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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R 잘하는 투명경영인 누굴까
2. IR 잘하는 투명경영인 누굴까
  • 이원재 기자
  • 승인 2001.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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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김순택 대표, 포항제철 유상부 회장,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 등 꼽혀 삼성SDI 강진경 재무담당 상무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회사 주가가 끝간 데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광경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5만원대까지 갔던 주가는 순식간에 추락해 3만원대로 꺼졌다.
외국인투자자들 사이에는 삼성SDI의 주력제품인 CRT 시장이 곧 죽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TFT-LCD가 대체재로 등장해 삼성SDI의 주력시장을 갉아먹는다는 분석이었다.
그들은 주식을 시장에 내던지기 시작했고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 5월의 일이었다.
강 상무는 급히 외국계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섰다.
요점은 이랬다.
“시장상황이 외형적으로는 삼성SDI에 불리한 것처럼 돌아가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실제로 삼성SDI 경영진은 이익전망치를 하향조정할 계획이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익전망치를 하향조정하지 않는데 주가가 떨어질 이유는 없다는 논리였다.
애널리스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성SDI 경영진의 의견이 설득력이 있다고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 미국계 투자회사 애널리스트가 회의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논리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내가 수긍하더라도 우리 회사 경영진과 펀드매니저들이 수긍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며 시장까지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논리는 맞지만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었다.
펀드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들 의견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일단 투매가 일어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면 어떤 논리로도 막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가 소속한 투자회사는 삼성SDI의 주요 대주주 가운데 하나였다.
강 상무의 보고를 받은 김순택 삼성SDI 사장은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그래 강 상무, 나와 함께 나갑시다.
직접 투자자를 찾아가 설득해봅시다.
” 김 사장과 강 상무는 결국 이역만리로 날아갔다.
어렵사리 문제의 투자회사 최고경영진을 직접 만났다.
일단 논리로 물고 늘어졌다.
“우리 회사는 분명히 되는 회사입니다.
” 일단 이 투자자가 투매에 동참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다.
주가는 5월 말 바닥을 치고 유턴해, 7월 초순에는 5만7천원대까지 올라갔다.
경영자 직접 나서야 ‘큰손’들 신뢰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투자홍보활동(IR)에 나서는 것은 한국 기업풍토에서는 낯선 일에 속한다.
경영진은 대개 베일 속에 가려 있고, 잘 해야 중간간부 정도가 나서서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게 보통이었다.
최고경영진은 대외적인 업무에 나서는 것에 대해 일종의 거부감마저 지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직접 발벗고 투자홍보활동에 나서는 최고경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 주가를 좌지우지하는 ‘큰손’들인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공개하는 기업정보를 한층 더 신뢰한다는 점이 가장 큰 동인이다.
경영진의 기업경영 활동을 주가등락으로 평가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점도 이런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순택 삼성SDI 사장은 발로 뛰어다니며 투자자들을 만나는 적극성이 높이 평가돼, 이번에 펀드매니저·애널리스트들로부터 ‘가장 IR을 잘 하는 경영자’로 꼽혔다.
이 질문항목에 대해 응답한 68명 가운데 11.8%(8명)가 김 사장을 가장 투명하게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대상을 30대 기업집단 계열사 및 공기업 경영자로 한정하니 비율은 좀더 높아져, 48명의 응답자 가운데 18.8%(9명)가 김 사장을 가장 IR을 잘 하는 대기업 경영자로 꼽았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윤 부회장은 전반적으로 가장 IR을 잘 하는 경영인을 묻는 항목에서 김순택 사장 다음으로 높은 지지율(10.3%)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께부터 고급인력으로 IR팀 진용을 갖추고 체계적인 IR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팀이 꾸려지기까지는 윤 부회장의 뜻이 큰 힘이 됐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시가총액 1위 기업이면서도 투자자 대상 홍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 시장의 지탄을 받던 과거와는 달리, 경영설명회에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 일문일답에 일일이 응대하고 투자자나 애널리스트들의 기업방문도 대부분 받아주는 등 태도가 180도 바뀌면서 시장의 반응이 급격히 호전됐다고 한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무거운 기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포항제철도 거대한 몸집답지 않게 투자자들의 기업공개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상부 회장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좋다.
대기업 경영자들 가운데 가장 IR을 잘 하는 사람으로 유상부 회장을 꼽은 금융전문가는 응답자 48명 가운데 16.7%(8명)으로, 김순택 삼성SDI 사장 바로 뒤를 쫓았다.
유 회장 역시 외국인투자자들에 우선적으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포항제철의 외국인 지분은 이미 40%를 넘어선다.
유 회장은 우선 1년에 두차례씩 해외 로드쇼에 나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경영 전반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한다.
미국 뉴욕과 보스턴을 거쳐 10여개 투자기관들을 한바퀴 도는 빠듯한 일정이다.
공격적이고 까다로운 질문들이 많지만 회장이 직접 조목조목 대답을 해나가면 투자자들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유상부 회장은 정기 로드쇼 말고도 직접 IR 전략을 챙긴다.
회사를 방문한 투자자들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챙긴다는 얘기다.
포항제철의 경우 아직 철강 이후의 장기전략이 명확하게 서 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대표이사가 명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유 회장의 신념이다.
아직은 전략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믿고 투자할 만한 기업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시점에서 직접 회장이 나서 경영상황을 설명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은 “주가 1위 은행”이라는 구호로, 다른 은행보다 신뢰성이 높다는 이미지를 심는 ‘주가 마케팅’을 펼쳐 금융권 구조조정 시기에 큰 성공을 거뒀다.
당연히 IR활동은 행장이 직접 나서야 할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68명 가운데 7.4%(5명)이 ‘전반적으로 가장 IR을 잘 하는 경영인’으로 김 행장은 추천했다.
김 행장 역시 포철 유상부 회장처럼 직접 해외 로드쇼에 나선다.
특히 그는 98년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주장하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투자자들에게 숨김 없이 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택은행은 뉴욕 증시에 상장되기 전부터 미국 회계기준과 기업공개 기준을 맞춰왔다.
김정태 행장은 정보 공개가 생산성 향상과 직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경우 행장을 직접 만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 행장은 가능하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직접 만나려고 노력한다.
미국 뉴욕증시에 올라 있는 주택은행의 경우 정보의 불평등한 공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미국 제도를 따라야 하는 처지다.
김 행장이 국내에서도 특정 애널리스트에게 특별한 정보를 주기보다는 완벽하게 공정한 발표을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정보는 언론과 투자자들에게 동시에 공개된다.
김정태 행장과 똑같이 7.4%(5명)를 득표한 삼성전기 이형도 사장은 해외 대주주들을 아예 분기별로 방문한다.
증권사 담당 애널리스트를 초청해 회사 설명을 하면서, 거꾸로 회사경영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한다.
심지어는 임원진 회의에 외부 애널리스트들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형도 사장은 “IR은 회사의 의견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투자자와 주주들이 투자 주체로서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여 경영에 반영시키기도 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벤처기업 경영자들 가운데서는 휴맥스 변대규 사장과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 각각 응답자 가운데 14.3%(6명)의 추천을 얻어 가장 IR을 잘 하는 경영자로 꼽혔다.
한편 재벌 총수 가운데서는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가장 IR을 잘 하는 경영인’으로 꼽혔다.
이건희 회장은 주가를 계열사 최고경영자 평가의 척도로 삼는다는 점이, 정몽구 회장은 계열분리 뒤 상당히 경영이 투명해졌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조사대상 기업의 한 중간 간부는 “실무진이 아무리 IR에 관심이 많더라도, 고급 경영정보를 모두 틀어쥐고 있는 최고경영진이 움직이지 않으면 사실상 투명한 경영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책임있는 경영진이 직접 나서야만 IR이 진정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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