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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유전자 발견 기술
[테크놀로지] 유전자 발견 기술
  • 허원 강원대 교수
  • 승인 2001.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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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도 스위치가 있다?
세포별로 활동 유전자 달라… 질병과의 관계 밝히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한창

발명이 새로운 생각을 통해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인 반면, 발견은 이미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발명과 발견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의 발견은 불씨를 만들어내고 보관하는 방법을 발명하게 한 근원이었고, 불을 다루는 방법이 발명된 뒤 철을 발견하게 됐고 철기를 다룰 수 있는 발명도 이어지면서 현재의 문명이 이뤄지게 됐다.

원자나 분자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이 발견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플라스틱 같은 새로운 화학물질을 발명하게 한 기반이 됐고,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했으며, 질병으로부터 약간의 해방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세포의 발견은 세포를 배양하거나 죽이는 방법을 발명하게 하는 기초를 제공했고, 발효산업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류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중요한 발견들을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게놈지도 발견은 시작에 불과 인류 문명의 발전에 또하나의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 중 하나가 ‘유전자’의 발견이다.
19세기 말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전자는 1953년 왓슨과 크릭의 노력으로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졌고, 계속해서 유전자를 다루는 여러 종류의 기술이 발명되기 시작했다.
이런 발전으로 2000년의 시작과 함께 인간의 전체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기도 했다.
유전자의 발견은 유전이라는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유전자를 활용한 여러가지 발명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발견한 이후 전문가들은 이것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발견이나 발명을 가능하게 할지는 예측 불가능하며, 그 산업적인 영향력 역시 무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마당에 무슨 유전자를 또 발견한다는 얘긴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제 비로소 우리는 출발점에 와 있다.
인간 유전자는 약 3만개의 단위 유전자로 구성돼 있는데, 현재 완성된 유전자 지도에는 이런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겨우 밝혀졌을 뿐이다.
생명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떻게 필요한지도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신체의 모든 세포가 3만개 유전자 모두를 가지고 있어도, 이들 유전자 모두가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역할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일부 유전자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유전자가 활동한다는 것은 유전정보가 해독되어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세포의 대사작용에 참여해 궁극적으로는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여러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사람의 세포는 3만개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체 각각의 부위에 있는 세포들은 각각 켜진 스위치와 꺼진 스위치들로 존재해, 어떤 세포는 피부 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장기 세포가 된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발생란으로부터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기까지 ‘유전자 스위치’ 3만개가 적절한 시간에 켜지고 꺼지면서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를 형성한 것이다.
세포의 변화를 조절하는 유전자 스위치의 기능은 극히 일부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 유전자 스위치를 하나하나 켜고 끄면서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면 좋겠지만, 유전자 스위치를 인위적으로 켜고 끄는 일이 전등을 켜고 끄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개수가 무려 3만개나 되니,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어쨌든 어떤 유전자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암과 같은 질병의 경우에도 꺼져 있어야 할 유전자 스위치가 켜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유전자 스위치가 켜져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으면 암을 진단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근거도 찾아낼 수 있다.
유전자 스위치가 켜져 있는 정도도 중요한 변수다.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유전자 스위치는 대부분 완전히 켜져 있어, 쉽게 그 유전자의 역할이나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을 유발하거나 세포의 분화와 관련된 유전자 스위치는 약간만 켜져 있거나 대부분 꺼진 상태로 있다가 가끔씩 켜지는 경우가 많아 알아내기가 더욱 어렵다.
스위치 상태 판별 칩 일부 개발 분자 수준에서 종래의 방법으로 하나의 유전자 기능을 알아내는 연구는 수십년 전부터 진행돼왔다.
이런 방법은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유전자 기능을 밝히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또 각각의 유전자 스위치는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버튼식 자물쇠를 열려면 정확한 번호의 조합을 알아야 하듯이 여러 유전자 스위치가 동시에 정확한 조합으로 작동해야 세포의 특정한 기능이 발현된다.
결국 종래의 방법으로 유전자 스위치의 기능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병원에서 얻어진 환자의 조직 샘플을 세포 종류별로 분류하고 각 종류의 세포에 대해 유전자 스위치의 온·오프 여부를 유전자 칩이나 혹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 알아낸다.
그것을 바탕으로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이런 방식을 ‘유전자 발견 기술’ 또는 ‘유전자 발견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마치 저인망으로 바다 밑을 훑어내듯이 유전자와 질환과의 관계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발견해낸다는 것이다.
유전자 스위치의 상태를 판별하는 데 사용되는 유전자 칩은 미국의 유전자 발견 전문 바이오 기업인 인사이트지노믹스(Incyte Genomics)에서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약 9천여개의 일반적인 유전자 스위치들의 상태를 판별할 수 있는 유전자 칩을 판매하고 있다.
또다른 기업인 하이섹(Hyseq)은 약하게 켜져 있는 유전자 스위치만 골라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밖에 병원에서 얻을 수 있는 임상 자료와 조직 샘플을 수집해 암 세포와 정상 세포의 유전자 스위치를 비교함으로써 어떤 유전자 스위치가 암의 발생이나 전이에 관련됐는지 추정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바이오 기업도 있다.
미국 기업 파마진(Pharmagene)은 72개의 사람 조직 샘플에서 600여개의 유전자 스위치 상태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암은 종류도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유전적으로 조금씩 다르므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져야 그것을 암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이미 특정한 암 세포에서만 켜지는 유전자 스위치들이 많이 발견돼, 이런 유전자들로 구성된 암 진단용 유전자 칩이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심장질환 같은 성인병에도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유전자 차원의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면, 이런 질병들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유전인자가 조금씩 다르므로 데이터베이스 규모가 상당히 커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만이 아니다.
사람 코 속의 후각세포와 다른 세포의 유전자 스위치를 비교해 후각 세포에서만 켜져 있는 유전자 스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이런 유전자들은 바로 냄새를 맡는 데 필요한 유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들을 골라내면 인공적인 후각장치를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다.
이처럼 유전자의 발견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마치 신대륙 발견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재화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미국, 개별 유전자 특허 인정
현재의 생물학은 그야말로 ‘발견의 과학’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저인망식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유전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대규모 연구집단이 필요하다.
미국은 인간 유전자 자체에 대한 특허는 인정하지 않지만, 실용성이 상세하게 기술된 개별 유전자에 대해서는 특허를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유전자 발견을 위해 펼쳐지고 있는 노력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열의와 같다.
이미 2000년 말에 미국 특허청은 1천여개의 인간 유전자 특허를 포함한 6천건의 유전자 특허를 인정했다.
그 가운데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이 유전자 특허를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고, 유전자 발견 전문 바이오 기업인 인사이트제노믹스가 민간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인간 유전자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신대륙의 발견으로 역사가 시작된 미국은 1960년대 우주 개발에 이어, 이제는 유전자라는 신대륙을 과학의 힘으로 점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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