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6:14 (목)
[재미] 자랑·칭찬 사이트 ‘팔불출닷컴’
[재미] 자랑·칭찬 사이트 ‘팔불출닷컴’
  • 오철우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난 인간' 여기 다 모였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팔불출들이 죄다 이곳에 모인 모양이다.
‘닭살도 받아주는 팔불출닷컴’ www.palbulchul.com엔 자기 자랑, 가족 자랑, 애인 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로 북적댄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우리 자기는 멋있는지. 애인 자랑 좀 할게요. 친구들한테는 하도 해서 이젠 여기에라도 쏟아부어야겠네요. 다들 지겨워해서요….”
“저는 요… 음… 사람을 포근하게 해주고… 그래서 친구도 많고요… 제일 중요한 건, 목소리가 예쁘다고 하더군요. 제가 사회를 본 어떤 행사에선 누군가 졸다가 제 목소리를 듣고 깨어났다고도 하더라고요…. 지금도 인터넷방송국에서 디제이를 해요. 팬도 있고 인기도 젤 많고….” “남자 배우가 여자에게 발찌를 선물하는 드라마를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 다음날 난 하라는대로 눈을 감았고, 잠시 뒤 남편은 내 발목에 무언가를 열심히 끼우고 있었다…. 발찌였다.
선물을 받은 감동보다 드라마를 보며 부러워하던 나를 지켜봤을 남편의 모습과 시간을 내어 발찌를 사러다녔다는 정성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소정이 아빠, 사랑해요.” 남의 눈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랑 수다를 떠는 사람들의 얘기가 밉지만은 않다.
‘닭살’ 경쟁을 벌이기라도 하듯 공주병·왕자병 네트즌들의 수다가 계속 이어지지만, 보는 이는 배가 살살 아프기보다 은근히 재미를 느낀다.
작은 행복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아는 사람들의 소박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내 자랑을 실컷해보자라고 마음먹으니 자랑거리는 끝이 없다.
‘나는 정말 왜 이렇게 잘난 거야’식의 자기 자랑부터 ‘선생님 자랑, 제자 자랑’ ‘남편 자랑, 아내 자랑’ ‘우리가족 자랑’ ‘애인 자랑’ ‘친구 자랑’ ‘회사동료 자랑’ 심지어 ‘애완동물 자랑’까지. 딸이 지은 깜찍한 동시들을 딸 사진과 함께 올려놓은 지수 엄마, 해외에 있는 귀염둥이 조카의 사진을 올려놓고 자랑하기 바쁜 이모, 자기가 놓은 자수 작품에 스스로 감탄해 마지않는 소영님. 창원의 한 유치원 교사는 유치원생들이 그린 ‘오줌싸개 예삐곰’ 연작 그림들을 인터넷 자랑터에 실어달라며 우편으로 보내와 운영자가 사이트에 올려주기도 했다.
사실 요즘은 자랑과 칭찬보다는 화풀이 사이트가 유행을 이루는 시절이다.
속 뒤집히는 직장일에 대해 화풀이하고, 더러운 세상을 향해 시원하게 욕을 해대는 사이트들이 인기다.
팔불출닷컴은 이런 세태를 거슬러 태어난 일종의 ‘역발상’ 사이트인 셈이다.
팔불출닷컴의 ‘팔불출 1호’는 이 사이트를 만든 아이지피넷의 차의창(39) 사장이다.
차씨는 “사람들이 이토록 칭찬과 자랑에 굶주려 있는 줄 몰랐다”며 “온갖 욕설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는 게 사람들의 심리인 것 같다”고 말한다.
팔불출 사이트는 캐드캠 판매·지원회사인 아이지피넷의 전직원 4명의 공동작품이다.
본래 업무인 캐드캠 영업과는 전혀 상관없이 태어났다.
오랫동안 영업일선에서 뛰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고객들의 팔불출 자랑에 맞장구를 쳐오다가, 지난 1월 문득 이런 걸 모은 사이트를 만들어보자며 직원들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차 사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기운을 얻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이젠 직원들 스스로 팔불출이 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무실에서도 자랑과 칭찬이 넘쳐난다”고 즐거워한다.
“자랑과 칭찬도 습관”이라고 말하는 아이지피넷 직원들은 앞으로 팔불출닷컴을 삶에 지쳐 주눅든 사람들의 기를 ‘쭈욱~’ 펴주는 사이트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