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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회사채 만기 대란을 막아라
[포커스] 회사채 만기 대란을 막아라
  • 정남기 한겨레 경제부기자
  • 승인 2001.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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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24조5천억원 도래… 신용도 따라 자금조달 양극화 전망
8월 이후 회사채 수십조원의 만기 도래를 앞두고 채권시장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한화, SK, LG칼텍스 등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수천억원의 신규 자금을 조달하면서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비해 미리 현금을 쌓아두자는 계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 우려하고 있는 하반기 회사채 만기 물량이 8월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화의·법정관리 업체를 제외한 일반 회사들의 공모 회사채 만기 도래 물량은 8월부터 연말까지 모두 24조5천억원이다.
이 가운데 3조4천억원이 8월에, 3조8천억원이 9월에, 그리고 6조원이 10월에 돌아온다.
11, 12월에는 각각 5조7천억원의 물량이 쏟아진다.
6, 7월 만기 물량이 1조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만으로도 시장을 움츠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워크아웃·화의·법정관리 업체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35조원으로 늘어나지만, 이들은 채권 행사가 유예돼 있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이와 함께 현대건설 등 부실기업을 연명시켜온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연말에 종료된다.
사실상 정부의 힘으로 유지해온 금융시장의 안정 기조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7조원 안팎 회사채 발등의 불 8월 이후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가운데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7조원 안팎이다.
우선 투기등급인 BB 등급 이하 회사채 4조8천억원과, 투자적격인 BBB- 등급 회사채 1조6천억원이 당장 처리하기 어려운 물량이다.
BBB0 등급까지는 회사채 차환 발행이 무리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BBB- 이하는 자체 신용에 의한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이미 발행된 채권도 금융시장 불안으로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경향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만큼 환금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채권들이다.
여기에 BBB0 등급인 현대상선과 현대종합상사의 회사채 8300억원이 문제가 된다.
등급 상으로는 차환 발행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현대 계열사로 얽혀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결국 차환 발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채는 7조2천억원 수준으로 집계된다.
그렇다면 과연 시장은 이들을 소화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이들이 정상적인 차환발행은 안 된다고 가정하고 신속인수제나 신용보증기금 보증에 의한 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프라이머리 CBO)을 통한 수급 전망을 분석해보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프라이머리 CBO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보증을 위한 신용보증기금의 기본재산이 7천억원인 데 비해, 지금까지 보증한 액수는 3조6천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보증 한도를 10배로만 운용한다 해도 3조4천억원의 보증여력이 있고, 정부 방침대로 15배로 운용한다면 7조원의 여력이 있는 것이다.
다만 신보가 7조원 어치를 보증한다 해도 여기에 편입될 수 있는 투기등급 회사채는 3조~5조원에 불과해 필요한 액수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나머지 물량 소화를 위해서는 신속인수제나 비과세 고수익펀드 등 다른 해법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총액의 규모가 아니다.
신보의 보증 한도에 여유가 있다 할지라도 프라이머리 CBO 발행을 위한 회사채들의 조합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머리 CBO는 투기등급 회사채와 A급 및 BBB급 회사채를 적절하게 섞고, 여기에 신보가 50~70%를 보증한 뒤 이를 기초자산으로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불량채권을 우량채권으로 탈바꿈시켜 시장에서 유통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CBO 발행을 원하는 투기등급 채권이 아무리 많아도 다른 투자적격 회사채가 함께 편입되지 않으면 발행이 어려워진다.
또 신보가 내부적으로 운용하는 그룹별, 기업별 보증한도에 걸려 발행이 좌절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투자적격 등급의 회사들이 하반기 자금시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자체 신용에 의한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로 시중금리가 초저금리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연말 금융시장의 불안이 예견되는 상황이어서 서둘러 현금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7월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7월16~21일에만 SK 1100억원을 비롯해 LG칼텍스(1000억원)·KTF(530억원) 등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신규로 조달했다.
현대자동차는 달러표시 해외채권 발행을 통해 1425억원의 자금을 새로 확보했다.
지난주에도 이런 현금 확보전은 계속됐다.
7월23일 한화(1300억원)를 시작으로 현대미포조선(600억원)·동부한농(400억원)·동부건설(100억원) 등이 잇따라 회사채 발행으로 신규 자금을 확보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는 자체 신용으로 추가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신용등급이 낮아 프라이머리 CBO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회사는 그동안 자금줄이었던 CBO 발행마저 막히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대우증권의 김범중 연구위원은 “신용도가 높은 회사는 계속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회사는 CBO 발행을 위한 짝짓기 대상을 찾지 못해 자금을 못 구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향후 경기전망에 대한 불투명성이 한국 경제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침체의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올해 3분기와 4분기 기업들의 실적이 극도로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3분기의 제조업 생산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은행이 7월초 콜금리 인하를 단행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도 바로 기업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였다.
한국은행의 강형문 부총재보는 “대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 들어 하나씩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최근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통한 12억5천만달러의 자금조달에 성공했음에도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자금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연말이 다가오기 전에 다시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하이닉스는 결국 자구노력 등을 통해 1조5천억원의 추가자금 조달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제조업체 수익성 악화로 불안 가중 삼성전자 역시 우려하던 수익성 악화가 현실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1분기 1조6천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2분기에 6천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75%가 격감한 것이다.
세후 순이익 역시 1조2400억원에서 8800억원으로 줄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를 전체 제조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은 완료되지 않았고 경기는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와중에서 대규모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한국이 단기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없지만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기업들의 부채 규모가 전혀 줄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회사채 만기 집중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실제로 신속인수제와 신보 보증을 통한 프라이머리 CBO 발행 등을 통한 투기등급 회사채 소화가 당장 장벽에 부닥친 것은 아니다.
어려움은 있지만 금융시장의 안정세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지금 시점이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한가운데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8월 이후 연말까지 회사채 만기가 집중되는 동안 국내 경기는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금융 전문가들은 시장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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