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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경제] 좌초하는 경기, 좌표가 없다
[해외경제] 좌초하는 경기, 좌표가 없다
  • 함석진 <한겨레> 기자
  • 승인 2001.08.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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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지수 여전히 높은 수준 유지… 제조업구매지수 12개월 연속 하락세 미국 경제는 대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숨돌릴 틈 없이 지나왔고 앞으로도 한참은 더 가야 할 것 같은 길이지만, 이 내리막 길이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참으로 갑갑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쏟아져나오는 경제지표들의 숲을 헤집고 다니지만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지표들은 작심이라도 한듯 서로 정확하게 엇갈리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소비부문, 경기회복 견인하나 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로 빠져드는 것을 거의 막아서고 있는 버팀목은 바로 미국 소비자들의 씀씀이다.
계속되는 경기악화 속에서 기업들의 대량감원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자기 주머니를 계속 열어놓고 있다.
소비부문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이른다.
지난 7월31일 미국 상무부 발표를 보면 미국의 소비자지출은 5월에 0.3% 증가한 데 이어 6월에도 예상보다 높은 0.4%의 증가율을 보였다.
임금·이자·배당 등을 포함한 개인소득도 5월 0.2% 증가에 이어 6월에도 0.3% 늘었다.
월가의 경제 분석가들은 6월 중 소비자 지출은 0.3%, 개인소득은 0.2%의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보드가 같은 날 발표한 소비자신뢰지수는 전달보다 약간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7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16.5로 전달의 118.9보다 2.4포인트 떨어졌지만, 올해 들어 가장 낮았던 지난 2월의 109.2보다는 휠씬 나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의 단기 경제전망과 소비계획 등을 종합해 수치로 만든 이 지수는 고용사정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데, 기업들의 대량 감원 바람으로 악화된 소비자들의 심리가 7월에 반영됐다.
그러나 7월의 소비자신뢰지수 하락 폭은 바탕을 흔드는 정도의 의미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컨퍼런스보드의 린 프랑코 국장은 “미국 소비자들은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 회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기 낙관론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소비 부문은 주택과 자동차다.
경기가 후퇴국면에 들어서면 소비자들은 가장 먼저 이 두 부문의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두 부문의 지표는 향후 경기를 가늠해보는 데 중요한 잣대 구실을 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6월 중 신규주택 구매는 92만2천채로 5월의 90만7천채보다 1.7%가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무려 16.3%나 올라간 수치다.
기존 주택 구매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늘어난 533만채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5월의 536만채보다는 0.6% 감소한 것이지만, 사상 다섯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기존 주택의 판매가격(중간가격대 기준)도 15만2600달러를 기록해 전달의 14만5천달러보다 5% 이상 올랐다.
미국부동산협회(NAR) 짐 콜먼 이사는 “주택 부문은 경기둔화 속에서도 계속 이례적인 강세를 보였다”며 “소비자들은 일단 주택을 새로 사면 가구·인테리어·전자제품 등 각종 가정용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나머지 경제 분야도 연쇄적으로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택가격의 상승은 현금 유동성을 높여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효과도 낳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지난달 24일 상원 증언에서 “주택 부문이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지속적인 주택가격의 상승은 증시침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에 보탬이 돼왔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판매도 경기와 관계없이 꾸준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6월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달에 이어 840만대를 유지했다.
소형 트럭 등을 포함한 6월 전체 차량 판매대수는 1710만대로 전달 1670만대보다 40만대 가량 늘었다.
이런 소비수준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까? “그렇다”고 대답하는 쪽이 근거로 들이대는 것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야심작인 감세정책의 결과물, 즉 세금환급과 올 들어 여섯차례나 되풀이된 금리인하의 효과다.
1조3500억달러(약 1760조원) 규모의 감세안에 따라 앞으로 11년간 세금이 줄고, 올해 이미 납부한 소득세에 대해서는 이달부터 독신자에게 300달러(약 39만원), 부부합산 신고자에게 600달러(약 78만원)씩 수표로 환급될 예정이다.
이미 환급수표 1차분이 우송에 들어갔으며 앞으로 수개월 동안 400억달러(약 52조1400억원)가 각 가정으로 전달된다.
경기가 이렇게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소비자들은 지갑을 풀고 있는데, ‘공돈’까지 받고 나서 소비를 줄이겠느냐는 것이다.
또 올해 1월 이후 지금까지 모두 2.75%포인트에 이른 금리인하의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시점이 됐다는 것도 긍정론을 뒷받침하는 재료다.
연준의 경제모형에 따르면 금리인하는 6~9개월 뒤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1%포인트의 금리인하는 1년 뒤에 0.6%포인트, 2년 뒤엔 1.7%포인트만큼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생산부문 하반기 전망 ‘암울’ 그러나 반대되는 주장도 만만찮다.
갤럽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감세에 따른 환급액의 사용처에 대해 17%만이 물건을 사는 데 쓰겠다고 답했다.
50%는 저축, 37%는 빚을 갚는 데 쓰겠다고 응답했다.
애초 감세안을 지지해온 경제학자들은 환급받은 이들 중 절반이 쇼핑에 나설 것으로 예상해, 200억달러(약 26조700억원)가 시장에서 소비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갤럽의 조사 결과대로라면 시장에 쏟아질 현금은 70억~100억달러(약 9조1200억~13조300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는 전체 10조달러 규모인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저축이 늘어나더라도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크게 줄이고 있는 마당에 당장 시장에 돈이 풀릴 가능성은 많지 않다.
직접소비와 달리 은행에 들어간 돈은 지칠대로 지친 경제에 단기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피로회복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연준이 올해 들어 여섯차례나 금리를 내린 뒤에도 주가는 떨어지고 장기금리는 오히려 오른 점을 들어 금리인하 ‘약발’이 떨어졌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생산부문은 여전히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소비자들은 기업쪽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지만, 상황이 계속 나빠진다면 언제든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기업의 활동이 둔화하면 실적악화→감원→구매력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하반기 기업 실적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다.
톰슨파이낸셜/퍼스트콜에 따르면 3분기 실적을 예고한 331개 기업 중 64.3%인 213개 기업이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지난 1일 발표된 미국구매관리자협회(NAPM)의 7월 중 제조업구매지수는 전달 44.7에서 1.1포인트가 더 떨어진 43.6을 기록해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 지수는 전국 350여개 업체 구매관리자들을 상대로 한 구매의향 조사를 토대로 작성되며, 수치가 50을 넘으면 성장세를, 50 아래면 위축세를 나타낸다.
이 보고서는 미국 제조업 분야의 3분기 첫달의 활동실적을 보여주는 첫 보고서여서 주목된다.
협회쪽은 “제조업 분야의 회복세를 주도할 재료가 당분간 없어 보인다”며 “높은 에너지 가격과 제조업자들의 투자 기피 등이 지수를 끌어내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 8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인 0.7%로 둔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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