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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리눅스, 변방에서 중심으로
[포커스] 리눅스, 변방에서 중심으로
  • 김윤지
  • 승인 2001.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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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하드웨어 업체들 앞다퉈 지원 발표…기업시장 공략 본격화될 듯
최근 리눅스 업계를 흥분시킬 만한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대한항공이 수익관리시스템과 운항관리시스템을 리눅스 기반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웹서버나 메일서버를 리눅스로 구축한 예는 많았지만 대한항공과 같은 대기업이 핵심적인 정보시스템에 리눅스를 도입한 경우는 없었다.
대한항공의 수익관리시스템은 노선 계약, 항공기 연료소비, 인건비 등 모든 경영데이터를 종합관리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리눅스 프로젝트로는 국내 최대이면서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만한 규모다.
리눅스가 드디어 비즈니스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지난 1월 최초의 리눅스 개발자 리누스 토발즈가 ‘리눅스 커널2.4’를 발표하면서 엔터프라이즈 시장, 즉 대형 기업의 핵심업무 시스템 시장을 겨냥하는 리눅스의 발걸음에 부쩍 힘이 실렸다.
커널은 운영체제 중에서도 핵심엔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커널2.4는 이전 버전에 비해 CPU 사용량과 메모리 지원 능력이 훨씬 강화됐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요구하는 고가용성, 고성능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커널 2.4 발표로 성능 비약적 향상 그러나 리눅스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출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단지 리눅스의 성능 향상 때문만은 아니다.
대형 하드웨어 공급업체들의 태도 변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휴렛팩커드(hp), 썬, IBM, 컴팩, 인텔 등은 모두 자기네 서버에 별도의 운영체제를 만들어 설치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확보한 것 이상으로 시장점유율을 넓히는 것이 어려웠다.
시장 확대의 장벽을 스스로 만든 꼴이 된 것이다.
성장의 한계를 느낀 하드웨어 업체들은 뭔가 표준이 될 만한 운영체제를 원했고,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리눅스였다.
오픈소스라는 공개성, 어느 시스템에서도 유연하게 돌아가는 개방성, 특정 업체에 의존하지 않는 중립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리눅스는 그야말로 ‘개방형 표준’으로 적격이었다.
더군다나 커널2.4에서 보여주듯 리눅스 그 자체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업체가 IBM이다.
IBM은 올해 초부터 사운을 걸었다고 할 만큼 총력을 다해 리눅스를 지원하고 있다.
IBM이 리눅스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 컴퓨터인 메인프레임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IBM은 유닉스라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등장했을 때 이를 하찮게 여겼다가 썬에 서버 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메인프레임에서는 아직도 강자 역할을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무엇보다도 웹이 연동되지 않아 서버가 대세인 인터넷 시대에는 고생할 수밖에 없다.
“IBM이 그 동안 PC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 늦었고, 서버에서는 썬보다 늦어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리눅스 시장에서만은 앞서가자는 전략이다.
” 한국IBM 시스템사업본부 이숙방 실장의 설명이다.
오라클과 인텔도 ‘e리눅스클럽’을 결성해 리눅스를 지원한다고 나섰고, 컴팩은 리눅스 전담조직을 만들었다.
hp도 멀티 운영체제 전략을 세워 리눅스에 대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리눅스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출의 때가 왔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리눅스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출에는 리눅스 업계의 의지도 담겨 있다.
처음 리눅스의 공략대상은 PC시장이었다.
‘MS 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개인사용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MS의 벽은 생각보다 두터웠다.
리눅스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들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이미 윈도우 기반의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사용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면 서버쪽은 사정이 달랐다.
서버 운영체제로 널리 쓰이는 유닉스에 비해 리눅스는 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싼데다 응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부담도 PC보다는 덜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보니 규모가 작은 업체에선 리눅스를 선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웹서버나 메일서버같이 아주 고성능을 요구하지 않는 이른바 ‘로엔드 서버’급에선 경쟁력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닷컴의 수요가 어느 순간 정체되면서 새로운 시장에 대한 요구가 발생했다.
리눅스 업계는 고성능 시장, 이른바 ‘하이엔드 서버’나 메인프레임을 주목했다.
마침 커널2.4가 이런 고성능 서버를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리눅스 업체들은 엔터프라이즈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한항공 시스템 구축이 시험대 여러가지 조건들이 무르익었지만 리눅스가 엔터프라이즈 시장으로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리눅스에 대한 인식이 문제다.
“운영체제는 기호품과 같다.
시스템 엔지니어들이 보수적이라 자기들이 쓰던 운영체제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 리눅스원 김종숙 부사장은 성능보다는 습관 때문에 리눅스 채택을 망설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리눅스가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지 못하고 신규 프로젝트에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이유다.
성능에 대한 우려도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칼데라시스템즈 박준규 부장은 “아무리 리눅스가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 성능, 안정성, 보안성, 관리성 등에서 유닉스와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차피 기술적 차이가 있다면 유닉스와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차 리눅스 사용을 늘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
시장 확대를 위해선 제대로 된 레퍼런스 사이트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에선 특히 동종업계의 선례가 있는지 여부를 보고 시스템 도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대한항공의 결과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싸구려 이미지를 벗는 것도 리눅스의 과제다.
“엔터프라이즈쪽으로 갈수록 가격보다는 안정성이나 성능을 중요시한다.
싸구려는 성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성능으로 승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리눅스코리아 박혁진 사장은 리눅스 업체들이 좀더 비즈니스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때가 무르익은 만큼 리눅스 업계는 ‘야인’에서 ‘전문가’로 변모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PC시장 공략을 위한 과제
리눅스가 PC시장에서도 정착할 만한 곳은 미국, 일본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라이선스에 대한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중국이 리눅스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말만 믿고 중국으로 진출하려 했던 리눅스 업체들이 모두 고배를 마시고 돌아와야 했던 것도 이런 요인이 크다.
라이선스 개념이 희박한 중국인들에게는 MS의 윈도우NT도 공짜나 다름없다.
리눅스가 공개 운영체제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라이선스에 대한 문제가 대두할수록 리눅스의 발전에는 도움이 된다.
최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영향으로 리눅스 업체를 찾는 기업의 발길이 늘어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개인들이 리눅스 기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은 늘 지적되는 문제다.
특히 개인사용자들에겐 워드프로세서, 표계산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등의 오피스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은 ‘스타오피스’, ‘애플릭스웨어’ 등 리눅스용 오피스 프로그램들이 많아 시장확대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이런 프로그램들이 한글이 지원되지 않아 무용지물과 같다.
마침 스타오피스의 한글화 작업을 진행해온 미지리서치가 테스트 버전을 내놓았다.
리눅스는 물론 솔라리스, 윈도우 같은 운영체제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고 기존 MS오피스 문서들과 대부분 호환된다.
지난해 8월 한글로 한컴오피스를 개발했던 한컴리눅스도 올 6월쯤 MS 제품과 호환할 수 있는 2.0버전을 출시한다.
리눅스의 PC시장 공략을 위해 리눅스 업계가 경쟁상대인 MS를 껴안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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