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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생보사, 저금리 '발등의 불'
[비즈니스] 생보사, 저금리 '발등의 불'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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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진 문제로 ‘골머리’… 해외채권, 부동산 등으로 자산운용 방식 다양화 한국은행이 지난 8월9일 콜금리를 4.50%로 더 내렸다.
시장금리는 5%대로 내려앉았다.
초저금리 시대가 온 것이다.
최소한 연말까지는 이런 저금리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업체들마다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가장 크게 비명을 지르는 곳은 금융회사들이다.
시장금리 하락에 대출수요 위축이 겹쳐 마땅한 자산 운영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서로 돈을 받지 않으려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돈은 있는데 굴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보험회사나 은행들은 새로운 자산운영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특히 생명보험회사들은 저금리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생보사들의 자산운용 수익률이 만기시에 고객에게 주기로 약속한 예정이율을 크게 밑돌아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생보사들의 평균 자산운용 수익률은 4.7%에 지나지 않는다.
96년 9.8%에서 반토막이 난 셈이다.
이에 비해 고객에게 보장해준 예정이율은 평균 7.5%에 이른다.
역마진 폭이 2.8%포인트에 이른다.
확정금리형 상품이 ‘덫’ 생보사들이 이처럼 역마진으로 고생하는 것은 확정금리형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생보사 상품 가운데 확정금리형 상품의 비중은 거의 70%에 이른다.
이 가운데 76%가 7% 이상의 고이율을 약속한 상품이다.
금리가 계속 떨어져도 이미 고객들에게 약속한 이자는 지급해야 한다.
최근 생보사들은 모집인들에게 “저축성 보험을 해지하도록 고객들을 유도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보험사들은 은행처럼 수신금리를 쉽게 낮출 수 없다.
변동금리를 적용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일단 공시이율을 내려 자금조달을 하더라도 그걸 다시 낮은 금리의 자산에 투자할 수 없다.
보험상품이 만기가 되는 10년 뒤에는 고금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수익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보험사들은 상품 기간이 짧고 금리연동형 상품이 많은 은행처럼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셈이다.
생보사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일본의 생보업계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일본 생보업계는 80년대 후반 외형을 팽창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저축성 보험을 대량 판매했다.
하지만 그뒤 거품경제가 꺼지는 과정에서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역마진 문제에 부딪쳤다.
결국 일본 생보업계는 7개 보험사가 파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도 일본 생보업계는 역마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갈림길에 선 생보사들은 자산운영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자산운영 포트폴리오를 바꾸려고 한다.
예컨대 변동성이 큰 주식투자 따위를 줄이고, 안정적이면서 수익성이 높은 해외 장기채권을 매입하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나서는 생보사들도 있다.
가장 먼저 포트폴리오 개선에 팔 걷고 나선 곳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일단 주식투자 비중을 계속 줄여가고 있다.
삼성생명은 총자산 중 주식 비율을 지난해 초 10%에서 지금은 6% 수준까지 낮췄다.
삼성생명은 앞으로 주식보유 비중을 더 낮출 계획이다.
주가 널뛰기가 워낙 심해, 주식을 더이상 투자대상으로 놔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삼성생명은 2년 전부터 장기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IMF 한파가 지나간 이후 금리가 계속 내려가자 저금리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이미 예측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은 장기채권 비중을 2년 전 10%에서 지금은 30%로 크게 높였다.
삼성생명의 자산운영 관계자는 “금리가 9~10%인 채권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 4월 이후 저금리가 다시 시작되자, 삼성생명은 신규 채권 매입을 중단했다.
채권을 매입할 경우, 지금과 같은 금리 수준이라면 역마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신 지난해부터 해외 채권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의 총자산 가운데 7% 정도는 해외 채권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해외 채권 가운데는 선택할 수 있는 장기채권의 종류가 많고 8% 정도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어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예정이율이 평균 7.5%이므로, 해외 채권에 투자할 경우 큰 이득은 없지만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삼성생명의 전체적인 자산운영 전략은 아주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변동성이 큰 주식의 보유비중을 크게 낮추고, 해외 장기채권 투자 비중을 점차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안정적인 전략은 금리가 떨어지면 상당한 이득이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갔을 때 기회비용의 손실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은 안전성을 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보생명은 고수익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연초 ‘부동산 신디케이티드론’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연 10% 안팎의 수익률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예컨대 지난달 완료된 총 1093억 규모의 하이닉스반도체 빌딩 매각 프로젝트에 신디케이티드론(차관단대출:여러 금융사가 금액을 분담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500억원을 투자했다.
이밖에도 호텔 등 3~4개 부동산에 대해 같은 방법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연말까지 부동산 신디케이티드론에 5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신디케이티드론은 협상에서 투자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저금리 상황에선 유력한 투자처”라고 말한다.
교보생명은 해외 채권 투자 등에도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개발프로젝트 파이낸싱에도 올해 4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더이상 고전적인 유가증권 투자방식으로는 고수익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증시 등 위험부담이 큰 투자는 가능한 피한다는 전략은 삼성생명과 닮은 꼴이다.
생보사들에게 가장 확실한 돌파구는 소매대출(개인대출)이다.
소매대출만 늘리면 상당한 자산운용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현재 보험사들의 개인 신용대출 금리는 11%에 이른다.
예정이율 7.5%를 훨씬 넘는 수치라, 짭짤한 수익이 난다.
아파트 담보 대출은 신용대출보다 낮은 7.5~8% 안팎에서 금리가 형성돼 있지만, 최소한 국공채 투자보다는 훨씬 유리해 출혈 대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각 보험사들은 소매대출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교보생명은 아파트 담보 대출인 ‘더블찬스 아파트 대출’의 설정비 면제기간을 애초 7월에서 9월까지 늘리기로 했다.
삼성생명도 7월 말 아파트 담보 대출 금리를 ‘기준금리형’ 외에 ‘CD연동형’과 ‘고정금리형’ 등 모두 3가지로 나눠 내놓았다.
고객의 개인적 취향이나 금리 전망에 따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학자금 대출도 틈새시장이다.
대한생명은 8월1일부터 대학·대학원생 및 전문대생이 등록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63학자금 신용 대출’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대한생명은 대출 신청자의 학업성적이나 보험계약 여부에 따라 10.5~14.5%로 금리를 부과한다.
삼성생명도 12.9~15%의 금리를 적용하는 학자금 대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선 학자금 대출이 약간의 위험성은 있지만 매력적인 고수익 자산운용처인 셈이다.
보험사들은 자산운용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점차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자산운용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6.4%인 교보생명은 장기적으로 45%까지 대출 비중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생명도 대출이 자산운용의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점차 대출비중을 높여간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대출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대출비중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생보사들의 고민이 있다.
대출 비중 늘이는 것은 닮은 꼴 생보사들은 그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5%대 금리 앞에서 새로운 자산운용 전략을 짜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상태로 저금리가 계속된다면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연말까지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태가 계속된다면 가뜩이나 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보사들이 다시 부실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래저래 생보사들에게는 어려운 시기다.
자산운용 전문가 모시기 ‘비상’
저금리 시대에 자산운용이 중요해지면서 생명보험회사들이 전문인력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생보사들은 일단 자산운용 사령탑을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해외 채권 투자나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새로운 자산운용 기법을 갖고 있는 전문가나 포트폴리오 기획에 능숙한 사람들도 영입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삼성생명은 5월 말 유석렬(51) 전 삼성증권 사장을 자산운용 담당 사장으로 임명했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배호원 삼성투신운용 사장 등 3명의 상호 자리바꿈이긴 했지만, 유 사장이 삼성생명의 사령탑이 된 것은 자산운용 부분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또 런던 현지법인에 근무하던 황정호(38) 차장을 주식운용팀장으로 발탁했다.
삼성생명은 이밖에 중간관리자급의 뛰어난 실무능력을 가진 자산운용 전문가를 찾고 있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 포트폴리오 관리, 해외 채권 분석 능력이 있는 사람을 주로 물색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보생명도 지난 6월 말 장형덕(51) 전 서울은행 부행장을 자산운용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씨티은행에서 여신담당 임원을 지낸 장 부사장은 금융시장 분석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대우증권과 미국의 투자회사인 아팔루에서 주식운용을 담당하던 조현국 이사를 투자본부장으로 ‘모셔’왔다.
올해 초에는 미국 프루덴셜에서 리스크 관리 업무를 하던 오익환 상무를 경영관리실장으로 선임했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한국적인 자산운용 패턴을 과감히 바꾸기 위한 신호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흥국생명은 지난 4월1일 이백(39) 전 뱅크오브아메리카 자금담당 이사를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부사장은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과 JP모건 등에서 유가증권 투자 업무를 담당해왔다.
초저금리라는 새로운 전환기 앞에서 보험사들이 새로운 자산운영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은행들도 묘책 없어
은행들이라고 딱히 자산운용의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은행이 보험사보다 다소 사정이 나은 것은 사실이다.
수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4.50%로 내린 뒤 한빛은행은 당장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 최고금리를 연 4.8%에서 4.5%로 낮췄다.
다른 은행들도 MMDA 금리를 잇따라 내릴 방침이다.
하지만 신규조달 자금은 수신금리를 낮춰 대응할 수 있지만, 기존에 갖고 있던 풍부한 자산들을 마냥 묵혀둘 수도 없다.
은행들은 아무도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비교적 위험이 작은 개인대출은 이미 포화상태고, 위험도가 높은 기업들에게는 선뜻 돈을 빌려주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거의 자산운용을 포기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빛은행은 지난 6월부터 판매해온 ‘탄탄플러스 신노후연금신탁’으로 조달된 410억원을 운용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한빛은행은 자금을 모두 콜거래를 통해 다른 금융회사에 빌려주고 있는 상황이다.
주택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택은행의 한 관계자는 “회사채를 사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BBB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평균적으로는 높은 편이지만 현재와 같은 거시경제 상황에선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국고채 3년물의 금리는 5%대로 턱없이 낮기 때문에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금리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들이 보험사들과 마찬가지로 안전한 아파트 담보 대출 경쟁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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