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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인텔의 승부수 '펜티엄4'
[포커스] 인텔의 승부수 '펜티엄4'
  • 최욱(와이즈인포넷 연구원)
  • 승인 2000.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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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난·리콜 등 잇단 악재 펜티엄4로 돌파 전략…실패 땐 치명타 예상
세계 최대 반도체칩 제조업체인 인텔에게 올 한해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제품출시 연기, 생산설비 부족에 따른 공급난, 끊임없는 불량품 회수, 경쟁업체인 AMD의 약진, 램버스와 관계 악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주가폭락 등 악재란 악재는 다 터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출시한 ‘펜티엄4’마저 수백만대가 리콜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24년간 세계 1위의 반도체칩 업체로 기세등등하던 인텔이 사면초가에 몰린 것이다.


수요예측 실패·지나친 AMD 의식이 화근 인텔의 악몽은 생산설비 부족에서부터 시작했다.
99년 인텔의 CEO 크레이그 배럿은 올해 PC시장 성장률이 10%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비용을 50억달러에서 34억달러로 삭감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올해 PC시장 성장률은 18%를 기록했고, 인텔은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만성적 공급부족에 시달리면서 8억달러 이상의 매출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인텔이 공급부족에 직면한 틈을 타 경쟁업체 AMD가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14%에서 올해 18%로 확대하는 개가를 올렸다.
반도체칩 속도를 놓고 인텔과 신경전을 벌였던 AMD가 인텔의 시장까지 잠식했으니 인텔로서는 분하고 원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AMD와 벌인 속도전은 인텔이 불량품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인텔은 지난 8월 AMD의 1GHz 애슬론칩에 대항해 1.13GHz의 펜티엄Ⅲ을 내놓았다.
그러나 속도에만 매달려 급조한 이 제품은 결국 결함이 발견돼 회수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AMD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결과였다.
램버스와 악연으로 성장 발목 잡혀 인텔의 제품 출시도 번번이 때를 놓쳤다.
인텔의 제품출시 지연은 램버스와 관계가 있다.
인텔이 지난 96년 램버스와 손을 잡았을 때만 해도 이들의 궁합은 누가 봐도 찰떡이었다.
96년 당시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고 있었으나, 이를 받쳐줄 메모리칩이 없었다.
메모리칩이 따라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라 하더라도 PC 성능을 향상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칩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램버스의 등장은 인텔에게는 백기사와도 같았다.
이때부터 인텔과 램버스는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인텔은 램버스의 메모리칩을 얻고, 램버스는 인텔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엄청난 로열티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둘 사이에 제휴가 성사됐을 때 분석가들은 램버스칩이 메모리 시장의 50%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전망을 배반했다.
인텔이 램버스와 제휴한 직후부터 메모리칩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칩 가격이 하락하자 메모리칩 제조업체들은 램버스에 로열티를 지불하기를 꺼려했고, 설상가상으로 램버스칩은 만들기 까다롭고 비용도 비쌌다.
그럼에도 인텔은 98년 메모리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삼성전자에 각각 5억달러와 1억달러를 투자해 램버스칩 사용을 장려했다.
지난해에는 램버스칩과 기존 메모리칩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전환장치를 부착한 제품을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리콜되면서 인텔에 2억5천만달러라는 손실을 안겨줬다.
램버스와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램버스칩을 사용한 마더보드가 출시된 지 몇주도 지나지 않아 결함이 드러나는 바람에 100만개나 회수되자 결국 배럿도 손을 들고 말았다.
배럿은 최근 “램버스 도박은 실패로 끝났으며 메모리칩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른 업체에 의존한 것 자체가 크나큰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램버스와 밀월을 이제는 끝낼 뜻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두 회사의 악연은 쉽게 끝나기 어려울 듯하다.
펜티엄4에서 램버스 메모리를 지원하기로 계약이 돼 있기 때문이다.
램버스칩이 고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PC 가격이 상승할 것은 뻔하다.
최근 가뜩이나 얼어붙은 PC시장이 이를 반길 리 없다.
인텔은 PC 제조회사에 리베이트를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으나, 시장은 이미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12월5일 현재 최고가보다 45%나 떨어진 2750억달러에 머물고 있다.
펜티엄4 저변 확대까진 시간 필요 펜티엄4는 인텔에게는 승부수나 다름없다.
인텔이 지난달 선보인 펜티엄4는 1.4GHz와 1.5GHz 두 모델로, 1.2GHz인 AMD의 애슬론칩을 속도에서 능가한다.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는 AMD를 우선 속도로 제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인텔은 2001년 말까지 다양한 가격과 성능을 가진 펜티엄4를 출시할 예정이며, 2001년 3분기에는 2GHz짜리 제품도 선보일 계획이다.
인텔은 고가의 데스크톱 PC 및 워크스테이션용인 펜티엄4가 앞으로 펜티엄Ⅲ 및 셀러론칩을 대체하면서 소비자 시장에도 급속도로 파고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도 잠시, 펜티엄4는 출시하자마자 칩 일부의 소프트웨어 코드에 오류가 있음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오류는 신제품 출시 때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인텔이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해 숱한 리콜을 경험한 인텔로서는 쉽게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미국 가전제품 소매업체인 베스트바이는 펜티엄4가 탑재된 휴렛팩커드(hp)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시켰다.
펜티엄4를 장착한 일부 컴퓨터들이 지나치게 열을 내거나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 관계자는 “펜티엄4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오류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펜티엄4에 일단은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펜티엄4가 실패할 경우 인텔이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펜티엄4는 95년 출시된 펜티엄 프로 칩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새로운 아키텍처의 프로세서여서 97년 펜티엄Ⅱ가 겪은 제품군 이행기를 또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칩셋과 마더보드를 펜티엄4에 맞춰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펜티엄4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등 내부정비도 병행할 계획 게다가 펜티엄4는 크기가 기존 펜티엄 제품보다 크기 때문에 이전 생산설비로는 생산량의 4분의 1도 채 수용하지 못한다.
생산설비를 확대하더라도 생산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올해처럼 시장확대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기업용 컴퓨터가 펜티엄4와 같은 고성능 칩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펜티엄4는 3차원 입체 그래픽이나 비디오·오디오 스트리밍을 다루는 고성능 칩인데, 일반 기업 사용자들에게 이러한 기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석가들은 대체로 주변기기들이 따라주기 전까지는 펜티엄4가 PC시장의 주력제품으로 부상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인텔의 펜티엄4에 대한 믿음은 흔들림이 없다.
인터넷 시대에는 비디오·오디오 스트리밍, 데이터 전송 같은 멀티미디어 기능이 대폭 강화될 것이고, 펜티엄4는 이같은 기능을 맡게 될 첨병이라는 것이다.
인텔은 펜티엄4를 전방에 배치하고 후방에서는 내부를 정비할 계획이다.
생산설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6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램버스와도 관계를 청산할 방침이다.
경영진 보너스 동결 및 의사결정과정 단축 등 경영진 단속에도 나섰다.
인텔이 펜티엄4를 앞세워 이같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도 여전히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동안 쌓아올린 인텔 신화는 전설로 남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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