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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강원도 정보화마을-원주시 신림면 황둔, 송계리
[현장탐방] 강원도 정보화마을-원주시 신림면 황둔, 송계리
  • 김윤지
  • 승인 2000.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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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일렁이는 인터넷 물결
영동고속도로 남원주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길을 바꿔타고 30여분 달리면 치악산을 바라보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이다.
치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신림면만 해도 알아주는 산골인데 황둔마을은 여기서도 20여분을 더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옛날 졸지에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넘었다는 고개를 넘으면 높은 산자락들이 모여 만들어낸 산간분지가 나온다.
특징이래야 짙게 깔리는 새벽안개를 겨우 꼽을 수 있을 만큼 한적한 산골 황둔마을은 그곳에 있었다.
400여 가구가 대부분 벼농사와 무, 배추 같은 고랭지채소 재배를 한다.
신문을 읽으려면 오후 2시쯤 마을을 찾아오는 우편배달부를 기다려야 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모두 합쳐봐야 60여명이 고작, 정부의 작은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폐교를 걱정해야 할 만큼 작은 마을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 산골 마을이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마을로 바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날 정보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황둔과 송계의 삶은 여느 시골과는 완전히 딴판이 됐다.

전자우편에서 농산물 시세 확인까지 안방에서 ‘척척’ 강원도는 올초 황둔과 송계를 전국 최초의 정보화시범마을로 지정했다.
도시보다 정보화가 취약한 농촌지역에 종합적으로 정보기술을 도입해 두메산골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는 것이 사업 목적이었다.
우선 100가구를 선정해 초고속 통신망을 연결하고 PC를 나눠줬다.
멀리 떨어져 있어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할 수 없는 66가구엔 TV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 셋톱박스를 설치했다.
PC화상전화장비도 보급해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마을정보포털시스템을 구축해 마을 정보를 하나로 묶고 주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일흔 할머니까지 만학 열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활용능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도 병행했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마을 정보센터에서 윈도우 기초, 워드프로세서 사용법, 인터넷 사용법과 같은 주민 정보화 교육을 마쳤다.
취재를 위해 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인터넷TV 사용방법을 위한 교육이 한창이었다.
“처음엔 주민들이 많이 힘들어 했어요. 인터넷을 하는데 영어를 많이 써야 하잖아요. www를 잘 몰라서 한글 자판으로 ㅈㅈㅈ을 치라고 해야 했죠.” 교육을 맡고 있는 삼보컴퓨터 여운규 강사는 주민들이 컴퓨터와 친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얼마나 열기가 뜨거운데요. 100% 출석률을 보이시던 일흔 넘은 할머니 한분은 요즘 서울에 있는 손자, 손녀들한테 이메일을 보내신다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농촌마을이다 보니 무엇보다 ‘쉽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높았다고 한다.
마을포털정보시스템 설계와 구축은 삼성SDS가 맡고 있는데 12월 말이면 완료된다.
시스템 요구분석단계 때부터 마을에 들어와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SDS 김상현 대리는 “20여일 동안 마을에 상주하면서 요구사항들을 수집했는데 역시 시골이라 농산물가격정보와 자녀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며 “그런데 그 외의 것들을 물어보면 그냥 알아서 쉽게 잘 만들어 달라고만 해서 컨셉을 잡는 게 참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지금도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인터넷을 연결하는 절차들을 ‘인터넷연결 1번’,‘인터넷연결 2번’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그냥 따라가도록 해놓았어요. 링크가 많이 걸리더라도 다른 사이트로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 마을정보포털 tv.kwcv.or.kr에 들어가보면 다른 사이트들보다 유난히 글씨도 큼지막하고, 화면도 간결하게 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찰은 화상으로, 처방전은 원격발급 1년간 차근차근 진행되어온 정보화사업은 주민들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놓고 있다.
송계1리 남한순(53) 이장은 요즘 하루 일과의 시작을 바꾸었다.
4시 반이면 일어나는 것이야 변한 게 없지만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켠다.
“심마니에 들어가면 오늘의 운세가 있거든. 그거 먼저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 오후 늦게야 받아보던 신문도 다 끊어버렸다.
“인터넷으로 새벽이면 신문 다 볼 수 있는데 뭣하러 다 늦게 신문을 받아봐.” 증권 사이트에 들어가 짬짬이 주식시세도 확인한다.
정보를 알아서 얻을 수 있으니까 이젠 누구 탓할 일도 없다고 한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한테 이메일도 보내고, 집사람은 주로 MP3로 음악을 듣는다며 자랑한다.
앞으로 마을 공지사항은 화상전화를 이용해 알려야겠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컴퓨터를 시작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건 지난 쌀 수매 때였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원주새벽시장에 나가 농산물을 판다.
농산물은 원래 가격 등락폭이 큰데도 시세를 모르니 언제나 같은 가격으로 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마을 이장이 인터넷으로 농산물 시세를 알아보고는 그동안 17만원에 팔던 쌀 한가마니를 18만5천원씩 모두 100가마를 팔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더 컴퓨터 교육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농산물 시세 정보제공은 앞으로 농촌 정보화사업에서 가장 핵심이 될 부분이라고 한다.
농가소득을 늘리는 것과 가장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새롭게 마을의 중심이 된 마을정보센터에는 무인민원증명자동발급기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현재 6가지의 민원서류를 자동으로 발급받을 수 있고, 2001년이 되면 21가지의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진료소에는 원격영상진료시스템이 들어선다.
보건진료소와 시 보건소를 화상으로 연결한 시스템인데, 간호사만 있는 보건진료소에서 환자는 시 보건소 의사의 화상 진찰을 받고 처방전은 원격으로 발급받는다.
큰 병이 아니면 시에 있는 보건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PC보급·통신망 구축이 시급 산간벽지의 정보화사업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PC보급도 보급이지만 통신망 구축의 어려움이다.
서울에서도 가입자가 얼마 되지 않으면 초고속망이 들어오기 힘든 상황인데 몇 가구 되지 않는 산골에 초고속 통신망을 설치하는 것을 반길 망사업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에서도 황둔1리, 송계1리는 광케이블을 연결해 초고속망을 깔 수 있었지만 황둔2리, 송계2리는 거리가 너무 멀어 하는 수 없이 인터넷TV를 전화선으로 연결해야 했다.
“읍면지역에 초고속망을 깐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수익만 바라봐야 하는 기업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처음에 강원도청에서 협조가 들어왔을 때도 많이 망설일 수밖에 없었어요. 정부의 초고속 사업 재원을 이쪽으로 돌리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농어촌 정보화사업을 하기 힘들 겁니다.
” 한국통신 강원데이터통신국 김항렬 과장은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농어촌 정보화사업의 앞길엔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긴 하지만 적어도 황둔과 송계에서 실험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농어촌 정보화 사업을 앞당기는 게 이 마을 주민들의 역할이었다면 이들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이들의 삶 속에 정보화는 벌써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인터넷TV 교육 시간 내내 입을 헤 벌린 채 골똘히 강의를 듣던 남흥선(64) 할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인터넷 테레비 조작법이 테레비마다 다 다르다네. 가서 우리집 걸루 배운 거 확인해볼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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