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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야누스의 얼굴, 자본주의
[미국] 야누스의 얼굴, 자본주의
  • 미국=이김정 통신원
  • 승인 200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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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700만명 강제노동·매춘 강요당해… 이익 극대화 논리 속 국경간 매매도 지난 5월 발표된 세계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매년 4만~5만명 정도의 성인 여자와 소녀들이 국경을 넘어 매매돼, 매춘과 같은 강제노동을 강요당한다고 한다.
경쟁력 있는 값싼 물건을 국경에 구애됨 없이 사고팔아 이익을 극대화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을 매매하고 예속시킨 상태에서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는 노예제도는 미국에서는 북부가 승리한 남북전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지구상 어느 나라도 이런 전근대적인 노예제도를 존속시키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법률적으로만 그렇다는 게 영국 서레이대학 강사인 케빈 베일즈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소모품 인간>(Disposable People)에서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등록하고 부릴 수 있는 법적 권한만 없어졌을 뿐 아직도 이 세계에는 노동을 착취당하는, 말 그대로의 노예만 2700만명이나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노예는 태국, 브라질, 모리타니아, 파키스탄, 인도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선진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존재형태도 다양해, 1980년 외교적 압력으로 법률상 노예제도를 폐지한 아프리카 모리타니아는 고전적인 노예제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그것을 ‘현대화’한 새로운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다.
옛날의 노예주들은 노예를 부리기 위해 상당한 부가 필요했다.
노예를 하나 사려면 적어도 2~3년치 노임에 해당하는 돈을 한꺼번에 노예 상인에게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한번 팔린 노예는 자신을 산 주인의 집에 속한 채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 평생 그의 노예가 됐다.
요즘 태국 같은 곳에서는 노예가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매춘을 시키기 위해 소녀들을 100만~200만원 정도에 매매하는 것이다.
이런 거래에 돈을 대는 투자자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노예주는 능력있는 사업가로 불린다.
이런 곳에서는 도망치는 노예를 때리거나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새로운 노예제도는 농업이 붕괴되면서 먹고 살기 위해 도시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려는 노동력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이들을 낮은 임금으로 고용해 이익을 올리는 일은 너무나 쉬운 상황이며, 이 때문에 현대판 노예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케빈 베일즈는 노예 문제의 반인권적 심각성에 공감은 하지만, 노예를 가정부로 고용하지 않고 매춘관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책임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계 경제는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상을 넘는 분기 실적이 뉴욕 증시를 들뜨게 하고 곧바로 서울과 도쿄 증권가로 그 영향을 끼치듯이, 브라질에서 노예가 만든 값싼 숯으로 가공된 철강재가 미국으로 수출돼 미국 내 자동차값이 내려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 미국 3위 슈퍼체인인 세이프웨이 앞에서 서밋이라는 이름의 배송업체 노동자들이 두달 동안 시위를 벌였다.
세이프웨이가 싼 값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은 배송 노동자들이 밤새도록 고속도로를 달려 그 물건을 배달하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들이 말한 열악한 근무환경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세이프웨이쪽은 소비자들에게 값싼 물건을 제공하기 위해 값싼 배송업체를 찾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케빈 베일즈는 노예해방이란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노예노동을 막을 수 있는 국제법과 그것이 실행되도록 하는 강력한 감시의 눈이라는 것이다.
각국의 대표와 국제기구가 모여 지적재산권 보호 법률을 만들어내면 각국 정부와 경찰이 그것을 토대로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에 나서는 것과 같은 체제가 신판 노예노동을 막는 일에도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소비자들이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구매를 거부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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