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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레이저 프린터
[IT타임머신] 레이저 프린터
  • 유춘희
  • 승인 2000.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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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레이저젯의 한국 상륙작전 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업체들이 레이저프린터를 소개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조용함’이었다.
“아직도 소리나는 프린터를 쓰고 계십니까?” “바쁜 업무에 시끄러운 소음까지 겹친다면?” 이런 식의 광고 카피가 먹혀들던 때였다.
레이저프린터의 깨끗한 프린팅 질이나 빠른 출력속도는 뒷전이었다.
도트프린터의 끼긱대는 소리를 사무실 ‘최고의 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레이저프린터는 ‘고해상·저소음·고속도’ 세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진 데스크톱 프린팅의 혁명이었다.
사진은 삼성전자와 HP가 합작해 한국에 세운 삼성휴렛팩커드(95년 4월 HP가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면서 지금은 한국휴렛팩커드가 됐다)가 90년 초에 낸 광고로, 레이저젯(LaserJet) 시리즈가 탄생한 이후 세계 시장에서 100만대가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자랑하는 내용이다.
9핀 도트프린터는 짚신, 24핀 도트프린터는 고무신, 그리고 레이저프린터는 가죽구두로 표현한 컨셉이 재미있다.
매서운 ‘뒷심’으로 한국 프린터계 지형 바꿔 HP의 레이저젯 시리즈는 레이저프린터의 대명사다.
출시 6년 만에 100만대를 팔 만큼(현재의 구매속도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복사하는 것 자체를 ‘제록스한다’고 하고, 화장지는 크리넥스, 청바지는 리바이스라고 하듯 미국에서 레이저젯은 사무용 프린터를 대표했다.
아직도 프린터는 HP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효자 제품이다.
HP는 70년대 중반부터 레이저프린터를 개발하기 시작해 82년에 첫 제품을 선보였다.
메인프레임에 붙여쓰도록 만든 이 제품의 설계와 생산은 HP가 맡고, 기술은 캐논의 특허인 ‘전기진단 사진’(electrophotographic)에서 빌렸다.
크기는 냉장고만 했고 가격은 10만달러였다고 한다.
그리고 84년 3월, PC 사용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한 레이저젯이 탄생했다.
레이저젯은 작고 빠르고 인쇄상태도 좋았고, 무엇보다 값이 쌌다.
당시 판매가격이 3500달러였으니까. 87년에는 레이저젯Ⅱ가 소개됐다.
기존 제품보다 더 나은 인쇄 품질과 그래픽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아주 미세한 선과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지금 얘기하면 웃기지만 ‘종이를 넣은 순서대로 나오는’ 급지 기능을 뽐냈다.
이 제품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다.
마치 인쇄소에서 찍어낸 것 같다는 찬사를 들은 레이저젯Ⅲ는 90년 초부터 공급됐다.
가격은 2400달러로 이전 기종보다 30%나 떨어졌다.
한국에서 레이저젯의 활약은 초기엔 ‘별로’였다.
HP의 다른 제품인 계측기나 중대형 컴퓨터의 명성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고, 수입선다변화 품목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내 경쟁업체도 너무 많았다.
금성사·대우통신·삼보·큐닉스 등 PC회사와, 쌍용컴퓨터·포스데이타같은 SI업체, 그리고 양재시스템·하이퍼테크·서통 등의 중소업체까지 무려 20여개 업체가 시장을 다퉜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PC가 본격적으로 집안에 들어가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값싼 잉크젯프린터가 도트프린터를 물리치고 가정에 보급되는 대신, 레이저프린터가 사무실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입선다변화 예외품목 ‘행운’ 93년 7월 수입선다변화 정책이 풀리면서 레이저젯은 ‘업계 표준’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내 시장을 휩쓸었다.
레이저젯이 수입선다변화 품목이 된 이유는 일본제 캐논 엔진을 쓴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원산지 증명이라는 예외조항에 따라 캐논 엔진이 미국에서 생산됐다는 증거를 대면서 수입제한이 풀렸다.
수입선다변화가 풀리자 HP는 한달 만에 2천여대의 레이저젯을 팔아치웠다.
당시 예외 수입이 허용된 제품으로는 HP 레이저젯 말고도, 애플의 레이저프린터, IBM의 노트북 PC 등이 있었다.
상공부가 이들에게 예외 수입을 허용한 것은 93년 초에 타결된 한미 반도체 덤핑 협상에서 이들이 한국에 낮은 덤핑 마진율을 부과하도록 무역대표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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