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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만 경제위기 ‘시한폭탄’
[대만] 대만 경제위기 ‘시한폭탄’
  • 김정환 통신원
  • 승인 200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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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불안 이은 증시폭락 금융부실 원인…연이은 정책 속수무책 지난 97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에도 굳건하게 버티던 대만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대만 정부는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내놓고 있지만 혼돈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대만 증시의 자취엔 지수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5000선을 무너뜨리고 끝간 데 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달러당 31대만달러에서 줄곧 안정세를 보이던 환율도 33대만달러로 뛰어올랐다.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좀체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만 경제위기의 발단은 지난 10월28일치 <이코노미스트> 기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사에서 아시아 각국의 정부 관리들에게 대만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어 11월 초 대만의 정보통신 산업을 총괄하는 자책회(資策會)는 대만의 하드웨어 생산규모가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4위로 밀려났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는 대만의 주력 수출품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코노미스트>는 11월11일치에서 다시 설(음력)을 전후해 대만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설마하던 투자자들의 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모든 금융지수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정부, 땜질식 대처로 위기 자초 <이코노미스트>는 대만 금융위기 가능성의 근거로 네가지를 꼽았다.
대만 신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불안, 대만 주식시장 폭락, 은행의 막대한 부실채권, 부실 금융기관 합병으로 허약해진 대만의 금융기관 등이 시한폭탄처럼 폭발점을 향해 째깍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전문가들은 이런 지적을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선 정치적 불안과 관련해 대만 독립과 환경보호, 반핵을 주장하는 민진당 정권의 출발은 처음부터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새 정권은 실제로 중국과 매끄럽지 않은 관계를 보여왔다.
내부적으로는 천수비옌 총통이 핵발전소 건설을 갑자기 취소하면서 야당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야당은 탄핵안 제출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 총통은 최근 여성보좌관과 스캔들 의혹이 폭로돼 도덕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대만판 ‘르윈스키 스캔들’이 새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대만 주식시장도 반토막났다.
천 총통 취임 당시에 비해 자그마치 4000포인트나 떨어져 5000선에도 못 미치고 있다.
주식투자를 국민운동이라고 부르는 대만에서 주식시장 침체는 곧바로 개인재산 감소로 이어진다.
기업의 자금흐름도 얼어붙은 하수구처럼 꽉 막혀버린다.
물론 대만은 1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무역흑자로 외환성 금융위기에는 어느 정도 방어능력을 갖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주식시장 폭락과 이로 인한 자금경색은 기업들의 숨통을 바짝 죄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은행대출금을 갚느라 허둥대고 있다.
은행들도 이미 보이지 않게 멍이 든 상태라 여력이 없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98년 국양(國揚), 신거군(新巨群) 등 대그룹이 부도위기에 빠지자 정부가 은행에 대출금 연기를 지시하며 땜질 식으로 대처한 탓이다.
금융기관 부실채권 비율 20% 상회 현재 대만 재정부는 전체 대출금 13조1376억대만달러 가운데 5.36% 정도가 부실채권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농·수협, 신용합작사(신용협동조합)의 부실대출 10% 정도를 더해도 부실채권 규모는 6%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해 62억대만달러의 영업손실을 낸 범아은행은 부실채권이 5.6%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지만 조사결과 10.5%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9월 말 현재 287개 농·수협 가운데 30%에 이르는 곳이 이미 완전 자본잠식 상태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전체 금융기관을 합하면 부실대출 비율이 20%를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그동안 대만 정부는 농·수협이나 신용합작사 등 금융기관에 부실이 발생하면 국영인 합작금고(合作金庫)나 우량 금융기관에 합병 등을 통해 떠넘겼다.
우량 금융기관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부실을 떠안고 체력을 소진해갔다.
3대 은행 중 하나이자 우량 금융기관이었던 장화은행도 정부가 떠넘긴 부실에 짓눌려 몸살을 앓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만 정부는 짐짓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만 재정부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대만 중앙은행 총재도 금리가 안정돼 있고 화폐공급도 여유로워 자금시장 경색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속으로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다.
천 총통은 최근 포모사그룹의 왕용칭(王永慶) 회장 등 대만을 대표하는 기업인 4명을 만나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대륙 투자제한 폭을 넓히는 문제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정부는 이와 함께 은행간 합병을 지원하는 법률안을 입법부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방만한 농협과 수협의 금융업무를 제한하는 법안은 입법부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해 여전히 불씨를 남겨놓고 있다.
대만 정부는 부실채권을 해소하기 위해 자산관리회사(AMC)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의 중화개발, 은행공회와 미국의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솔로몬 브라더스 등이 AMC에 참여할 의사를 비치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하지만 외국인 부동산 취득 제한과 가족 중심의 경영, 상장회사의 사채 사용 등은 여전히 부실채권 해소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IMF 미가입…국제 도움 어려워 아시아의 네마리용 가운데 가장 앞서가던 대만은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산업과 금융구조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이 때문에 그동안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문제들이 속속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만이 의존할 곳은 없다.
대만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회원국이 아니다.
경제 위기에 빠져도 외부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기 어려운 처지다.
대만의 미래는 대만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상처를 도려내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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