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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불황에 울고 웃고
[포커스] 불황에 울고 웃고
  • 홍승민(와이즈인포넷)
  • 승인 2000.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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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통신장비·컴퓨터 부문 불황, 무선·스토리지·소프트웨어 종목 호황
최근 미국 PC업체들의 4분기 및 내년도 실적악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IT 부문에 대한 지출증가세가 둔화되면서 IT업계 전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IT 부문에 대한 지출둔화는 IT업계뿐만 아니라, 신경제마저도 경기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IT 부문이 슬럼프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37분기 동안 지속됐던 IT 부문의 성장세가 수그러들면서, IT가 더이상 신경제의 견인차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금리인하 가능성 시사 발언은 IT뿐만 아니라 신경제 전반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IT업계는 자금에 목말라하고 있다.
통신업계를 비롯한 IT 부문이 주로 자금을 끌어모았던 기업공개시장과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기업공개를 주도한 벤처캐피털의 지난 3분기 투자규모는 전분기보다 6.8% 감소한 259억달러에 그쳤다.
이는 9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통신 서비스 업계는 그동안 매달 83억달러를 끌어쓸 수 있었으나 지난 11월엔 그 규모가 13억달러로 대폭 줄어들었다.
4분기 IT부문 수익률 15% 전망 최근 몇주간 몇몇 IT업체들이 발표한 부정적 전망들은 가뜩이나 위축된 IT업계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스리콤(3Com), PC 제조업체인 게이트웨이(Gateway), 칩 제조업체인 LSI로직(LSI Logic)과 자일링스(Xilinx), 전자제품 소매업체인 서킷시티(Circuit City) 등은 지난 며칠 동안 모두 수익이 예상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이들 주가는 평균 36%나 곤두박질쳤다.
금융권 분석가들의 전망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 10월 초 퍼스트콜톰슨파이낸셜 분석가들은 4분기 중 IT 부문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나, 이제는 이를 15%로 낮췄다.
통신장비업체들의 경우엔 애초 수익이 4%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제는 그 폭이 45%로 커졌다.
2001년 전체 IT 부문의 수익도 올해보다 24%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17%로 후퇴했다.
IT 부문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 전망은 신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분기 IT 장비 신규수주량 증가율이 1.2%에 불과했다.
2분기의 34%에 비하면 턱없이 줄어든 수치다.
전화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지출 증가율도 3.1%에 불과했는데, 이는 전년동기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은 곧바로 GDP 성장률에 반영됐다.
지난 3분기 GDP 성장률은 4년 만에 처음으로 떨어져 2.4%에 그쳤다.
기술주 반등 촉매제 아직 없다 시장에서는 기술주가 바닥에 도달했는가 하는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내년 2분기에 바닥을 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더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바닥을 치는 시점이 이보다 더 빠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메릴린치 스티브 밀루노비치 분석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반등에 촉매제 역할을 할 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바닥권을 찾기 위한 기술주들의 하락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밀루노비치는 비수기에 해당하는 2001년 1분기에도 많은 IT업체들의 수익호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뮤추얼펀드로 자금이 유입되는 속도가 둔화되기는 했지만 투자심리가 아직 식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바닥권이 나타날 조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주가 완전한 조정국면을 맞기 위해서는 투자심리가 더욱 악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밀루노비치 분석가의 리서치 그룹이 최근 발표한 ‘가치 분석’이라는 보고서는 가치(value)가 하강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주가수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 가장 높은 종목들이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는 것이 지난 3월의 조정국면에서 입증됐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기술주의 주가수익비율은 9월 초 이래 33% 가량 줄어들었지만, 대부분 아직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은 상태다.
반도체, 통신장비, 컴퓨터 하드웨어 같은 일부 종목들이 5년간 주가변동 범위의 최저 수준 가까이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이들 종목의 주가수익비율이 S&P500지수의 주가수익비율과 비교될 수 있는 수준에 접근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전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선,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같은 종목의 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과연 기술주가 바닥을 쳤느냐는 질문에 대한 밀루노비치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더이상 하지 않을 때가 바로 바닥이다.
중고품·소프트웨어 개발업체 고공비행 일부 업종은 사업특성상 불황을 맞아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나 알뜰구매 정신을 자극하는 중고품업체는 불황기에도 호황을 누린다.
지난 12월6일 통신장비업계의 거인 모토로라는 비용 절감을 위해 휴대전화 단말기 등 10억달러 규모의 생산 부문을 아웃소싱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모토로라와 비슷한 조처를 취하는 기업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PC·반도체·통신장비 생산업체들의 부진한 실적에도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및 계약생산 업체들은 투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있다.
과거 흐름을 돌이켜보면 이같은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PC 태동기였던 85년 당시엔 10여개의 PC 생산업체가 난립했으나 초기 산업의 위험성과 경기불황의 상승작용으로 2년 안에 대부분 파산했다.
파산업체 물품을 전문적으로 인수하는 도브비드(DoveBid)는 이들의 상품 5만여점을 헐값에 인수해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도브비드 CEO인 로스 도브는 최근 다시 호황기가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도브비드는 펫스토어닷컴 www.Petstore.com, 프로덕토피아닷컴 www.Productopia.com 등 파산한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의 물품을 거래해 약 75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첨단 소프트웨어 제작업체도 더욱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바닥을 헤매던 90~91년, 3대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생산업체는 연평균 30% 수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업 고객들은 이들의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인력관리를 유연화하고 낭비 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리바(Ariba)가 개발하는 온라인 물품조달 시스템과 B2B 마켓플레이스 시스템은 연간 20%에 달하는 기업 조달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의 투자전략가들은 시벨시스템스(Siebel Systems)가 장악하고 있는 고객관리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이 내년에도 70% 이상의 매출성장률을, 온라인 조달 소프트웨어 부문은 5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IT 부문의 이같은 부침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볼 일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급격한 둔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이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개발국가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해 경기침체에도 안정성이 보장되는 미국 국채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IMF도 “신흥개발국의 경제가 미국의 자산시장과 너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이들에 대한 낙관론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힌 바 있다.
기술과 시장의 B2B(Back to Basics)가 소중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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