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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컴퓨터에서 한글을 쓰자니 고생이군
[IT타임머신] 컴퓨터에서 한글을 쓰자니 고생이군
  • 유춘희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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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컴퓨터가 한국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게 된 데는 ‘한글 카드’의 공이 그 무엇보다 컸다.
좋은 영문 소프트웨어가 많이 있다고 해도, 그 소프트웨어 위에서 한글을 구현할 방법이 없었다면, 컴퓨터가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허큘리스 카드’. 컴퓨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 모노크롬 전용 그래픽카드가 한글 카드의 뿌리다.
82년 미국 허큘리스컴퓨터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이 카드는 풍부한 지원 소프트웨어, 저렴한 가격, 높은 해상도를 무기로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것이 바다 건너 한국에 들어와 한글·한자를 구현하는 ‘캐릭터 롬’(Character ROM)을 달고서 한글 카드의 초기 프로토타입이 됐다.
캐릭터 롬이란 미리 확정된 글자를 저장해두는 창고로, 한글 카드는 이 글자를 텍스트 화면에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첫 한글 카드 제품은 이른바 ‘청계천 카드’라고 불리던 7비트 완성형 카드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판매된 대만산 PC에 주로 장착된 탓에 이름이 그렇게 됐다.
영문 소프트웨어와 호환성을 유지했고, 허큘리스 카드와 합쳐진 형태로 값이 쌌다.
그러다 삼보컴퓨터가 조합형을 지원하는 ‘CHP 한글 카드’를 내놓았고, 이어 삼성전자, 현대전자, 금성사 등 대기업이 국가표준 규격인 행정전산망용 한글 카드를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한글 카드를 생산하던 업체는 20곳이 넘었다.
대우통신(KEGA), 삼보컴퓨터(엘리트보드), 효성컴퓨터(효성한글카드) 등이 자사 브랜드 PC에 카드를 장착해 보급했다.
특히 큐닉스컴퓨터의 ‘옴니 한글 카드’는 2바이트 완성형, 조합형 코드를 모두 지원해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중소기업이 만들어낸 KS 완성형 한글 카드로는 글방컴퓨터의 ‘글방 교행카드’, 삼진컴퓨터의 ‘트리고’, 아라인터내셔널의 ‘옵티마 집현전’, 희망전자의 ‘VG-16’ 등이 있었다.
한글 카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카드를 개발하는 회사가 많지 않고, 가격도 20만원대를 넘었던 때에, 한글 카드를 소프트웨어로 대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한글이라는 n바이트 코드의 ‘CALL 3327’을 비롯해 3바이트의 ‘JJ 한글’과 ‘NKP’, 2바이트의 ‘도깨비한글’이 유명했다.
‘한메한글’ ‘유니V 한글’ ‘효성한글’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것들은 하드웨어에서 직접 폰트 롬에 접속해 한글을 구현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속도가 느렸다.
하드웨어 카드 속도의 15% 수준이었다.
청계천 카드에서 KS 표준코드까지
한글 카드에서 조합형이란 초성·중성·종성을 각각 조합해 원하는 글자의 모양을 표현하는 것이고, 완성형은 캐릭터 롬에 미리 개개의 글자를 완성된 형태로 보관해두었다가 필요한 글자를 불러다 쓰는 방식을 가리킨다.
세운상가 표준코드로 불리던 7비트 완성형 한글 카드는 대부분의 영문 소프트웨어에서 그대로 한글을 사용할 수 있어, 영문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던 당시 인기가 높았다.
가격도 8~11만원대로 저렴했다.
하지만 한글 DOS와 함께 쓸 수 없고, 표현할 수 있는 글자수가 기껏해야 1400자 정도에 불과한 게 단점이었다.
8비트 조합형 한글카드는 모든 한글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영문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는 수정해가면서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게다가 업체마다 서로 다른 코드체계를 갖고 있어 조합형끼리도 호환이 되지 않았다.
결국 8비트 완성형과 표준 싸움에서 패배해 시장에서 사라졌다.
국가행정전산망 표준코드로 지정돼 ‘KS 한글코드’로 불린 8비트 완성형 카드는 표현할 수 있는 글자수가 한글 2350자, 한자는 4888자에다 사용자가 필요하면 더 만들 수도 있었다.
많은 소프트웨어가 행정전산망 표준인 8비트 완성형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던 상황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영문 소프트웨어 위에서 한글을 완벽하게 지원하지 못했고, 고어나 신조어, 일부 외래어는 표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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