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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순도 99.9% 투명기업을 찾아라
[커버스토리] 순도 99.9% 투명기업을 찾아라
  • 이원재 기자
  • 승인 2001.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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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 85명 250개 상장기업 평가… 삼성전자·삼성SDI·포철 등 꼽아
바야흐로 기업설명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동안의 기업경영 실적을 추스려 투자자들에게 발표하는 자리가 잇따라 열린다.
지난 2분기와 상반기 성과를 알리고 3분기와 하반기의 경영전략을 내보이면서 시장의 준엄한 심판 앞에 몸을 내맡길 때다.
기업들로서는 긴장의 계절이다.


지금은 주가가 요동을 친 끝에 결국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고, 미국 경기불황으로 수출길도 꽉 막혀버린 상황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실적이 좋을 리 없으니, 기업설명회를 앞둔 기업들에는 비장함이 더한다.


아닌 게 아니라 기업들의 실적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매우 날카로워져 있다.
지난 7월13일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의 실적이 6월부터 적자로 전환됐다는 서울대 정운찬 교수의 발언이 전해지자 종합주가지수가 급락했던 사건은 이런 시장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시장 대표기업들의 실적 발표 때마다 주가가 출렁거리곤 해왔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실적 발표에 온 나라가 그토록 호들갑을 떠는데, 만약 그들의 발표가 거짓이라면? 거짓 장단에 온 나라가 춤을 추고, 투자자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헛돈질을 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시장은 기업의 실적 발표와 그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기업의 경영 내용과 실적에 관한 정보가 제때 정확하고 성실하게 시장에 공개되는가 하는 투명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기업의 투명성은 어떤 면에서는 시장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부실한 기업이 잘못된 정보를 유포한 뒤 나중에야 진실이 밝혀졌을 때는, 그에 따른 짐을 그 기업뿐 아니라 온 나라 경제가 함께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적 따라 투자자들 천당과 지옥 오가 그래서 은 상장기업들 가운데 어느 곳이 가장 성실하게 자사 기업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지를 평가해보기로 했다.
기업정보를 직접 얻어 분석하고 기업별로 투자매력도 점수를 매기는 증권사 기업분석 담당 애널리스트들과, 고객의 돈을 직접 손에 들고 어느 기업에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금융권 주식담당 펀드매니저들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평가자는 모두 85명. 이들에게 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의 250개 대표기업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에게 이만한 숫자의 상장·등록 기업들에 대해 평가를 의뢰한 것은 국내 언론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평가자들은 250개 기업들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144개 기업만 거론했다.
나머지 기업들은 아예 그들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어느 학교에나 성실하고 정직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물론 이런 구분이 우등생·열등생 분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대체로 성실한 학생이면 우등생 대열에 끼는 경우가 많다.
주식시장도 학교와 비슷한 것일까? “한국의 상장·등록기업 가운데 가장 투명하고 올바르게 투자자들에게 기업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을 묻는 질문에 시가총액 1위인 주식시장 대표기업 삼성전자를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 질문에 응답한 76명 가운데 가장 많은 12명(15.8%)이 삼성전자를 지목했고, 삼성SDI(9.2%), 포항제철(7.9%), 휴맥스(7.9%), 엔씨소프트(6.6%), 삼성전기(6.6%) 등이 그 뒤를 차례로 이었다.
삼성전자가 가장 높게 평가된 이유로는 “외국인투자자의 지분이 많아서 실적 공개를 강제 받는다”는 얘기가 많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외국인 보유지분이 50%가 넘어가면서 기업정보 공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지난해 11월 IR(투자홍보활동) 담당 임원을 두고 IR팀을 따로 꾸리면서 전열을 정비했다.
현재 이 회사 IR팀에는 담당 임원이 2명이나 포진하고 있으며,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감각을 지닌 인력들을 이 팀에 배치해 전문가로 키워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런 조처로 이전까지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에게 심어져 있던 “삼성전자는 뭔가 뻣뻣하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IR이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인상으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게 정기적으로 분기실적 발표를 하고 이슈가 생길 때마다 경영진이 직접 나서 설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기관투자가들에게까지 실적 발표 때마다 다자간 전화회의(컨퍼런스 콜)을 통해 최대한 기업정보를 알린다.
현대, 삼성 제치고 1위 등극 삼성전자는 이처럼 전반적으로 가장 투명한 기업으로 꼽혔음에도, 정작 올해 상반기 IR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는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기대가 큰 우등생인데, 올해 1학기에는 공부를 좀 게을리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 셈이다.
상반기 IR에서는 오히려 제일모직(7점 만점에 6.17점), 풍산(6.17점), 옥션(6점)이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자동차, 엔씨소프트 등도 점수가 높은 축에 들었다.
삼성전자는 이 항목에서 4.83점을 얻어 “조금 잘했다”는 평가를 듣는 데 그쳤다.
하기야 상반기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우선 삼성전자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D램 가격이 끝간 데 모르고 하락세를 탔다.
주가는 1월에 반짝 상승한 뒤 18만원에서 23만원 사이를 출렁거린 끝에, 6월 한달 내내 내리막길을 걸어 16만원대까지 내려앉았다.
또 한가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보를 전격적으로 임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을 무시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집중공격을 받기도 했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투명한 기업이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올해 상반기에는 애널리스트들과 펀드매니저들에게 적지 않게 마음고생시킨 셈이다.
‘가장 투명한 기업’을 꼽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그룹별로 집계해봐도, 상위 5위 안에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3개나 들었다.
삼성그룹은 재계 1위의 명성을 투명성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실제 성적표를 들춰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상반기 IR 평점은 7점 만점에 5.12점이 나와, 삼성그룹의 5.07점을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현대자동차가 계열분리된 뒤 건설과 전자 등에서 파생된 현대그룹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홍보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 IR팀도 삼성전자처럼 임원이 팀장을 맡고 있는 체제이고, 이 팀은 직접 기관투자가들을 찾아다니면서 투자홍보활동을 펼쳐 좋은 인상을 줬다.
여기다 상반기에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도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미포조선 등 전통산업이 주축인 현대자동차 계열 핵심 상장사들의 주가가 상승세이거나 그런대로 버티기를 해준 것도 평가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IT) 분야 수출시장의 붕괴로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 핵심 상장사들의 주가가 맥을 추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중소·벤처기업들 가운데서는 휴맥스가 응답자 60명 가운데 18.3%(11명)의 추천을 받아 ‘가장 투명하고 올바르게 기업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전달하는 기업’으로 떠올랐다.
그 다음은 엔씨소프트가 13.3%(8명)의 추천을 받아 2위를 차지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이번 조사에서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기업들도 있었다.
그룹별로는 SK그룹과 LG그룹이 호된 질타의 대상이 됐다.
SK그룹은 상반기 투자홍보활동에 대해 ‘보통이다’(7점 만점에 4.0점), LG그룹은 ‘조금 잘했다’(4.49점)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SK·LG 부정적” 명암 엇갈려 “기업정보를 가장 불투명하고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기업”이 어디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2명 응답자 가운데 각각 17.3%(9명)가 LG그룹과 SK그룹 계열사를 지적해 그룹별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이 항목에서 좀더 혹독한 매를 맞은 그룹은 롯데그룹으로, 가장 많은 19.2%(10명)가 이 그룹 계열사들을 꼽았다.
롯데그룹을 꼽은 이들은 “기업방문 자체를 거절하는 등 기업정보 공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는 이미지로 이 그룹을 기억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는 일부 펀드매니저들로부터 (주)SK가 투자홍보활동에 불성실했다는 꾸중을 들었고, SK텔레콤의 NTT 합작 관련 정보 공개가 투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LG그룹의 경우는 LG전자와 LG텔레콤이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 참여 여부 및 표준방식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뒤집고 동기식 사업을 벌이게 됐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롯데, LG, SK 그룹에게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응답자들이 거론한 144개 거래소·코스닥 기업들 전체의 상반기 투자홍보활동 점수는 7점 만점에 평균 4.69점으로 ‘보통’을 조금 넘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은 한국 기업들의 투자홍보활동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업지배구조 등 핵심 경영정보로 들어가면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투명한 기업, 투명한 사회는 아직은 한참 더 걸어가야 하는 재 너머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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