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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롯데, 유통왕국 건설 ‘한우물’
[포커스] 롯데, 유통왕국 건설 ‘한우물’
  • 김경호 기자
  • 승인 2001.08.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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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사 잇단 인수로 신규사업 진출 소문 무성… 국내시장 제패가 목표인 듯
최근 롯데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거론되는 진출 분야로는 롯데가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아주 생소한 분야도 있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도 있다.
롯데가 이처럼 다양한 신규사업 진출설에 휩싸이는 것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재무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롯데의 2000년 결합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부실기업 인수주체 0순위로 왜 롯데가 항상 지목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롯데의 총 매출액은 13조5천억원으로 삼성과 현대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롯데의 부채비율은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평균보다 훨씬 낮은 80.26%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도 3.25로 아주 양호하다.
재무구조가 이렇다 보니 롯데는 다른 기업에 비해 구조조정 부담이 덜하고, 넘치는 이익을 새로운 신규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롯데가 최근 다른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는 모습이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롯데제과는 지난 7월26일 일양약품의 자회사인 IY P&F의 주식 100%를 24억6천만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는 이미 제일제당의 게토레이 사업부를 300억원에 인수해 신제품을 선보였고, 한술 더 떠 지방 소주회사 인수까지 노린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롯데의 확장은 식품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롯데는 현대석유화학 인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계열사 가운데서 유일한 중화학 회사인 호남석유화학은 현대유화를 인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대유화 채권단의 입장이 변수로 남아 있긴 하지만, ‘조건만 맞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롯데의 입장이다.
기존 사업 확장 차원에 불과 그러나 떠도는 소문이나 겉보기 인상과 달리 롯데가 새로운 업종으로 강하게 진출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롯데 관계자는 말했다.
롯데쪽 얘기를 들어보면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과 같이 조금은 김이 샐 정도다.
롯데가 일양약품의 자회사를 인수한 것도 건강식품 사업부문에서 롯제제과와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고, 게토레이 인수도 음료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리하게 업종전환을 한다는 해석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현대유화 인수 건도 유화업종 자체가 규모의 경제를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롯데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이 조금은 무리를 해서 인수를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롯데가 새롭게 진출을 시도하는 업종이 없진 않다.
롯데는 일명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카드사업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 5월 ‘카드사업 신규진입 허가방침’을 발표할 때만 해도 롯데의 카드사업 진출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보였다.
금감위가 조건으로 내건 ‘기존 금융거래 고객 15만명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업은 외국계 금융업체 몇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월 금감위가 다소 완화된 기준을 발표하자 롯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5만명 무조건 확보’에서 ‘15만명 회원계획 타당성 있으면 가능’으로 바뀐 새 기준은 롯데에 신용카드 사업 진출 허가권을 내준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롯데백화점의 카드회원 400여만명 가운데 10%만 신용카드 고객으로 전환해도 이런 정도의 기준은 가볍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데쪽은 카드사업 진출도 새로운 업종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봐달라고 요구했다.
백화점 카드이긴 하지만 이미 400여만명이나 되는 카드 고객을 확보해 운영해본 경험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롯데의 신규사업 진출은 ‘롯데가 가장 잘하는 사업분야로 진출’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롯데 관계자는 말한다.
기존 사업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시장공략을 잘할 수 있는 분야로 롯데의 영토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SK증권의 한 기업분석가는 롯데가 가장 주력해야 할 분야는 ‘유통사업 해외진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상태가 좋은 롯데가 해외진출을 마다한다면 다른 어느 누가 위험을 무릅쓰며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겠냐며 롯데의 소극성을 비판했다.
하지만 유통 전문기업인 롯데가 해외진출을 검토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롯데는 아직 국내 유통업체가 세계시장에 도전할 만큼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롯데 기업문화실 박두환 과장은 “잘하는 사업만 특화해 하는 것이 롯데의 강점”이라며 “국내시장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난 이후에야 해외시장 진출이든 다른 분야로 사업확장이든 선택해볼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기술 축적, 세계시장 진출 계획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의 유통사업 기상도가 ‘백화점 맑음’, ‘할인점 흐림’이라고 분석한다.
탄탄한 자금력과 재무구조를 갖춘 롯데에도 나름대로의 고민은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할인점 시장은 언제 태풍이 불어닥칠지 모르는 ‘폭풍전야’ 상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할인점 시장에서도 규모를 갖춘 회사가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시장구도가 재편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백화점 시장을 롯데와 현대가 양강구도로 교통정리한 것과 달리, 할인점 시장에서는 롯데가 아직도 애를 먹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롯데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할인점 시장을 밀고 들어오는 외국 업체들에 대항할 수 있는 차별화된 유통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해외시장 진출계획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과 기술을 현재보다 더 많이 축적해 전문화되고 차별화된 상태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준비를 안하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 롯데백화점 홍보팀 이선대 과장의 말에서 롯데의 승부수가 엿보인다.
세계시장 진출이나 국내 신규사업 진출보다 더욱 확고한 롯데의 승부수는 ‘유통 인프라 구축을 통한 국내 제일의 유통왕국 건설’인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경영철학을 지닌 롯데가 국내시장도 제패하지 않은 채 외국으로 나가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잘해오던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게 롯데의 입장이다.
최근의 다른 기업 인수 등을 계기로 롯데와 관련해 시중에 퍼진 각종 소문들은 롯데의 이런 기본입장에 견줘보고 판단해달라고 롯데 관계자는 말했다.
현재 롯데의 상황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롯데의 총 매출액은 지난해 13조5천억원이었고,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은 16조5천억원이 목표다.
롯데백화점을 정점으로 마그넷, 롯데리아, 레몬, 세븐일레븐, 롯데닷컴으로 이어지는 롯데의 막강한 온·오프라인 유통 네트워크는 확고부동하다.
유통과 함께 롯데를 주도하는 양대 축으로 불리는 식품·음료 부문도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열고 있다.
롯데건설은 올해 하반기 중 건설업계 빅5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내걸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건설업계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호텔, 롯데월드로 이어지는 롯데의 관광산업은 내년에 열리는 월드컵경기 특수를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롯데는 바야흐로 용틀임을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과거 다른 기업들이 롯데에 대해 ‘먹고 자고 노는’ 산업만 지향한다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롯데가 몇수 앞을 내다보고 한 착점들이 서서히 묘수로 밝혀지고 있다.
포석은 어느 정도 잘됐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그러나 중반 이후 국면에서 사소한 전투에 집착해 큰 곳으로 손을 옮기지 못한다면 최종 승패의 향방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롯데의 투자자와 고객들은 롯데에 대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을 귀담아듣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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