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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익모델보다 더 급한 도덕성
[미국] 수익모델보다 더 급한 도덕성
  • 이철민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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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쿱 경영진 감사보고서 공개 전에 보유주식 매각…성난 투자자들 법정소송
닷컴기업의 경영진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가 이상적인 것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닷컴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은 등한시한 채, 코스닥 등록을 통해 돈을 끌어들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스닥 등록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일부 닷컴 경영진들의 모습을 비꼬는 광고가 주목을 받았을 정도다.
더구나 요즘처럼 닷컴기업들의 장기적인 비전이 의심받고 있는 시기엔, 그 경영진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특히 이른바 업종 대표주라고 불리는 닷컴들의 경영진은 기자들을 거느리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를 만들어낼 정도로 주목를 받고 있다.
야후!의 제리양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이베이의 멕 휘트먼이 대표적인 경우다.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주가가 폭등하거나 폭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입조심, 몸조심이다.
그러면서 버릇처럼 하는 말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 주식 매각해 80달러 이상 챙겨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대표적인 인터넷 건강·의료 정보 서비스인 ‘닥터쿱’ www.drkoop.com의 경영진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주목을 끌고 있다.
닥터쿱은 전직 외과의사인 에버트 쿱이 건강과 의료에 관련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해, 이제는 가장 대표적인 건강·의료 전문 사이트로 성장했다.
성공적인 커뮤니티 구축과 전자상거래 도입으로 수익성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 때문에, 회사의 주가가 한때 40달러선을 유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지난 2월15일 닷컴기업들의 위기론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을 때쯤, 닥터쿱을 담당한 회계회사는 아주 부정적인 감사보고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장기적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갈 만한 수익원이 없고, 보유한 현금도 곧 바닥날 것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한 이 보고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3월 말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 기간 동안 회사의 주요 경영진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다량으로 내다팔았다는 사실이다.
3월30일 보고서가 공개되자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겨우 1달러에서 2달러 사이를 오가는 잠정적인 파산에 이른 상태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주주들은 격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2월15일과 3월30일 사이에 주식을 구매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부정적인 감사보고서를 숨긴 것과, 이를 이용해 경영진들이 자신들의 주식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창립자인 에버트 쿱이 약 90만달러, 이사회 부의장인 존 자카로가 약 80만달러, 이사인 낸시 신더만이 약 26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닥터쿱의 경영진들은 3월30일 이전엔 자신들도 그 감사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방어선을 쳤다.
이에 더욱 화가 난 주주들을 대표해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법률회사가 집단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종 판결이 나와야 명확히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번 사건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벤처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의 기반이 됐던 기업가 정신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모델 이전에 닷컴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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