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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칼럼] 벼랑끝 닷컴 기업 누구의 책임인가?
[DOT칼럼] 벼랑끝 닷컴 기업 누구의 책임인가?
  • 홍수경(프로포즈대표)
  • 승인 2000.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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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닷컴 기업들이 혹독한 시련기를 맞고 있다.
‘닷컴 기업 거품론’이 갈수록 거세기만 하다.
뚜렷한 수익모델없이 몸집 불리기에만 신경써온 닷컴 기업들의 살생부마저 나돌고 있다.
수혈이 없으면 회생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얼마 전까지 촉망받던 회사들도 생사가 불확실하다.
”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테헤란밸리는 언제 열풍이 불었는지 모를 정도로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올 가을엔 닷컴 기업들이 줄초상을 치를 것이라는 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투자자들의 발길도 뜸하다.
” 친구의 사무실 한편을 빌려 인터넷 사업이란 걸 하고 있는 나도 틈만 나면 듣는 얘기들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된 것인지 참 궁금하다.
카이스트 출신의 어린 사장을 누가 찾았나 창업을 기획하고 사이트를 연 지난 3월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해볼까. “나이는 25살 전후, 카이스트를 졸업했거나 학생으로서 창업을 원하는 사람을 구한다.
그런 조건만 갖췄다면 10억원을 투자하겠다.
” 얘기인즉, 나이가 어리고 카이스트 출신이라면 충분히 포장해 ‘벤처업계의 스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준 사람도 카이스트 출신이었다.
투자자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일단 업계에서 이름만 나면 투자자가 몰리고, 속 내용과는 상관없이 회사의 가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바로 그때 베일에 가려진 투자자는 이른바 ‘치고빠지면서’ 수익을 챙기는 시나리오를 짠 것이다.
정말 거짓말같다.
벤처기업 거품론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다투는 것과 다르다.
분명 먼저 시작한 쪽은 정부와 언론과 투자자였다.
IMF 한파가 기승을 부릴 때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벤처기업에 많은 혜택을 약속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벤처기업은 우리 경제의 중심축”이라고 떠들었다.
1조원 규모의 벤처 투자자금 조성, 6대 도시에 벤처타운 조성, M&A 시장의 활성화 등 벤처 육성시책들이 쏟아졌다.
약삭빠른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인터넷 기업을 분칠했다.
코스닥 시장도 호황이란 말이 머쓱할 정도로 열기를 내뿜었다.
인터넷 기업이란 문패만 달면 자금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거품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 등을 돌렸다.
식어버린 옛사랑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배신의 가장 큰 희생양은 벤처열풍에 떠밀려 지난해 봇물터지듯 생겨난 닷컴들이다.
‘코스닥 드림’을 품고 홍보와 몸집 불리기에 돈을 쏟아부은 닷컴들은 주가가 반토막나면서 새로운 자금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올해 창업한 기업과 비교하면 행복한 축에 든다.
한 투자회사 이사는 “대표적인 인터넷 벤처들이 자금 상황이 좋을 때 수익모델을 만드는 대신 무조건 회원수만 늘려나가는 ‘대마불사’ 전략을 썼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실망했다”며 “하지만 기관투자가나 사주들은 이미 챙길 것을 다 챙기고 빠져나갔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자금도 넉넉하지 않고, 회원수도 늘리지 못하고, 챙길 것도 없는 나는 무엇인가. 투자자들은 이제 닷컴이라면 사업계획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터넷 열풍으로 IMF 이전의 시세를 되찾았던 건물주들은 벤처기업이라면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
‘인터넷만이 살 길’이라고 부추기던 언론들은 어떤가. 아직도 묵묵히 벤처의 꿈을 키우며 고생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무시하고, 철새처럼 자리를 옮겨다니는 일부 사람들을 대세인 양 조명하면서 “결국 굴뚝산업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투자자들의 귀를 막는다.
테헤란로 아스팔트는 숨가쁜 열기를 토해내고 있지만, 벤처기업 사무실엔 서늘한 냉기가 음산하게 덮여 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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