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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칼럼] 위기라고? 지금은 안전지대
[DOT칼럼] 위기라고? 지금은 안전지대
  • 이지선(드림커뮤니케이션즈)
  • 승인 2000.08.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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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라고? 지금은 안전지대
얼마 전 사무실을 옮겼다.
한국 벤처의 본고장이라는 테헤란밸리에 입성한 것이 지난해 8월이었는데, 직원이 늘어나 어쩔 수 없이 둥지를 옮겨야 했다.
이삿짐을 싸기 위해 이것저것 서류를 들추다 보니 화살같이 흐른 1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세월이 굉장히 빨리 흐른 것 같으면서도 그 많은 일들이 일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니 믿을 수 없기도 했다.
한 3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비단 우리 회사뿐 아니라 테헤란밸리에 있는 기업들은 지난 1년 동안 적어도 한번 정도는 이삿짐을 꾸렸을 것이고 한두번 증자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신생기업이 아니라면 적어도 한두 곳에 투자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업계획서도 고쳐썼을 것이며, 더러는 사업영역 자체를 바꾼 곳도 있다.
적어도 직원의 10~20%가 퇴직을 했을 것이며, 30~40%는 새로 들어왔을 것이다.
수백, 수천개에 달하는 벤처기업들이 이렇게 변화무쌍한 세월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이 그토록 빨리 변했으니 말이다.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온 뒤 곧이어 인터넷 열풍이 폭발적인 기세로 몰아쳤다.
코스닥 시장의 폭등으로 수백억, 수천억을 번 스타가 탄생했고, 벤처기업의 가치가 재벌기업의 자산가치를 뛰어넘는 현상도 빚어졌다.
모두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뭉칫돈을 싸들고 인터넷 기업이라면 아무것도 볼 것 없이 투자하는 ‘묻지마 투자’도 성행했다.
열풍이 지나간 자리, ‘마음’만은 남겨두자 ‘닷컴 위기론’이라는 마법사의 저주 같은 주문이 곳곳에 번지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벤처기업에게는 잠꼬대 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6~7개월 전의 얘기다.
그런 세월의 터널을 지나왔다.
그랬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된 닷컴 위기론인지, 더위에 지친 벤처기업의 기운을 더 빼놓고 있다.
암담한 것은, 각종 대란설과 괴담이 돌면서 주식시장은 이미 바닥을 지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게다가 앞으로 전망도 더욱 어둡다.
누구도 언제쯤 회복될 것이라는 산뜻한 예측을 내놓지 못한다.
어디나 오름과 내림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미래에 대한 섣부른 전망이 결과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폭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의 인터넷·벤처 열풍도 정상은 아니었다.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고 또 대세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처럼 엄청난 반향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폭등은 금융 전문가나 투자자 입장에서도 믿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우리 모두의 믿음이었다.
누구나, 인터넷이나 벤처 산업과 관계없는 일반 대중까지도 인터넷·벤처기업의 성장을 믿게 됐고 잠재가치를 신뢰했다.
코스닥의 주가를 떠받든 것은 실상 개미군단으로 표현되는 이들의 힘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언론의 힘도 대단히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닷컴 위기론은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거품을 진정시키는 조정기라는 진단이 이를 설명한다.
어쨌든 대세는 인터넷과 벤처산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조정기인지, 혹은 끝인지 얘기할 순 없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지난해 벤처 열풍을 만들어냈던 절대 다수의 믿음이 또다시 조정기의 바닥을 끝까지 내려놓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을 닫는 닷컴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예상했던 만큼의 투자를 받지 못하는 기업 역시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진정 닷컴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문을 여는 기업이 있으면 문을 닫는 기업도 있다.
기업이 만든 제품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할 때도 있는 것처럼, 기업의 미래가치를 파는 투자 유치에서도 성공과 실패는 엇갈리게 마련이다.
투자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절대 망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거품의 시대보다는 적어도 지금 상황이 정상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벤처산업도 혼란기를 벗어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데 있다.
속도가 빨라지면 앞일을 예측하는 것이 더 힘들어지지 않던가. 차분히 앉아 바로 코앞에 어떤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지 꿰뚫어볼 수 있는 침착한 눈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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