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두장의 절 사진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일까. 왼쪽을 짚었다면 당신은 입체영상기술(3D)의 정교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실제 절은 오른쪽이다.
지난 6월 말 일본 도쿄의 토판가상현실연구소 리얼센터에서 도쇼다이지(唐招提寺)를 본 디지털선일 박진호(29) 대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기왓장 하나하나에서 살아있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실제 모습에 세부묘사를 덧붙인 사실감이 돋보였다.
게다가 일본 전통음악으로 사운드 효과를 줘 몰입감도 뛰어났다.
실제 절보다도 더 실제처럼 보인 것이다.
전날 박 대리는 나라에 있는 도쇼다이지를 보고 온 참이었다.
하지만 리얼센터에서 정보입력단말기를 쥔 안내원과 함께 도쇼다이지를 ‘다시’ 돌아보면서, 그는 전날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3D 기술의 힘이 숨어있었다.
“입체영상기술은 도쇼다이지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절보다는 신라의 황룡사나 백제의 미륵사지처럼 사라졌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재현하는 데 더 쓸모가 있습니다.
체험자가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가 문화재를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입체영상 입체영상기술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응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군대의 탱크나 비행기 운전 시뮬레이터, 입체영화관, 3차원게임이나 채팅, 훼손된 문화재 복원, 미술품 전시, 모델하우스, 남극해나 우주탐사 모의실험기, 의료기술 숙련기, 광고물…. 이제 현실은 물론,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것들도 거의 대부분 입체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어떻게 입체가 아닌 것들을 입체로 보이게 하는 걸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눈 속이기’인 것이다.
우리 눈이 3차원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양안 시차, 운동 시차, 원근조절이 그것이다.
(뒷면 박스기사 참조) 입체영상기술은 이것을 역이용해 우리 눈에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가장 먼저 대중화된 것이 안경을 쓰고 보는 방식(streo-scopic)이다.
좌우눈에 보이는 화상을 다르게 함으로써 평면을 입체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색광안경을 예로 들어보자. 안경알 색깔을 오른쪽은 파랑, 왼쪽은 빨강으로 칠하면 같은 그림을 보여줘도 오른쪽 눈은 붉은 계열, 왼쪽 눈은 푸른 계열만 보인다.
이 그림들이 합쳐지면 평면에 그려진 그림은 입체로 보이게 된다.
‘2000경주문화엑스포’ 사이버영상관에서 9월1일 선보일 주제영상 ‘서라벌의 숨결 속으로’가 이 기법을 이용한다.
가상현실 시스템 속에 편광안경을 쓰고 들어가면 황룡사 9층석탑처럼, 지금은 볼 수 없는 1천년 전 신라의 문화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를 제작중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 vdream.kist.re.kr는 음식 냄새, 사람들 이야기 소리, 볼을 스치는 바람 등 다른 오감도 재현할 계획이다.
왼쪽과 오른쪽에 다른 이미지를 교대로 내보내 착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입체안경(LCD셔터고글)은 양쪽 눈을 초당 60회씩 번갈아 가리면서 양쪽 눈에 다른 영상을 비춰준다.
인위적으로 양안 시차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리얼-3D’라고 부르는 기법으로, (주)또다른세상의 웹 사이트 ‘VR매니아’ www.vrmania.com가 이 기술을 닷컴사업화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HMD(Head Mount Displayer)는 아예 렌즈 대신 모니터를 달아 두 눈에 다른 영상을 비춘다.
이 역시 양안 시차를 활용한 방법이다.
모니터나 스크린이 필요없는 이 기법은 가상현실 연구소나 기업들에 보편적으로 보급돼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3차원 영상은 그래픽 기술로 평면에 입체영상을 실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눈의 양안시차, 운동시차, 수정체 원근조절 같은 원리들을 종합적으로 이용한다.
영상디자이너들은 3차원 형태 만들기(모델링), 표면 입히기(매핑), 이미지 만들기(렌더링)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
그래픽기술은 현재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개발돼 있다.
워드프로세서 같은 제작도구(툴)들이 이미 판매되고 있다.
그래픽디자인용으로는 3DS 맥스, 라이트웨이브3D, 마야 등이, 가상현실용으로는 멀티젠이라는 프로그램들이 애용된다.
(이 툴들은 물론 안경식 입체영상을 제작할 때도 두루 쓰인다.
) 꿈의 기술 ‘4차원 영상 재구성’, ‘3차원 정보단말기’ 우리나라의 3차원 그래픽 산업은 그 수준을 꽤 인정받고 있는 편이다.
외국업체들이 주로 납품하던 군사용 시뮬레이터들도 최근엔 국내 기술로 생산할 정도로 영상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입체영상 제작자들의 이마에는 주름이 펴질 날이 없다.
한국에 렌더링이나 모델링 기술같은 원천기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군사용 시뮬레이터 영상물을 납품하고 있는 디지털선일 김장호(37) 대표는 “쓸 만한 툴 하나를 사오는 데 1억5천에서 2억원이 든다”고 말한다.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현재의 30% 정도로 제작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3차원 영상물 제작업체 굿게이트 박성호(30) VR팀장도 “외국 툴들은 한국어 지원이 안된다”며 “필요한 기능이 있어도 지원받기 어렵고, 대부분 영어로 된 프로그램들이라 첨단기술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의 3차원 입체영상 시장도 애니메이션 시장처럼 국제적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최근 꿈의 기술로 불리는 ‘4차원 영상 재구성’과 ‘3차원 정보단말기’의 원천기술 개발에 속속 뛰어들어 제법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료영상공학연구센터 issomicron.kaist.ac.kr/MIRC/는 지난달 3차원 영상 재구성 소프트웨어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KAIST 전자전산학과 나종범 교수팀이 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미국 조지타운의대와 서울의대, 충남의대 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척추암 생체조직검사 숙련기에 탑재됐다.
이 모의실험기는 의사가 척추암 환자 진단용 척추 침 생체검사 기술을 PC에서 쉽게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 3차원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다.
특히 환자의 CT 영상을 이용해 실제감 있는 3차원 영상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사가 실험용 마네킹 안으로 바늘을 찔러넣을 때 컴퓨터가 저항력을 만들어 실제 몸에 바늘을 삽입하는 것처럼 힘을 느끼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론 미국, 독일 같은 선발주자에 비견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나 교수는 한국도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적절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경쟁력이 생길 만한 분야”라고 말한다.
나 교수팀은 이제 후속연구에 들어갔다.
다음 과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장기의 움직임을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다.
이른바 4차원 모델링 기술이다.
KAIST 외에도 서울대, 이화여대, 한양대의 의료영상팀들이 미국 조지아공대 폴 벤케서 교수팀, 영국 UCL 사이먼 애리지 교수팀 등 선발주자들을 바짝 추격하며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
10년 뒤 4차원은 일상이 된다 총 500억원이 투입되는 ‘매머드’급 원천기술 연구도 진행중이다.
‘실감형 3차원 정보단말기’ 장치가 그것이다.
이 단말기는 입체영상 뿐 아니라 냄새와 촉감도 전달하는 멀티미디어 장치다.
이 장치가 개발되면 백두산 천지연에 가서 손을 담그지 않아도 푸른 수면과 저릿하게 시린 물결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잉카 유적을 이끼 냄새 속에 체험할 수도 있다.
사람의 체험은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히 확장된다.
그야말로 4차원적 체험이다.
영화 같은 이 프로젝트 www.3dimage.re.kr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주관으로 총 19개 기관이 참여해 2009년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10년 뒤, 혹은 15년 뒤 우리는 4차원 속을 일상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보다 실제 같은 입체환경이 시공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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