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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히로세 다카시)
[지식창고]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히로세 다카시)
  • 박번순(삼성경제연구소)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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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주무르는 금융자본의 본질과 음모
지난 97년 말 구제금융(IMF) 사태 이후 한국도 직접적인 ‘국제금융’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의 다우존스나 나스닥 지수 움직임에 맞춰 한국의 주식시장도 민감하게 춤을 춘다.
좁게는 미국을, 넓게는 세계의 금융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히로세 다카시 지음, 동방미디어 펴냄)은 ‘일본의 입장에서’ 그 힘의 원천이 되는 인맥과 메커니즘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둬야 할 몇가지가 있다.
먼저 이 책은 미국경제를 지배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지배한다고 보는 자본과 그 자본의 움직임에 관한 책이다.
둘째, 이 책은 일본인이 지었다.
한때 일본은 미국을 추월할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전후 최장의 경기 호황을 누리고 있고, 일본은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셋째, 이 책의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는 저널리스트이지 금융경제학자가 아니다.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본, 미국의 투기적 금융자본 행태에 대한 학술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고발서인 것이다.
이 책은 썩 정당하게 축적하지 않은 자본들을 상속받아 불려온 유산상속인과, 그들의 상속 과정, 그리고 그들이 자산을 증대하기 위해 취한 전략 등을 담고 있다.
자본의 형성과 가지치기,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인맥 형성,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 나아가 자본을 둘러싼 일종의 ‘음모’ 등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남북한을 오가며 북한의 핵문제를 다뤄온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은 일본을 개항시킨 ‘흑선’(黑船)의 선장 매튜 페리의 자손이다.
록펠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어떻게 재산을 축적했고, 이를 활용해 어떻게 미국이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엿보는 것은 재미와 함께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상당 부분 현재 세계 금융자본의 형성과 행태를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지은이는 7가지의 메커니즘이 세계자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재벌’의 유산상속인이다.
그들은 철도왕 밴더필트, 석유왕 록펠러 등 한때 재벌의 반열에 올랐던 조상의 자산을 상속받아 현재 운영하는 후손들이다.
이들은 투자은행의 ‘전주’가 되어 지금도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한다.
둘째는 남아프리카의 금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가들이다.
불행히도 금을 좌우하는 자본가들 역시 재벌의 유산상속인들이다.
셋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경제전략이다.
CIA는 이제 군수산업의 자본가가 된 유산상속인의 이해를 반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미국의 한켠에서는 “CIA는 록펠러가 사랑한 스파이”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넷째는 유럽재벌의 위력과 조직력이다.
유태계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거대한 금융력과 이들이 국제금융에 미치는 영향력이 해부대에 오른다.
나머지 3가지는 유산상속인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해 이용되는 꼭두각시들의 이야기이다.
조지 소로스 등 월스트리트의 국제투기꾼, 국제자본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기 위해 이용하는 조세자유지역,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금융저널리즘이 그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은 이들 7개의 메커니즘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죄없는 개발도상국을 위기로 몰아넣곤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일본인인 지은이가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의 가계와 네트워크를 이토록 자세하고 치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지 놀라게 된다.
하지만 지은이의 주장성 논지에 몰입하기보다는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게 훨씬 얻는 것이 많을 듯 하다.
예를 들어, 유명한 영국계 자딘-메디슨 가문은 19세기 중국 헐벗은 민중들의 건강을 해쳤던 아편밀매로 자본을 축적했다.
미쓰비시, 미쓰이는 20세기 초 일본 군국주의의 한 지주를 이루었다.
자본의 이런 속성에 대해 지은이는 도덕적 훈계로 교정될 수 있다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지은이는 “일본이 미국의 지배자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아시아가 뭉쳐야 하며, 그 중심에는 일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파 지식사회의 견해와 엇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지나친 일본 위주의 시각을 적절하게 솎아낼 수 있다면, 세계의 금융시스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15 일본은 90년대 들어 계속 불황에 허덕였다.
과연 일본인은 누구에게 돈을 잃었는가? 헤지펀드 뿐만은 아니다.
헤지펀드는 국제 금융 마피아라는 도둑들이 고안한 무수히 많은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재벌이 이용하는 투기꾼 조지 소로스만으로는 경제 파산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투기꾼을 고용하는 자와 투기꾼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P119 엘리트만이 될 수 있는 중앙정보국(CIA) 직원은 재벌로부터 명령을 받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자료를 낡은 파일들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들은 아시아 경제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투자·매수 정보·통상 교섭에까지 관여하고 있으며, 나아가 도청 작업에도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P183 무기와 병기를 중심으로 유고 내전의 수수께끼를 풀면, 모두 같은 인맥으로 귀착된다.
…직함은 모두 프랑스 대사·재무 장관·국무부 차관보·유엔 대사·대통령 보좌관·CIA 부국장·국방 장관 등 그럴듯 하지만, 실상은 거대한 재벌의 투기꾼들이 보조를 맞춰 유고 내전에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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