을 흉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냄새분자가 콧구멍의 냄새 수용체와 결합해, 전기신호를 만들어 뉴런을 거쳐 뇌에 전달하면, 뇌는 전기신호를 종합분석해 냄새로서 인식하는 게 지금까지 밝혀진 사람의 냄새 인식체제이다.
전자코 역시 마찬가지다.
수용체 구실을 대신하는 센서는 냄새분자에 따라 저항과 전압의 변화를 일으키며, 이런 아날로그 신호는 곧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encoding)을 거쳐 컴퓨터에 냄새 정보로서 저장된다.
향발현 단말기와 연결된다면 이 정보는 다시 인공향으로 재생(decoding)될 수 있다.
장응하 연구소장은 “세포 구실을 하는 전자코의 센서는 초보수준에서 수십개 정도가 쓰이나, 완전하게 발전된 형태가 되려면 수천개, 수만개까지 나아가야 자연상태의 갖가지 생활향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의 칩으로 완성해야 한다.
전자코 기술은 80년대부터 과학기술계에 색다른 연구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사람의 후각 수준에 비하면 한참 뒤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확산에 따라 최근에야 관련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KIST 윤창노 책임연구원은 “미국 프랑스 등 여러나라의 연구소들에서 전자코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냄새를 얼마나 실시간으로 빠르게 분석해내느냐, 그리고 분석된 정보를 어떻게 정밀한 제어를 거쳐 상대방도 똑같은 느낌을 갖도록 재생하느냐가 연구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신호로 냄새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대중화된다면, 앞으로 냄새 역시 멀티미디어의 주요소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영상과 음향의 저장·재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화질·고음질과 3차원의 영상·음향이 등장하고 원격으로 영상과 음향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디지털 냄새 역시 또하나의 멀티미디어로 자라날 것이란 얘기다.
그때쯤이면 어머니의 옛 향취를 내 컴퓨터에 담아두는 일도, 내가 맡은 좋은 냄새들을 친한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일도 과연 낯설지 않게 될까.
제목 변덕스런 사람코 ‘그때 그 냄새’ 만족은 한계
사람 vs 디지털 한가지 향만을 내는 아날로그 향과는 달리, 디지털 향은 다양한 조합의 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통된 냄새성분을 몇가지만 갖추면 이들의 배합 비율을 달리해 다른 냄새를 내뿜을 수 있다.
게다가 냄새를 디지털로 분석하는 전자코 기술이 발전한다면, 사람이 느끼는 생활향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꿈만은 아닌 시대가 열리게 된다.
디지털 전자코는 많은 분야에서 사람의 후각 능력을 대체할 수 있다.
사람코는 특정 냄새의 자극에 금세 적응해버려 반응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같은 냄새를 계속 맡다 보면 더이상 그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코는 이런 점에서 사람코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예컨대 상한 생선 냄새를 오래 맡은 사람코는 상한 것을 골라내기 힘들지만, 전자코는 같은 냄새를 계속 맡더라도 능력이 저하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전자코는 또 사람코가 맡을 수 없는 아주 적은 양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다.
‘개코’보다 더욱 뛰어날 수도 있다.
사람은 대략 1만가지 정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후각 능력이 크게 퇴보한 수준이다.
기술이 진보한다면 앞으로 전자코와 디지털 향발현 기술은 사람의 후각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론상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론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후각은 시각·청각·촉각 등 다른 감각과 비교해 주관적인 특성이 매우 강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냄새를 맡았느냐에 따라 냄새의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 그 냄새’를 재현하는 데엔 원천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향이 사람을 만족시키기엔 사람코는 너무 변덕스럽다는 얘기다.
또 무수한 센서를 단 전자코는 같은 화학성분의 냄새라 해도 당시 기압과 온도, 바람 등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같은 냄새에 대해 다른 분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약점이 지적되고 있다.
다른 여건을 무시한 채 냄새의 화학 정보만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냄새분자와 냄새 수용체는 ‘열쇠와 자물쇠’
냄새와 후각 헤이즐럿 잔을 코에 가까이 들이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셔보자. 공기는 폐로 들어가기에 앞서 콧구멍을 지나면서 커피향이 느껴진다.
콧구멍의 윗부분에 점액으로 덮힌 5㎠쯤 넓이의 후각표피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냄새의 비밀’을 지닌 은밀한 곳이다.
수천가지의 후각 수용체들이 이곳에서 냄새분자를 맞이한다.
냄새분자들은 기체 상태로 떠돌다가 점액에 녹아들면서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게 된다.
냄새분자들은 어떻게 냄새를 일으킬까.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밝혀진 바로는 냄새분자와 수용체는 서로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로 만난다.
특정 모양의 냄새분자들이 특정 수용체와 어울려 후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때 수용체는 냄새분자와 짝을 이루는 순간 진동을 일으켜 전하를 띤 입자로 신경신호를 만든다.
신경신호가 곧바로 후각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우리는 커피향을 1초 이내의 순식간에 느끼게 된다.
전자코에서 센서 구실을 하는 후각 수용체는 사람코에 수천가지로 존재하는데, 때로는 여러가지 수용체가 하나의 냄새를 인식하기도 하며, 때로는 여러가지 수용체가 여러가지 냄새를, 한가지 수용체가 하나의 냄새를 인식하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후각은 동물의 감각 가운데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감각기관에 속한다.
어떻게 수만가지의 냄새를 그토록 적은 종류의 후각 수용체들에서 모두 일일이 구별해 인식할 수 있는지의 후각 메커니즘도 현대 과학계에서 아직도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