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터넷산업은 한국에 비해 2년 정도 뒤졌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산업화 경쟁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뒤졌지만 디지털시대 진입 경쟁에서는 두 나라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닷컴 위기론으로 많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 만큼은 여전하다.
어떤 이는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인터넷 강대국이라고 어깨를 으쓱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일본에 한자를 전해준 왕인 박사 이후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에 첨단문물을 전할 수 있는자리에 섰다며 뿌듯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자부심의 밑바닥엔 일본보다 먼저 인터넷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는 은근한 도취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에 널린 퍼진 이런 불문률에 조금씩 생채기가 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을 앞서지 못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정보통신 마케팅 전문회사 ‘아시아IT스트래지티지’의 오오쿠라 미쓰루 상무는 “한국 인터넷산업이 절대로 일본을 앞서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인터넷에 당신이 찾는 비즈니스가 있다> <비트밸리의 고동>처럼 일본 인터넷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책들도 쏟아진다.
지난 4월 일본에 건너가 인터넷사업을 하고 있는 김진호 전 골드뱅크 사장도 “한국에서 생각하던 것과 실제 와서 보고 느낀 일본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일본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파고 들면 겉보기와 다른 실체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사실 여러 지표들을 훑어보면 일본은 한국을 뒤에서 쫓아오는 모양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1575만명(6월 기준)으로, 인구대비 28.3%에 이른다.
이에 비해 미쓰비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2045만명(6월 기준)으로, 인구대비 16.7%에 지나지 않는다.
도메인 수도 한국이 일본보다 3배 정도 많다.
일본의 PC보급률도 한국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이런 수치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정말 ‘인터넷 후진국’인가. 한국과 일본의 인터넷 격차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 것인가. 김진호 전 사장은 이런 질문에 물음표를 단다.
“일본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미국이나 한국과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선인터넷의 발전과 인터넷의 가전화 현상은 일본식 인터넷 비즈니스의 상징이죠.” 한국은 미국의 온라인 모델을 따라 인터넷산업이 발전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2월 시작된 일본전화통신도코모(NTT도코모)www.nttdocomo.com의 ‘아이모드’(i-mode) 서비스를 계기로 무선인터넷 시장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NTT도코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아이모드는 간편한 조작법과 값싼 이용료 때문에 일본의 ‘넷맹’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아이모드 가입자는 8월 들어 1천만명으로 늘어나 이미 유선인터넷 인구를 앞질렀다.
세계 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판도를 결정할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일본이 몇 발자국이나 앞서가고 있는셈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무기, 가전 인터넷 일본 인터넷 비즈니스의 또다른 특징은 가전도구와 인터넷의 만남이다.
높은 인구밀도 탓에 비좁은 주택에서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방안에 PC를들여놓기 꺼린다.
일본의 PC보급률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PC 이외의 가전기기로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는 ‘디지털 가전제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가전기기에 운영체제나 중앙연산처리장치 따위의 PC기능을 탑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 3월 소니에서 선보인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PS2)는 네트워크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게임 도중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화상처리 속도도 인텔의 펜티엄Ⅲ 칩을 3~4배 정도 앞선다.
야구게임은 선수들이 일으키는 먼지까지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4만엔 안팎으로 PC에 비해 훨씬 싼 편이다.
올 12월 실시되는 디지털 위성방송에 맞춰 나오고 있는 디지털 텔레비전도 인터넷과 통한다.
최근 ‘정보가전’이 세계 인터넷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일본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인터넷 분야에서 미국과는 다른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취약한 유선인터넷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인터넷 접속시 전화요금 정량제를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전화요금도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30분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면 500엔(5천원)이라는 전화사용료를 내야 한다.
비싼 전화요금이 일본의 인터넷 발전을 가로막아온 셈이다.
게다가 일본에는 비대칭디지털가입자선(ADSL)같은 초고속통신망보다는 전송속도가 최고 128Kbps밖에 안되는 종합통신망(ISDN)이 널리 보급돼 있다.
통신망을 독점하며 ISDN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일본전신전화(NTT)가 그동안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초고속통신망업자들에게 망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지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이런 독점구조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취약한 네트워크 기반 때문에 동영상 전송 등 다양한 분야의 인터넷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철저한 수익창출로 ‘온라인 J-리그’준비 한국과 일본의 출발 속도가 달랐던 것은 서로 다른 문화적인 토양 탓도 크다.
사이버에이전트코리아의 아츠시 이시카와 이사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한 일본 문화 때문에 발동이 뒤늦게 걸렸다고 말한다.
확실성보다는 속도전을 필요로 하는 벤처 문화가 일본에 뿌리를 내리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기업을 운영하다 도산하면 ‘낙오자’로 찍혀 미국이나 한국처럼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선인터넷과 가전인터넷이라는 두 축은 일본 인터넷업계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며 위기를 극복하는 독특한 전략이다.
앞으로 인터넷 발전의 흐름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 수익전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열세를 단박에 뒤집을 수도 있는 비장의 카드다.
그렇다고 일본의 이른바 닷컴기업들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원 김근동 연구원은 일본의 민간기업들이 방문단을 구성해 1년 이상 미국의 닷컴기업들을 해부해왔다고 귀뜸한다.
“일본 정부와 업계는 올해를 ‘인터넷 원년’으로 내걸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본격적인 사업 채비에 들어갔다는 뜻이죠. 상당 기간 동안 J-리그를 준비해온 일본 축구가 이제 한국 축구를 위협하거나 앞서고 있는 양상이 인터넷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 인터넷 선풍이 먼저 불긴 했지만 우위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기간을 거친 일본 인터넷 전문 기업들은 철저하게 수익창출을 지향한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가 적은 포털 서비스업은 미국과 제휴 관계를 맺고, 대신 쇼핑몰이나 B2B(기업간 거래) 같은 전자상거래쪽으로 일찌감치 가닥을 잡았다.
야후저팬, ‘구’ www.goo.ne.jp, 인포시크저팬, 익사이트저팬, 라이코스저팬 등 일본의 5대 검색 포털사이트 가운데 순수한 일본계 기업은 NTT계열의 ‘구’ 외에는 없다.
순수한 컨텐츠 제공업체보다는 쇼핑몰이 인터넷 비즈니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일본만의 특색이다.
이것 역시 처음부터 수익구조를 명확하게 설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온라인 종합쇼핑몰 ‘라쿠텐’ www.rakuten.co.jp은 이러한 전략을 통해 최고의 수익모델로 자리잡았다.
라쿠텐은 개인이 운영하는 2500개 가량의 소규모 전문 쇼핑몰을 모아놓고 매달 ‘입점비’로 5만엔을 받는다.
그 대신 라쿠텐은 어떤 손님들이, 어떤 물건을, 어느 정도 사갔는지 모든 정보를 입점업체에 제공한다.
화투판을 만들어주고 ‘고리’를 떼는 것이다.
입점업체도 별도의 쇼핑몰을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신경쓸 일이 없어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
“B2B 시장은 자신있다” B2B 시장은 일본이 세계적인 제조업을 기반으로 가장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분야다.
일본 통산성과 앤더슨컨설팅에 따르면, 98년 8조6천억원 규모였던 일본의 B2B 시장은 2003년엔 68조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앞으로 성장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B2B 시장규모가 한국은 일본의 0.8%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자신감은 여기서 비롯한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 보급으로 기존 상권을 크게 위협받고 있는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앞다퉈 B2B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철강제품 전자거래 시장에서는 미쓰이물산 및 미쓰비(?)상사가 출자한 이스틸과, 이토추상사 및 스미토모상사 등이 출자한 메탈사이트가 주도권 확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본 고유의 종합상사 성격을 살려 ‘넷 종합상사’ 전략도 나오고 있다.
종합상사인 닛쇼이와이와 일본전화통신 자회사인 NTT-X가 지난 6월 합작사를 설립해 15개 업종을 포함하는 B2B e마켓플레이스를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분명 지각생이다.
세계적 열풍을 뒤에서 지켜보며 지나치게 몸을 사렸다.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무모할 정도로 모험적이다.
앞서고 있지만 뒤가 늘 불안하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반면교사가 아닐까.
일본 대기업들이 앞다퉈 ASP 시장에 진출하거나 데이터센터 건립 등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B2B(기업간 거래) 전자상거래 시장은 2003년이면 미국의 절반 가량인 68조엔 규모로 팽창할 전망이다. 그만큼 ASP 사업의 타깃이 되는 중소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관련 시스템에 대한 수요도 급증한다는 얘기다. ASP 시장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기업이 정보통신 종합기업인 후지쓰다. 후지쓰는 오는 2003년까지 1000억엔을 투자해 일본 최대의 데이터센터를 세우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1만5천평방미터의 데이터센터에 8000~1만대의 고성능 컴퓨터를 설치한다는 어마어마한 청사진이다. 일본전기(NEC)도 2001년까지 300억엔을 데이터센터 건립에 투입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오라클과 제휴해 이미 ASP 서비스를 시작한 히타치제작소도 2003년까지 400억엔을 추가로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들어선 인텔도 일본의 ASP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지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일본의 비싼 부동산 가격, 높은 인건비, 잦은 지진 등을 고려하면 한국에 데이터센터 건립을 유치하는 비즈니스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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