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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脈] IT업계의 뜸들이기 마케팅
[디지털脈] IT업계의 뜸들이기 마케팅
  • IT팀 김상범 기자
  • 승인 2001.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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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생각나나. 그때는 정말 금방이라도 엄청난 시장이 만들어질 것 같았어. 그런데 정작 프로젝트가 발주되고 물건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지.”
외국 EDMS(전자문서관리시스템) 소프트웨어 업체 한국 지사장의 말이다.


그는 5년 전인 1996년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 EDMS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정보기술(IT) 시장에서 EDMS는 ‘뜨는’ 솔루션이었다.
세계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우리나라 시장에 앞다퉈 들어와 “사무실에서 종이문서를 없애주겠다”며 각축을 벌였다.
EDMS는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KMS(지식관리시스템)를 만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지식관리 열풍은 대단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식관리를 이야기했고, 관련 세미나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까지 지식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을 정도였다.
그같은 열기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다시 만난 그는 이제서야 시장에서 물건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IT 산업은 하이테크 산업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숨가쁘게 변화하는 산업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이 등장해 세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듯 요란을 떨어대니, 광속의 산업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의외로 IT 산업은 긴 호흡이 필요한 산업이다.
어떤 정보기술이나 관련제품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기까지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위의 EDMS(KMS) 시장 얘기가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다시 96년 당시의 국내 IT 시장을 돌이켜보자. EDMS보다 조금 앞서, 그리고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ERP(기업자원관리)다.
이것은 기업 내 모든 업무자원을 통합 관리해주는 초대형 솔루션이다.
SAP, 오라클, 바안, SSA 등 세계 굴지의 ERP 업체들이 그야말로 대단한 각축을 벌였다.
‘한국형’이란 머리표를 붙인 국산 ERP 업체들도 속속 등장해 각축전에 합세하면서 ERP는 정보기술 업계의 가장 큰 화두로 등장했다.
그러나 ERP도 업계 입장에서 볼 때, 실제로 돈이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라고 한다.
그동안은 사실 업계 전체의 마케팅 기간이었던 셈이다.
EDMS와 ERP 말고도 또 있다.
데이터웨어하우징, 올랩(OLAP), XML,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 등이 5년 전 정보기술 업계에 유행처럼 번졌던 기술이자 제품들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진정한 시장형성의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해가 기점이다.
결국 정보기술 시장에서, 특히 기업용 대형 소프트웨어 솔루션의 경우 ‘XX가 뜬다’며 언론이나 시장의 주목을 끌은 뒤 ‘진짜로’ 뜨기까지는 5년이라는 뜸들이기 기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 지금을 보자. 요즘은 어떤 것들이 새롭게 ‘뜨고’ 있을까. EAI, EIP, CRM, ASP, DRM 등 대충 훑어만 봐도 10여개에 이른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돌아본 대로라면 이들도 정작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기까지(돈이 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경기침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뜸들이기에 2~3년은 족히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XX가 뜬다’는 말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IT 분야의 시장 특성을 감안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일 뿐이다.
뜸이 제대로 들지 않으면 밥은 설익는다.
결국 뜸들이기는 필요한 과정이고, 이 과정은 바로 IT 시장에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기간에 성과를 보인 기업이 결국 5년 뒤 과실을 따게 될 것이다.
외국의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언론은 속성상 뜰 것 같은 기술에 주목한다.
그리고 언론의 주목은 IT 업체의 ‘뜸들이기 마케팅’에 의해 유도되는 측면도 많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시장에 등장시키면서 정보기술 업체들이 서로 치열하게 전개하는 것이 용어 전쟁이다.
자신이 만들어 붙인 새 용어가 시장이나 업계에서 보통명사처럼 사용되도록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브랜드 파워를 얻게 되고 용어의 컨셉을 자사 제품에 적합하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뜸들이기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바로 용어와 컨셉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최고의 기술로 성공한 기업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마케팅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업들은 하나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마케팅 기업들이라는 점에 다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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