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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명동' 입원하고 싶다
[머니] '명동' 입원하고 싶다
  • 이정환
  • 승인 2000.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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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주식 재미붙었다 줄줄이 파산...사채업자 60% 유동성 위기
명동 사채업자들에게 ‘한국의 벤처산업은 우리가 키운다’던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얼어붙은 장외시장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명동 사채시장에서도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는 가게(흔히 부티크라 부른다)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사채업자들에 따르면 대략 60%가량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30%가량이 최근 명동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루 아침에 무너진 ‘황제주’의 비애 익명을 요구한 사채업자 A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A씨는 지난 2월 LG텔레콤 주식 1만2천주를 인근 사채업자로부터 주당 5만2천원에 매입했다.
당시만 해도 코스닥 등록이 임박했고 전고점 9만원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주가가 반등을 시작하면 재빨리 물량을 털고나올 생각이었지만 LG텔레콤은 맥없이 추락을 거듭했다.
4월에는 3만원선까지 무너졌다.
5월 들어서면서 장외시장에는 자금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물량은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오는데 정작 매수주체가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G텔레콤의 코스닥 등록이 연기됐고 투자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결국 A씨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주당 3만원에 물량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8월4일 현재 LG텔레콤의 시장가격은 2만3천원까지 떨어졌다.
A씨처럼 두루넷과 신세기통신, 현대정보기술 등 장외시장의 ‘황제주’를 보유하고 있던 사채업자들은 대부분 ‘참사’를 면치 못했다.
두루넷과 신세기통신은 각각 전고점 대비 86.2%와 85.9%까지 폭락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헐값에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
전직 펀드매니저로 몇몇 ‘큰손’들의 자금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B씨의 경우는 더욱 비참하다.
B씨는 지난 1월 코스닥 등록을 앞둔 심텍의 주식 5만주를 주당 4만400원에 ‘운좋게’ 매입했다.
공모가 1만3천원의 네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당시만 해도 등록과 동시에 15일 이상 상한가 행진을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므로 그 정도의 프리미엄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B씨의 예상과 달리 코스닥 시장은 불안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심텍은 7일간의 상한가 행진 끝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마지막날 주가는 2만7500원이었으며 그 뒤로도 심텍의 주가는 한번도 4만원을 넘지 못했다.
치명타를 얻어맞은 B씨는 단기차익을 노리고 한동안 코스닥 시장을 기웃거렸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고객들로부터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해빙기’ 오지 않으면 도미노 파산 위기 상당수 사채업자들이 B씨와 비슷한 처지에 내몰려 있다.
신규등록의 프리미엄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등록 직후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장외에서 30만원까지 거래됐던 쓰리알도 공모가가 9만원으로 결정됐고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데 그쳤을 정도다.
장외시장 참가자들은 점차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자금난에 봉착한 일부 업자들이 헐값에 물량을 던지기 시작했고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고 있다.
가격안정을 위해 매입가격의 10% 미만에는 물량을 내놓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깨어진 지 오래다.
인터넷 장외주식 사이트에는 사채업자들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연일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매매는 극히 부진한 상태다.
장외주식 사이트인 제이스톡의 박규현 분석사는 “최근 거래 성사율은 지난 3월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특히 지명도가 없는 신생 벤처의 주식은 전혀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코스닥 시장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당분간 사채업자들의 연쇄도산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PBI스톡의 양준열 사장은 “장외시장에 물려 있는 명동의 자금이 10조원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물량이 당분간 현금화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동이 활기를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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