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6-25 10:45 (토)
[거시경제] 경제 암울, 이번엔 ‘내환위기’
[거시경제] 경제 암울, 이번엔 ‘내환위기’
  • 박종생
  • 승인 2000.1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조조정 성패·금융불안 해소 여부가 관건…정부, 일관된 경제개혁 추진 필요
내년 한국 경제에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만 해도 실질 GDP 성장률이 11.1%에 이르렀던 국내 경제는 하반기 들어 경제불안감이 확산되며 7%대로 추락했다.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닷21>이 국내 주요 연구기관 간부와 증권사 투자전략가 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이들은 실질 GDP 성장률이 내년 상반기에 4.9%로 급강하하며, 하반기에는 5.8%로 소폭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전체적으로는 5.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99년 이후 2년간 지속된 고성장 기조를 마감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5%대의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이어서 자연스런 경기순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구조조정 실패 가능성 높다 그러나 이 정도의성장률도 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되고, 이에 따라 금융불안이 해소된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경제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경우와 그렇지 못할 경우 두가지로 나눠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수정한 경기전망 보고서에서 “금융불안이 내년 상반기에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 이하 수준인 4% 이하로 경착륙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성패 여부가 내년 국내 경제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진정한 구조조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조조정이란 올 하반기 불거진 재벌기업 문제 처리와 금융 구조조정을 가리킨다.
정부가 일관된 원칙을 갖고 경제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힘들고, 금융불안도 해소할 수 없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으로 구조조정의 실패 또는 지연(58.3%)을 꼽았다.
이어 금융불안(20.8%), 고유가 등 대외환경 악화(16.7%), 외국인 투자자 이탈(4.2%) 등을 지적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성공할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실패할 것으로 보느냐”는 직접적 질문에는 응답자의 50%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했다.
내년 우리 경제가 암울한 터널에 갇힐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29.2%였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는 잘못된 구조조정 방향과 거기에 따른 극심한 사회적 비용, 정치적 리더십 부재 등을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이유로 꼽았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정부 및 정치권의 구조조정 의지 부족에 책임을 돌렸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도 구조조정 자금과 부실기업 퇴출의지 부족을 지적했다.
산업연구원 김원규 동향분석실장은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정리되어야 하는데 공적자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도 실패 가능성에 손을 들었다.
반면 금융연구원 정한영 박사는 “경기하강 국면과 맞물려 구조조정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상무는 “구조조정의 성패는 경제주체들의 심리와 시장의 신뢰에 달려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나타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준일 박사도 “저축과 재정건전성 등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거시경제 여건을 갖추었으나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와 위기관리 능력이 관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내년 우리 경제를 좌우할 또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금융불안의 해소 여부다.
금융시장은 올해 하반기 들어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유가 급등, 반도체 가격 하락 등 대내외 악재가 돌출하면서 크게 흔들렸다.
증시가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자금시장의 양극화 현상도 심화했다.
이에 따라 몇몇 우량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처지에 빠졌다.
금융위기 가능성 상존 이 때문에 몇몇 전문가들은 한국에 경제위기가 다시 온다면 지난번처럼 외환위기가 아니라 금융위기에서 비롯할 것으로 점친다.
금융 쪽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서강대 김병주 교수는 이런 견해를 표명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김 교수는 최근 은행 구조조정과 관련해 국내 주요 은행의 경영실태를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기업이나 은행은 물론이고 노동시장, 정부, 정치권 등 우리 사회의 전 분야가 구조개혁 대상”이라며 “2001년 말이나 2002년에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 경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70년대부터 수출 중심으로 일궈온 저력이 아직 살아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며 외환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98년 400억달러, 99년 245억달러를 달성했으며, 올해도 112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57억달러 정도의 흑자를 예상했다.
이런 경상수지 흑자는 최근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환율을 어느 정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의 호조 여부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가 세계 경제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는 올 10월 이후 경착륙 우려를 낳고 있다.
그 여파로 나스닥 주가도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소비가 증시 폭락과 함께 위축돼 급속한 경기둔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금융의 마술사’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의장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98년에도 기습적 금리 인하로 증시를 살렸던 그는 최근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미국 증시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하고 있다.
어찌됐든 내년 세계 경제는 올해보다는 부진하지만 3.7%대의 안정적 성장을 할 것으로 경제연구소들은 예측한다.
위기 강도는 97년보다 낮아 전문가들은 내년에 닥칠 경기둔화 강도를 어느 정도로 보고 있을까. 이번 조사에 참여한 거시경제 및 증시 전문가 25명은 다행히 97년 외환위기 때보다는 그 강도가 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87.5%가 “97년 외환위기만큼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9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단기외채 비중 감소 등을 근거로 들었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는 “기업 도산과 실업의 증가 등 97년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빚어질 것이지만 97년과는 회복의 속도나 처방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위기라기보다는 장기침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위기에 대한 처방은 역시 구조조정이었다.
대부분 정부가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것만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다.
한국 경제의 성패는 구조조정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